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동 선생님이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제1회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선대학이 개교한 것은 1946년 9월29일이므로 그는 1946년 9월에 입학해, 1950년 6월에 졸업한 셈이 된다.
광주 소재 조선대학교는 흔히 대한민국 최초의 민립대학이라고 불린다. 조선대학교의 역사를 살펴보니 그 서술은 반만 맞다. 조선대학교 설립운동은 해방 직후 1946년 5월 조선대학설립동지회(=동지회)와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1946년 8월5일 동지회는 광주서중학교에서 발족식을 열었다. “개성교육・생산교육・영재교육”이라는 건학 이념과 “민족국가 수립에 기여할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이라는 설립 이념을 채택했다. 같은 해 9월9일 <광주야간대학원>의 설립이 인가되었고, 9월29일 4개 학부, 12개 학과, 1,194명의 학생이 등록한 <광주야간대학원>이 마침내 개교, 수업에 들어갔다.
동지회원들은 그해 12월부터 트럭을 타고 전라도 각 지역을 샅샅이 돌면서 모금운동을 벌였다. 군수와 면장, 이장과 경찰서장부터 기생에 이르기까지 당시 쌀 2말 값에 해당하는 100원짜리 설립동지회권을 구매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깨, 김, 미역, 장작 등의 현물을 기부했다.
당시 광주시장 서민호와 광주법과대학을 세우려던 이규정 등이 주축이 되어 모집된 동지회 가입회원은 1947년 72,195명에 달했다. 가입 회원들의 거주 지역도 호남권은 물론 충청권과 제주도까지 포함할 만큼 광범위했다. 명실공이 ‘민립대학’이라고 불리는 것도 당연했다.
1946년 11월23일 <조선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여기에는 광주시장에서 전남도지사로 영전한 서민호의 역할이 컸다. 그는 “광주 지역에 국한된 대학이 아닌 전국의 인재를 키우는 대학”을 목표로 제시했고, “정부수립 전에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 초석”이라고 주장했다. 1948년 5월26일 재단법인 <조선대학>이 미군정청의 설립 인가를 받게 되었고 박철웅 초대 총장이 취임했다.
조선대학교의 설립은 지역적 견지에서 이례적이었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연세대(1885년), 고려대(1905년), 숭실대(1906년), 이화여대(1927), 숙명여대(1938년), 한양대(1941)는 모두 경성에 있었다. 해방 이후 정부 수립 전에 설립된 홍익대(1946년 4월)와 서울대(1946년 8월), 성균관대(1946년 9월)와 단국대(1947년 11월)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에서 설립된 종합대학은 조선대(1946년 5월)와 부산대(1946년 5월)가 유이(唯二)했다. 그런데 부산대는 정부 주도로 설립된 국립대학이었던 반면, 조선대는 전남 민중의 힘으로 설립한 민립대학이었다. 그만큼 전남인의 교육열이 서울 못지않게 높았다는 뜻이다.
전남인이 민중의 힘으로 돈을 모아 조선대학교를 설립한 것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크라우드 펀딩으로 대학을 세운 것이다. 1946년의 전남인들이 조선대학교를 설립한 것은 1988년 한국인들이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것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규모는 <조선대학교>가 훨씬 컸다. <한겨레신문>은 4천만명의 국민 중 6만1천여명이 주주로 참여했지만, <조선대학교>는 전국 인구가 1천9백만명(1948년), 전라남도 인구가 3백만명(1949년)이던 시절 7만2천명의 동지회원이 모은 돈으로 설립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민립으로 설립된 조선대학교는 초대총장 박철웅의 비리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박철웅은 기부된 현물을 현금화하는 일에 수완을 발휘하는 등 조선대 설립과정에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총장 취임과 함께 동지회의 중심인물들을 제거하고, 동지회원 7만2천명의 기부내역을 은폐하면서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조선대학교를 사유화하고 세 차례 총장직을 차지하면서 30여년간 전횡을 일삼다가 1987년에야 물러났다.
따라서 조선대학교는 설립운동과 개교까지는 민립대학이었으나, 개교 후에는 박철웅의 사립대학으로 변질되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박철웅이 자행한 비리로 인해 오늘날 조선대학교의 교육의 질은 초기 민중의 교육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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