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강산보>의 파리 시사회는 기록으로 발견된 최초이자 유일한 해외 상영이었다. 제작이 시작된 지 2년만이고 조선과 일본에서 개봉된 지 약 1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후 이 영화가 조선과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다시 상영된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다.
<대금강산보>의 시사회가 파리 언론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작품성 때문이 아니라 유럽에서 막 시작된 최승희의 명성 때문이었다. <대금강산보>의 내용이나 작품성을 소개한 기사나 평론은 없었고, 영화 속의 최승희의 무용 장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3월10일자 <랭트랑지장>에 실린 간략한 시사회 후기가 전부였다.
“일본 다큐멘터리와 발성영화 시사회. 먼저 다큐멘터리 <눈의 호소(L'Appel de la Neige)>가 상영되었다. 설원, 스키학교와 스키경기, 얼어붙은 거대한 호수에서의 스케이트 장면들이 있었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흰색이었고, 진행은 느렸지만 현란했다. 촬영이 매우 탁월했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는 컬러영화 <도쿄(Tokio)>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미국영화사 MGM의 제작이었다. 해설도 영어로 이뤄졌고, 프랑스어 자막이 달려 있었다. 일본을 촬영한 것이지만 일본 영화는 아니었다.
“메인 메뉴는 <산의 노래(Le Chant de la Montagne)>였다. 발성영화기는 했으나 일본어로 녹음되었고 자막도 없었기 때문에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 여류 시인이 프랑스어로 통역했다. 그녀의 프랑스어는 일본식 액센트가 조금도 없이 유창했다. 주최 측에서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저명한 코리안 무용가 최승희양을 소개했는데, 그녀는 놀랄 만큼 아름다웠고 화면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도랑쥐.”
<대금강산보>에 프랑스어 자막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인 여성 시인이 통역했다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유창한 프랑스어로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의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이로써 <대금강산보>가 파리에서 일반 상영될 수 없었던 이유 한 가지가 밝혀진 셈이다. 일본어 발성영화를 프랑스어로 전달할 수단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파리에서 일반 개봉을 하기 위한 서류작업이나 검열과정에 신청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대금강산보>가 왜 미국에서도 상영되지 못했는지 추측하게 해 준다. 1938년 2월19일의 뉴욕 길드극장 공연 이후 최승희는 거의 10개월을 공연도 없이 뉴욕에서 지냈다. 이때 최승희가 <대금강산보>의 상영을 시도해 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필름에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았고, 아마도 뉴욕에서 일본 영화에 영어 자막을 입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대금강산보>의 해외 상영용 필름에 외국어 자막을 달지 못한 것은 제작과정의 지연 때문이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 촬영이 4개월이나 지연되었고, 편집을 끝내고 시사회를 가진 것이 1937년 12월17일로 최승희가 미국으로 출발(12월29일)하기 2주 남짓 전이었다. 그 사이에 영어나 프랑스어로 자막을 입힌 새로운 필름을 마련하기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도쿄 시사회 이후 <대금강산보>는 조선용, 일본용, 해외용으로 3벌의 필름이 복사되었다. 조선어 자막이 입혀진 조선 상영용 필름은 1938년 1월29일에 개봉되었다. 복사본 제작과 자막 입히기, 그리고 운송에 약 1달이 걸렸다는 뜻이다. 복사본 제작과 운송에 걸렸던 시간은 수일에 불과했으므로 그 대부분은 조선어 자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 영화가 일상적으로 상영되던 조선의 경우에도 약 3주일의 시간이 걸렸다면, 영어나 프랑스어 자막을 다는 일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승희는 시사회를 마친지 열흘 만에 미국으로 출발해야 했다.
순회공연의 목적지마저 유럽에서 미국으로 급히 변경되는 바람에 온갖 준비가 미비했을 최승희는 결국 영어나 프랑스어 자막을 입히지 못한 <대금강산보> 필름을 가지고 해외 순회공연 길에 올라야 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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