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벌교 공연>은 2020년 5월 필자가 목포와 광주, 나주를 방문하면서 새로 발견되었다. 1931년 12월4일의 목포 공연, 12월5일의 광주공연을 조사한 후, 나주에서의 공연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12월6일에는 나주가 아니라 벌교에서 공연이 있었던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최승희의 벌교공연은 <동아일보(11월24일자, 3면)>의 기사를 통해 확인됐다. 광주공연과 함께 벌교공연이 나란히 공지된 기사였다. 공연 열흘 전에 중앙지의 지방난에 공지된 것으로 보아 이 공연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리 기획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의 보도에서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광주와 벌교 공연은 실제로 실행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함께 벌교 공연이 열렸던 <벌교구락부>가 조선인 채중현에 의해 설립된 벌교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었음도 발견되었다. 이 극장의 건축 동기와 과정, 그리고 그 완성과 낙성식 소식은 <동아일보(1930년 12월9일자, 3면)와 <부산일보(1930년 12월10일자, 7면)>, 그리고 <조선일보(1930년 12월14일자, 7면)>에 보도되었다.
이 극장의 이름이 신문에 따라 <벌교구락부>, <벌교극장>, <벌교공설극장> 등으로 서로 다르게 소개된 것이 특이했는데, 아마도 현지에서는 <벌교구락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부산의 기자가 이를 ‘극장’으로 이해하고 <벌교극장>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조선일보>가 이 극장을 <벌교‘공설’극장>이라고 명명한 것은 의문이다. <동아일보>와 <부산일보>는 채중현씨가 사재로 이 극장을 설립했다고 보도한 반면, <조선일보>만 이를 ‘공설(公設)’극장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일 채중현씨가 <벌교구락부>를 개관, 낙성한 후 이를 벌교읍에 희사했다면 ‘공설’극장이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벌교구락부(1930)>는 <목포극장(1926)>에 이어 전남 지역에서 조선인이 개관한 두 번째 극장이었고, <광주극장(1935)>보다 5년이나 이르게 개관한 조선인 설립의 극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승희의 벌교공연은 벌교구락부 개관 1주년 기념 특별 행사였음도 확인되었다.
벌교 공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나주의 홍양현 선생, 화순의 임재택 선생님, 벌교의 한광석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중에서도 벌교에서 출생, 성장하셨고 지금도 벌교에서 활동하고 계신 한광석 선생님은 직접적인 도움을 주셨다.
특히 한광석 선생님은 벌교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의 상황, 그리고 음악가 채동선 선생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해 주셨는데, <벌교구락부>의 설립자인 채중현씨가 채동선 선생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셨다. 그 덕분에 채동선과 최승희의 가족 사이에 인적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같은 인맥이 벌교 공연이 성사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벌교 공연이 확인됨으로써 최승희 전남지역 순회공연에 대한 다른 연구 가능성도 열렸다. 즉, 목포, 광주, 벌교와 함께 전남의 5대도시에 속했던 순천과 여수에서의 공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순천과 여수가 벌교의 북동쪽과 남동쪽으로 불과 2-30킬로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이었을 뿐 아니라, 두 도시 모두 경전선과 전라선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공연 예정지로 꼽힐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벌교 공연 이후의 최승희 일정, 특히 순천과 여수의 일정을 확인해 주는 신문기사 자료는 아직 발견된 바 없지만, 벌교 공연이 확인된 만큼 순천과 여수의 공연 가능성을 상정하고 조사연구를 계속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요컨대, 벌교 공연은 지금까지 최승희 연구자들에 의해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공연으로 이번 조사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향후 최승희의 전남지역 순회공연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는 데에도 자극을 주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22/5/28,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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