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몬순혁명의 청년 대표자 3명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몬순혁명 대변인이자 방글라데시 개헌위원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Mustain Billah Zahir)씨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Korea Democracy Foundation: KDF)의 초청으로,
다카대학교 법과대학원생 사미아 악타르(Samia Akther)씨와 브라크대학 인류학과 졸업생이자 사진작가 모스피쿠르 라흐만 조한(Mosfiqur Rahman Johan)씨는 <몬순 클럽(대표, 이고은)>의 초청으로
11월4일부터 11일까지 한국을 방문합니다.
무스타인 빌라씨는 2024년 11월7일(목), KDF의 글로벌포럼에 참가해 주제발표를 하게 됩니다. 발표제목은 “방글라데시 7월 학살과 저항의 언어”입니다.
<몬순 클럽>은 무스타인 자히르씨의 발표문 초고를 입수해 한국어 번역을 소개합니다. (번역: 이고은,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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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대학살, 몬순 혁명,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저항의 언어
by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Mustain Billah Zahir)
2024년 여름, 세계는 가장 흥미진진한 운동 경기를 보기 위해 파리에 모였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각국 최고 인재들이 겨루는 올림피아드에 집중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지만, 이 화려한 스포츠 행사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방글라데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다른 이유로 파리에서 주목받았고, 이는 이 나라와 그 정치에 있어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인 유누스 박사는 파리 올림픽에 참석, 파리의 올림픽 유치에 기여한 공로로 7월22일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 광장'이 명명되는 영예를 받았습니다.
유누스가 파리에서 젊은 선수들이 발휘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켜보는 동안, 그의 마음 한편에는 고국의 젊은 학생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024년 7월 초부터 다카 거리와 대학 캠퍼스, 그리고 여러 주요 도시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로 가득했습니다. 7월초 학생들이 차별적인 공무원 채용제의 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 역사에 새로운 장을 쓰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4천5백만 명이 넘는 방글라데시의 청년들 중에서 약 1천3백만 명이 교육이나 취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공무원 채용 할당제로 더욱 희박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대학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을 얻는 데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부패한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한 것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총리였던 셰이크 하시나는 이 요구를 무시했고, 그녀가 늘 사용하던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15년 동안 모든 반대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같은 전술을 사용했고, 세 차례나 선거조작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학생들의 근본적이고 논리적인 요구는 비방과 모독, 폭력적 공격에 부딪혔습니다.
하시나의 대응은 잔인하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녀는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았고, 어린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군대와 준군사조직에 강경 진압을 명령했고, 그들에게 "즉각 사살(shoot at sight)"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광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준군사 세력은 헬리콥터로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경찰은 수천 명의 시위대를 체포하기 시작했고, 한밤중에 학생들을 집에서 연행했습니다. 마치 나라가 외국 침략자들에게 점령당한 것 같았습니다.
1,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거의 2만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그중 일부는 파편에 맞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7월 중순부터 날마다 나라 전체에서 무자비한 살상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상자가 늘어날수록 시위대의 수는 더욱 불어났습니다. 이는 방글라데시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5년 계속된 하시나의 독재 기간 중에 처음으로 테러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갑자기 사람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누스 박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그는 100개 이상의 조작된 소송과 징역형으로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는 정치적 발언을 삼갔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정권과 그 비판자의 주장에 분명하게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그는 국제 사회에 호소했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가 겪는 참혹한 현실을 공개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일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 나라가 중요한 분수령을 넘어섰다고 느겼던 것입니다.
존엄성 회복을 위한 Z세대의 반란
7월14일의 기자회견에서, 하시나는 시위대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자유투사들의 손자들이 (할당제의) 혜택을 받지 않으면, 누가 받겠습니까? 라자카르(Razakars)들의 손자들입니까?"
하시나는 시위 학생들을 라자카르들의 자손에 비교했습니다. 라자카르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당시 파키스탄군과 협력하여 자유투사들과 싸웠던 민병대입니다.
그녀의 모독적 발언은 몇 시간 만에 다카 대학 기숙사에서 시위를 촉발시켰습니다. 그날 밤, 격분한 여학생들이 기숙사 밖으로 나와 "너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자카르, 라자카르"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학생들의 저항에 대응하여 당시 아와미 연맹(AL)의 사무총장 오바이둘 카더(Obaidul Quader)는 당 회의에서, 악명 높은 자신들의 학생 조직인 방글라데시 차트라 리그(BCL)가 '불온한 학생들'을 충분히 제압할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7월15일, 카더의 발언 직후 BCL은 다카 대학에서 학생 시위대를 잔인하게 공격하며 몽둥이, 대나무 막대기, 곤봉 등으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했고, 많은 학생들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불꽃
7월16일, 영문학과 학생 아부 사예드(Abu Sayed)가 뜻밖의 행동으로 전국을 결집시켰습니다. 그는 학생 시위대에 참가하던 중 경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실탄을 피해 도망치는 동안 사예드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홀로 서서,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열고 경찰의 사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백주대낮에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사예드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하시나가 만든 공포의 장막이 무너졌고, 아부 사예드의 용기가 전염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총구 앞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붉은 몬순과 물
사예드의 순교 이틀 후, 또 다른 용감한 학생이 다카의 시위 중심지에서 물병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 영상에 포착되었습니다.
수학을 전공한 후 MBA 과정에 진학한 미르 마흐푸주르 라만 무그도(Mir Mahfuzur Rahman Mughdo)는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 시위대를 해산시킬 때 우타라(Uttara)에서 시위대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총알이 그의 이마에 명중해 오른쪽 귀를 뚫고 관통했습니다. 그는 15분 동안 더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물을 나누어주던 무그도의 영상은 무슬림 사회에 뿌리내린 강력한 이미지, 즉 카르발라(Karbala) 이야기를 상기시켰습니다. 무그도의 죽음을 담은 영상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사인 이븐 알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연상시켰습니다.
유프라데스 강가에서 후사인 이븐 알리는 하시나와 같은 억압적인 정권에게 패배했고 부하들과 함께 학살당했습니다. 그들은 포위를 당해 며칠 동안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무그도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상은 수백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방글라데시 전역에 퍼졌고, 무그도의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물! 물이 필요해?"
사예드가 당긴 불길이 무그도의 순교로 화산처럼 폭발했고, 이는 스러진 목숨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군중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수많은 대중을 단결시켰고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즉 공포 정치를 무너뜨리고 살인적인 몰록(Moloch)으로부터 나라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저격수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시위대에 발포하고, 어린이들까지 무차별로 사살하는 하시나 정권의 아와미 리그(AL) 깡패들과 보안군들이 바로 그 몰록이었습니다.
전국적 통행금지와 인터넷 차단
이 때쯤, 어떤 폭력도 대중의 물결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매일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했습니다. 7월19일, 그는 전국적으로 통행금지를 발효하고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파시스트 아와미 리그(AL)의 사무총장은 다시 한 번 카메라 앞에서 “즉각 사격(shoot-on-sight)”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위자는 누구든 죽이겠다고 위협했고, 저항운동을 완전히 진압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통행금지와 함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접근이 차단되었습니다. 온 나라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습니다. 군대가 거리를 순찰했고,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저항운동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했습니다. 유누스 박사는 파리에서 인터뷰를 통해 국제 사회의 주목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대담한 성명을 발표해, 정부가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마치 외적이 이 나라를 침공한 것처럼 시위자들과 맞서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자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최후의 전투
시위를 진압할 수 없게 되자, 정권은 학생들에게 가짜 협상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정보기관은 학생 지도자들에게 협상에 참여하라고 압력을 가했고, 경찰은 시위 조직자 6명을 구속했습니다.
7월28일, 경찰은 이 시위 조직자들에게 비디오 성명을 녹화하도록 강요하면서 예정된 시위 일정을 연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역효과만 일으켰습니다. 학생들은 납치나 강요된 비디오 성명이 대중을 저지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같은 정부의 조치는 학생과 대중을 더욱 격분시켰습니다. 다른 시위 조직자들은 즉시 거리로 나왔고, 비디오 성명은 가짜라고 반박했습니다.
학생 지도자들은 전면적인 비협조 운동을 촉구했습니다. 통행금지는 무시되었고, 수천 명의 시위자들이 도심과 공원, 주요 거리와 공공장소에 모여 하시나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파시스트 독재자의 몰락
8월4일 밤, 학생들이 다카 행진을 발표했고, 수백만 명이 여러 장소에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아침까지 수십만 명이 하시나의 관저를 향해 행진했습니다.
그녀는 군 헬리콥터를 타고 인도로 도주했습니다. 그녀가 도망간 뒤에는 부패와 학살과 실종, 역기능의 사법부, 그리고 경제위기 직전의 나라가 남았을 뿐입니다.
8월5일은 맑고 화창했고, 이 특별한 몬순의 도시 다카는 ‘아자디!’를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해방의 언어가 공기 중에 퍼졌고, 수백만의 행진자들의 얼굴에는 자유의 기쁨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2.0의 시작
이틀간의 치열한 논의 끝에 학생운동 지도자들은 몬순 혁명으로 막 탄생된 제2공화국의 운전대를 맡을 사람으로 유누스 박사보다 나은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직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그들은 “유누스를 믿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임시 과도정부는 2024년 8월8일에 출범했고, 유누스 박사가 방글라데시 2.0의 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이제 방글라데시는 무너진 시스템을 일으켜 세우고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을 치유해야 하는 막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파시즘의 해악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데에 필요한 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유와 정의, 존엄성 속에서 번영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만행, 정치적 폭력,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책임과 회복의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국제적 지지와 지원, 연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외국의 친구들이 나서 주기를 원하고, 이 역사적인 여정에 참여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같은 가치와 헌신과 희망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시아 태평양과 그 너머에서 사람들과 시민단체들과 강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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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Mustain Billah Zahir)씨는 시민 참여 사상가로, 한국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KDF)의 국제 민주주의 친선대사이자, 현재 방글라데시 개헌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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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원문)
The July Massacre, Monsoon Revolution and the Language of Resistance in Bangladesh
by Mustain Billah Zahir
In the summer of 2024, the world gathered in Paris to experience the most riveting athletic performances. All eyes were on the Olympics—the oldest Olympiad where nations vie to outshine each other with the best of their best.
In spite of being the world’s eighth populous country, Bangladesh usually remains unrecognisable in this magnificent sporting event. This time it was not an exception either and the country failed to secure a single medal. But Bangladesh was visible in Paris for a different reason, and it would be proved to be fateful for the nation and its polity.
The country’s only Nobel Laureate Dr. Yunus was in the Paris Olympics, being honoured with Place du Professeur Muhammad Yunus on July 22 to celebrate his contributions to the city's Olympic bid.
While Yunus was witnessing a generation of young athletes showcasing the best of their talents in Paris, at the back of his mind, he was burdened with the grim stories of young students getting killed in his homeland. From the beginning of July 2024, streets of Dhaka, university campuses and other divisional cities were filled with thousands of protesters.
When students took to the streets in early July, demanding reforms of the discriminatory government job recruitment, they had little idea how it was about to write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their country.
A country of over 45 million youth, Bangladesh has about 13 million of young people who are neither in study, and to make matters worse, they don’t have a job either. The slime chance of getting a good job was further complicated by the politically twisted discriminatory public service quota system.
This is unmistakably a big problem for the graduates seeking the coveted jobs. Therefore, the students were morally and politically right in demanding the reform of the corrupt system.
However, the then Prime Minister Sheikh Hasina was very dismissive about the movement and didn’t bother to employ her usual playbook. She has been using the same tactics to quell every opposition demand in the last 15 years and holding onto power by conducting three consecutive farcical elections. Hence, this very basic and logical demand was met with vilification, dehumanising tactics and violent attacks.
The response from Hasina was brutal and imbecilic. She didn’t care to let loose a monstrous killing spree, even children were not spared. She ordered a crackdown that was overseen by the army and the paramilitary forces who were given shoot at sight orders.
The insanity even touched the sky— helicopters used by paramilitary forces were mobilised to shoot at protestors. Police started rounding up thousands of protestors, hounding young students at midnight by picking them up from their homes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 if the country was in the grip of some foreign invaders. More than one fifteen hundred have been killed, nearly twenty thousand injured including those blinded by pellet injuries.
From the middle of July, day in and day out the whole country woke up to incidents of one senseless killing after the other. The more she was killing, the bigger the number of protesters grew. It was a pivotal moment in the country’s history, as for the first time in her 15 years of authoritarian rule, no amount of terror was working and suddenly fear evaporated from the minds of the people.
This was also true of Dr. Yunus. Despite facing over a hundred trumped up cases and a deferred jail term, he seldom talked about politics, rather maintained a stoic indifference towards the democratic backsliding, kept a sharp distance from being associated with the critics of the regime or dissident voices.
But, not this time. From Paris, he appealed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laid bare the facts of brutality and sought their urgent attention to what was happening in Bangladesh. He could sense that something extraordinary was unfolding and the country crossed a watershed moment.
> Gen-Z Revolt To Recapture Dignity
During a news conference on July 14, in response to a question Hasina made a very derogatory remark about the protesters—“If the grandchildren of freedom fighters don’t receive [quota] benefits, who will? The grandchildren of Razakars?” By this aspersion, she compared the student protesters to children and grandchildren of Razakars—a militia force who collaborated with the Pakistan army and fought against the freedom fighters during the country’s Liberation War of 1971.
Her contemptuous comments ignited protests within hours at different dormitories of Dhaka University. That night, agitated female students took the lead, came out from the dormitories chanting the slogan “Who are you? Who am I? Razakar, Razakar.”
In response to students’ defiance, Obaidul Quader, the then general secretary of Awami League (AL), commented at a party meeting that their notorious student wing, BCL was enough to subdue ‘the unruly students’. On July 15, soon after Quader’s comment, BCL launched a vicious assault on student protesters at Dhaka University by beating them with rods, bamboo sticks and clubs, many were severely injured.
> The Spark Of The Fearlessness
On July 16, Abu Sayed, a university student studying English Literature triggered the surprising turn of events that would galvanise the whole nation. He was one amongst many protesting students attacked by the police. While others were in retreat to save themselves from the live bullets, Sayed did a very unusual thing. He stood firm, standing alone with two hands stretched out, fearlessly holding his chest open at the firing range. Within a moment, he was shot dead in broad daylight.
Across the nation, through social media the video footage of Sayed’s heroic posture spread like wildfire. The iron dome of fear created by Hasina began to crumble—the courage of Abu Sayed became contagious. From the next day, people, especially the youth, took to the streets en masse, standing tall and ready to sacrifice their lives in front of the guns.
> The Water Of The Red Monsoon
After two days of martyr Abu Sayed, another valiant student was seen on a video holding water bottles and running amidst the throng of people who gathered in one of the epicentres of the demonstration in Dhaka. Mir Mahfuzur Rahman Mughdo, a graduate in Mathematics who was doing his MBA was seen distributing water to protesters in Uttara after law enforcers fired teargas shells to disperse them. A bullet hit his forehead and pierced through his right ear. He was able to breathe for another 15 minutes. He was dead by the time his friend and fellow protesters rushed his listless body to the hospital.
The video of Mugdho handing out water before his death touched to the core of a deep-rooted and powerful imagery in the Muslim society, i.e., the story of Karbala. The emotional floodgate opened by Mughdo’s murder instantly electrified the memory of the tragic history of the Prophet Muhammad’s grandson.
On the bank of the Euphrates River Ḥussain ibn Ali was defeated and massacred along with his followers by an oppressive regime like Sheikh Hasina. While the group was under seize for days, they were denied access to water. The social media feeds of millions across Bangladesh could instantly relate to Mughdo’s last words—“Water! Do you need water?”
The fire lit by Sayed, now became a volcano with Mugdho’s martyrdom becoming a beacon that showed the masses the only direction they could take—hit the streets demanding justice for the lives lost. And it reverberated across the nation and united millions to think of the impossible—bringing down the reign of terror is not just necessary but essential to save the soul of the nation from a murderous Moloch—the thugs of AL functionaries in cohort with security forces indiscriminately killing children, using snipers and even helicopters to gun down the protestors.
> Nationwide Curfew And Communication Blackout
By this time, it was apparent that no amount of the violence would be enough to stop the tide of the masses. Despite scores killed and hundreds injured every single day, the dictator turned to the last resort—on July 19 imposed a nationwide curfew and deployed armed forces.
The Secretary General of the fascist AL, once again, announced on camera a “shoot-on-sight” policy to kill anyone protesting and vowed to crush the movement for once and all. In tandem with the curfew a communications blackout was imposed with the internet and social media access blocked. The entire nation was locked in what looked like an open prison, military convoys were patrolling the streets and no one could communicate with the outside world.
At this stage, the movement was visibly entering into the very final stage, but the outcome was not yet clear. Dr. Yunus gave an interview from Paris calling for international attention. With a bold statement, he said that by using the army the government was confronting the protestors as though a foreign enemy had invaded the country. “This is not how you deal with your own people.”
> The Final Battles
Unable to quell the protests, the regime set up a game of pseudo negotiation with the students. Intelligence agency mounted pressure on student leaders to engage in discussions. The police detained six movement coordinators. On July 28, the police forced these coordinators to record video statements urging student protesters to postpone all scheduled programs. But, that didn’t work, rather became counterproductive. Students made it clear that abduction or forcing students to issue video statements would not deter them.
This move by the government further incensed students and the masses. All other coordinators immediately took to the streets, denouncing the video statements. The student leaders called for an all-out non-cooperation movement unless their one-point demand was met. Defying curfew, protesters gathered in thousands at city centres, parks, major streets and other public places demanding Hasina’s resignation.
> The Fall Of the Fascist Dictator
On the night of 4th August, when students announced the march to Dhaka program, several million people started their march from different locations. By morning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already marching towards Hasina’s official residence. She fled to India by a military helicopter leaving behind a legacy of rampant corruption, mass murder, enforced disappearances, dysfunctional judiciary and a country on the verge of economic collapse.
August 5th was a bright sunny day and in this distinctive monsoon Dhaka city turned into a sea of people, marching and chanting ‘Aazadi’! The language of liberation percolated in the air and the joy of freedom glowing over on the face of million marchers—a great many of them were tearful and crying in disbelief.
> Steering Bangladesh 2.0
After two days of intense discussion the student leaders couldn’t find a better hand than Dr. Yunus to steer the wheel of the second republic bequeathed by the Monsoon Revolution. While he was still in Paris, they announced, “In Yunus we Trust!” The new interim government was sworn-in on the 8th August 2024 making Dr. Yunus the head of Bangladesh 2.0.
Now the country is confronted with an enormous challenge to navigate through the broken-down system and a traumatised nation. Necessary reforms are being initiated to prevent the evil of fascism resurface again. People want to flourish in liberty, justice and dignity.
In this regard dealing with the past atrocities, political violence and abuses of power will need a credible accountability and redress mechanism. It requires strong international support, assistance and solidarity. We would like friends across the board to come forward and be a part of this historic journey.
We wish to have a strong partnership with the people and civil society organizations who share the similar values, commitment and hopes for a better world in Asia Pacific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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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ain Billah Zahir is a civic engagement thought leader, KDF International Democracy Goodwill Ambassador and currently serving as one of the members of the Constitutional Reform Commission in Banglad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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