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역(1900-1922)과 경성역(1923-1945)은 경성의 최고 명소였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여행안내서에는 조선호텔과 함께 경성역의 사진이 빠진 적이 없었다. 또 경성역은 신문과 잡지, 방송 등의 미디어는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새로운 문물이 모두 이 역을 통해 경성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남대문역은 1922년 6월부터 신축공사가 시작되어 1925년 9월에 완공되었고, 공사 중이던 1923년 1월1일부터 경성역으로 개칭되었다. 신청사 완공 후에는 식당업무가 크게 증가했다. 2층 구내식당에는 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이 구비되었고, 1층에는 1등 승객 대합실 옆에 <티룸>이 생겼다. 지하1층에도 일식당과 양식당, 그리고 중식당이 영업을 개시했다.
남대문역 시절과 경성역 시절을 막론하고 이곳의 식사비는 비싸기로 유명했다. 앞서 소개한 1916년 10월20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기행문 “철원행”에는 홍차 값이 바가지요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남는 30분을 이용하여 정거장 끽다점에서 양식 2-3품을 먹으려고 들어간즉 뽀이가 말하기를, ‘시간이 절박하여 조달치 못하니, 산도우잇지(=샌드위치) 같으면 된다’ 하는 고로 부득이 산도우잇지를 주문하고 (동행) 김군과 함께 홍차 1잔씩을 마시는데, 5분 남았다는 종소리가 발차를 재촉하므로 계산한즉 산도우잇지 3개와 홍차 2잔에 그 값이 1원40전이라고 했다.
“무심히 지불하고 승차 후 생각해 보니 그 값이 지나치게 높았다. 산도우잇지 1개는 25전이나 30전으로 기억하는데 30전으로 하여도 3개에 90전이다. 그러므로 홍차 2잔의 가격이 50전이라면 이는 매우 높았던 것이다. 질문해 보고자 했으나 시간이 절박하니 어찌하겠는가. 이는 필시 뽀이의 계산 착오인 듯하다.”
글쓴이가 지불한 샌드위치와 홍차 두잔 값 50전은 종업원의 계산 착오가 아니었을 것이다. 1930년대까지도 경성 시내의 커피 값은 10전이거나 그 이하였다. <남대문역 끽다점>에서 그보다 2.5배 비싸게 받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스타벅스 커피는 그랑데 사이즈가 5천원으로 결코 싼 편이 아니지만, 유수 호텔의 커피 값은 2만원 이상이다.
또 <조선급만주> 1934년 6월호의 “식당순례”에 따르면 경성역 구내식당의 일식 아침식사는 60전, 점심과 만찬은 1원이었고, 양식의 경우는 아침이 80전, 점심과 만찬은 1원25전이었다. 1936년에 조사된 활판식자공의 평균 일당이 1원21전, 이발공의 일당이 1월23전이었다. 숙련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한 끼 식사비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리석 석공의 하루 일당은 숙련도에 따라 12-20만원이다. 한끼 식사비가 15만원이라면 “철원행” 저자의 말마따나 ‘지나치게 비싼 것(太高)’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남대문역 끽다점>이나 <경성역 구내식당>은 그처럼 높은 가격이 용인될 만큼 고급 시설이었던 것이다.
음식값이 높은 만큼 식재료와 요리 솜씨가 좋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신선한 고급 식재료 공급에 수완을 가진 사람들이 선발되어 식료품 및 잡화의 공급 계약을 맺곤 했다. 경성의 명사들의 이름을 수록한 <경성시민명감(1921)>에는 <남대문역 끽다점>에 식자재를 공급하면서 부자가 된 마츠이 카이치로(松井嘉一郞, 1877-?)의 이름도 올라있다.
히로시마현 출신인 마츠이 카이치로는 1904년 2월, 27세의 나이로 조선에 건너와 경성의 식료잡화상점인 무라타(村田)상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2년 후인 1906년 3월 그는 무라타 상점을 인수해 조선주차군 사령관 관저와 군사령부에 식료품과 잡화를 공급했다. 군납 계약을 따낸 것이다.
이후로도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관저, 1911년부터 리왕직 선무실에 식료품을 납품했다. 1913년 4월부터는 철도국 남대문역 끽다점과 식당차용 물품을, 1914년 10월부터는 철도국 호텔(=조선호텔)에 식료품을 납품했다.
마츠이 카이치로는 경성 주요기관의 식료품 공급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남촌의 최부촌 욱정(旭町) 3-199번지 저택에서 살면서, 경성의 명사 인명부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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