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신>이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를 방문합니다.

 

지난 5월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를 방문한데 이어, 7월에는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니시노미야의 <코끼리회>를 찾아갑니다.

 

일시: 2024712-15(34)

장소: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회비: 1인당 65만원 (항공권 별도)

주최: 일본 <팀아이>, <니시노미야외국인아동생도 보호자회>, 한국 <무용신> 공동 주최

참가신청: https://naver.me/Gsj0fC1g

참가비 입금계좌: 카카오뱅크 7979-78-20772 (무용신 캠페인, 전재운)

문의: 조정희 010-8564-7471

 

 

<코끼리회(1991)>는 니시노미아의 재일동포 학생들의 모임입니다.

 

<코끼리회>는 니시노미야의 초,,그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부모님들께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만드신 단체입니다. 처음에는 각 학교의 교내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셨지만, 학교와 교육위의 동의를 얻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에 학부모님들께서는 교외에 동포 학생들을 위한 모임을 결성하셨고, 이름을 <코끼리회>라고 정했습니다. <코끼리회>는 1991년 첫 회원으로 등록한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코끼리회>의 학생들은 한국말과 한국문화, 한국예술을 배우면서, 각종 교포행사에 공연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대 회장 김원혜 선생께서 오래 수고해 주시다가, 지금은 2대 회장이시자 <팀아이>의 회원이기도 하신 구실 선생께서 <코끼리회>를 지도하고 계십니다.

 

 

니시노미야는 조선인 노동자의 벽서, “조선국 독립이 발견된 곳입니다.

 

니시노미야는 두 가지 이유로 근대사에 등장합니다. 첫째는 이 지역 지하호에서 발견된 “조선국 독립이라는 벽서입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니시노미야의 고요엔에는 일제 해군 전투기 공장으로 사용할 지하호가 굴착됐습니다. 이 지하호 굴착에 조선인들이 동원되었습니다.

 

1945815일 일제가 항복하자, 해방과 함께 지하호 공사에서 풀려난 조선인 노동자들이 지하호의 벽에 “조선국 독립푸른 봄이라는 글씨를 썼습니다. 198711월에 발견된 이 벽서는 지하호 공사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동원되었다는 증거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니시노미야는 4.24 교육투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입니다.

 

일제가 패망하자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일동포들은 자녀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칠 국어강습소를 개설했습니다. 국어강습소는 <재일조선인연합>의 지휘아래 조선인학교로 발전했는데, 1947년 일본 전역의 조선인학교는 563(학생 57,498, 교원 1,331)에 달했습니다.

 

19481월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하고 일본학교에 통합시키라는 명령을 발동했습니다. 조선인들은 이에 반대했고, 민족학교 수호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 투쟁은 니시노미야에서 가장 격렬했고, 사망자가 발생하기에 이르렀으나, 끝내 조선인학교를 지켜냈습니다.

 

 

니시노미야는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도 가깝습니다.

 

<무용신>은 작년 1월 다카라즈카를 방문해 조선인 추도비를 참배했습니다. 수도 공사와 철도 공사 중에 사고로 돌아가신 조선인 노동자들을 1백년이 넘도록 위령 제사를 드려 오신 타마세 마을을 방문, 불교사찰 만푸쿠지에서 감사의 국악 음악회도 열었습니다. 올해도 <무용신>은 니시노미야 북쪽에 인접한 다카라즈카의 만푸쿠지를 방문하고 추도비에 참배할 예정입니다.

 

 

임인출 가족 풍물패 <동동>이 함께 합니다.

 

가족 풍물패 <동동>이 이번 방문단에 동행, 니시노미야 공민관에서 <코끼리회>를 비롯한 니시노미야의 동포 학생들과 학부모를 초청, 풍물공연을 개최하고, 이어서 동포들과의 교류를 위해 야외 바비큐 모임도 가집니다.

 

 

효고현과 오사카부의 재일동포와 함께 할 <무용신>의 니시노미야 방문단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jc,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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