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신>이 몬순혁명 대표단을 초청하기로 결정한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타고르에게 진 역사적인 빚과 몬순혁명을 광주항쟁과 연관시키는 방글라데시인들의 인식 때문이었지만, 그밖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국토 면적(15만Km²)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22만Km²)보다는 작지만, 남한(10만Km²)과 북한(12만Km²)보다 큽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1억8천만명)는 남한(5천1백만명)과 북한(2천6백만명)은 물론, 그 둘을 합친 인구(7천7백만명)보다 두 배 이상 많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젊습니다. 2020년 유엔통계에 따르면 15세미만의 인구가 27%, 15-64세가 68%, 65세 이상이 5.2%입니다. 각각 12%, 70%, 18%인 한국에 비해 젊은 인구 구성이죠.
방글라데시는 문맹률이 높다지만, 이는 옛날이야기입니다. 2019년 유엔통계에 따르면 15세 미안의 방글라데시인 문해율이 95%, 15-64세가 75%로, 65세 이상의 39%보다 훨씬 높습니다.
2022년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112%인데, 이는 취학연령이 넘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글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중,고등학교 진학률도 72%입니다. 즉, 방글라데시가 세계8위의 인구 대국이며, 노동력이 양질이고 시장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1970년대의 방글라데시의 상황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권위주의 정부와 쿠데타가 반복되었고, 경제적으로 최빈국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독립했을 때 당시 미국무차관 우랄 존슨(Ural Johnson, 1908-1997)은 방글라데시를 “국제적 무능력자(international basket case)”라고 불렀습니다. 경제 능력 없는 금치산자라는 말이죠.
https://foreignpolicy.com/2021/04/10/bangladesh-independence-anniversary-basket-case-rising-star/
대통령 안보자문이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2023)도 “우리가 신경 쓸 무능력자는 아니(not our basket case)”라고 맞장구를 치며 비웃었습니다.
그보다 20년 전에 영국 일간지 <타임스(The Times)>는 1951년 10월1일자 기사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거렸더랬습니다. 그때는 그런 말이 당연하게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독재를 타도했고, 아시아 민주화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은 헌법을 위반하거나 법률을 지키지 않으면 대통령도 탄핵해 버리는 선례를 남긴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 또 한명의 대통령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데,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올 겨울에 결정되겠지요.
한편, 서방 세계의 혹평과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2000년대 들어서 6-7%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국제연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방글라데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28달러로, 한국(32,305달러)보다 낮지만 북한(590달러)보다 높고, 주변국 인도(2,445달러)와 파키스탄(1,386달러)은 물론 네팔(1,290달러)과 미얀마(1,204달러)보다도 높습니다.
2022년 방글라데시의 빈곤율은 자국 기준 18.7%로 높은 편이지만, 1971년의 80%, 1991년의 44%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것입니다. 국제 기준으로도 방글라데시의 2022년 빈곤율은 30%, 절대빈곤율은 5%로, 인도(44%, 13%)와 파키스탄(40%, 5%)보다 낮습니다. 같은 국제기준으로 한국의 2022년 빈곤율은 2% 미만, 북한의 2018년 절대빈곤율은 37%로 발표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발전국에 진입한 한국과 빠르게 성장 중인 방글라데시는 협력의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이같은 협력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1만3천명의 방글라데시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한국에 진출한 것, 그리고 한국과 방글라데시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다는 것이 그 가시적인 증거일 것입니다. (jc,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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