1931126일의 공연에서 최승희는 벌교의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을 선사했을까? 벌교민의 반응은 어땠을까? 환호와 갈채를 보냈을까, 아니면 처음보는 근대무용에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작품이 가장 좋은 반응을 일으켰을까? 야유를 받았던 작품은 없었을까?

 

불행히도 최승희 벌교 공연의 연목(=공연작품 목록)에 대한 자료는 발견된 것이 없다. 벌교 공연의 프로그램이 남아 있다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혹은 당시 벌교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된 감상문이나 비평문이 발견된다면 각 연목과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벌교 공연에 대한 문헌 자료는 193111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 문장짜리 단신 기사가 전부이다. 최승희가 내연(來演)했다는 것과 공연의 일시와 장소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추론에 의지해야 한다. 다행히 벌교 공연 전후의 상황을 잘 살피면 연목에 대한 정보를 추론해 낼 수가 있다.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공연 과정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우선 경성에서 신작발표회를 개최한 다음, 그 연목을 가지고 지방 순회공연을 단행하는 것이 순서였다. 이는 최승희가 도쿄 무용유학 시절 스승 이시이 바쿠로부터 직접 배우고 경험한 바였다.

 

이시이 바쿠가 새로 창작한 작품들은 도쿄 공연에서 첫 선을 보이지만, 거듭되는 지방 순회공연을 통해 다듬어지곤 했다. 같은 작품의 공연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무용수의 숙련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지방의 관객들이 수도권 관객들보다 세련되고 성숙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최승희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 1931916일자 <동아일보(7)>는 최승희의 마산 공연을 소개하면서 최승희무용연구소 일행은 금번 신작무용을 발표함과 동시에 남조선지방을 순회 중이라고 보도했다. 마산 공연의 연목이 경성 공연의 연목과 같음을 시사한 것이다.

 

 

1013일자 <매일신보(7)>무용가 최승희는 경성에서 신작무용을 발표한 후 지방공연의 첫걸음으로 오는 13일 해주극장에서 신작무용발표회를 개최한다고 보도했다. 경성에서 발표된 신작무용 연목이 해주에서도 반복될 것임을 알린 것이다. 1031일자 <동아일보(7)>도 개성 공연의 연목이 신작무용공연회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서술했다.

 

, 최승희는 193191일 단성사에서 공연했던 제4회 신작발표회의 연목을 가지고 수원(913)을 비롯해, 김천(916), 대구(17), 밀양(21), 마산(22), 진주(23), 통영(25) 공연은 물론, 조치원(1124), 청주(25), 대전(26), 전주(29), 군산(30), 목포(124), 광주(5), 그리고 벌교(6) 공연을 진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126일의 벌교 공연의 연목은 이틀 전의 목포 공연과 하루 전의 광주 공연의 연목과 같았을 뿐 아니라 석 달 전인 91일 경성 <단성사>공연 연목과 대동소이했음에 틀림없다. 193191일자 <매일신보(5)>는 제4회 신작발표회의 14개 작품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1. 세계의 노래 (연구생 일동); 2. 자유인의 춤 (최승희); 3. 토인(土人)의 애사(哀史) (김민자, 조영숙); 4. 미래는 청년의 것이다. (노재신, 김민자, 이정자, 곽경신, 정임); 5. 번외 야곡(夜曲) (노재신).

 

2, 1. 인조인간 (최승희, 노재신); 2. 영혼의 절규 (연구생 일동); 3. 철과 같은 사람 (: 최승희, : 김민자); 4. 고난의 길 (최승희 외 연구생); 5. 번외: 이국의 밤 (이정자, 노재신).

 

3, 1. 폭풍우 (최승희 외 연구생); 2. 어린 용사 (곽경신, 조영숙, 이정자); 3. 십자가 (최승희); 4. 건설자 (최승희 외 연구생).”

 

 

물론 91일의 경성 공연 연목이 석달 후 벌교 공연 연목과 완전히 일치했는지는 의문이다. 최승희는 무용수의 숙련도와 표현력, 그리고 관객의 반응 등을 고려하면서 각 지방 공연의 연목을 조정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교 공연의 연목이 제4회 신작발표회의 작품들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2022/05/26,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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