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역 끽다점(1909-1922)>과 <경성역 그릴 및 끽다점(1925-1945)>은 경성시민들의 여행공간이자 생활공간이었지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공간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강우규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1858-1936)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한 사건이다.
강우규(姜宇奎1855-1920)는 54세였던 1919년 9월2일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폭탄으로 저격했으나 폭탄이 다른 데로 떨어져 터지는 바람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평안도 덕천 출생인 강우규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기울자 만주 북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1910년 조선이 강점되자 가족들을 노령으로 이주시켰고, 1915년부터는 요동과 블라디보스톡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이 시기 강우규 의사는 요동반도 요하 주변에 농토를 개간하여 신흥촌(新興村)이라는 한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강우규는 총독 암살을 결심하고,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해 원산부를 거쳐 경성에 잠입했다. 거사일인 9월2일 아침, 일찍부터 남대문역에 나와 기다리다가 2층 귀빈실을 나서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빗나갔다. 폭탄은 일제 관헌과 일본인, 친일파 조선인 환영객 3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강우규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경성 시내에서 도피하던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 높은 총독부 고등계 형사였던 친일파 김태석(金泰錫)에게 체포되어 9월17일 수감되었다. 이후 총독부 고등법원 재판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아, 1920년 11월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그는 거사, 체포, 재판, 교수형을 당하기까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시종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강우규 의사의 생애와 의거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송상도(宋相燾, 1871-1947)의 <기려수필(騎驢隨筆)>에 기록되어 있다. <기려수필>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에 자결 순국한 이시원부터 개항기 의병전쟁, 안중근, 김지섭,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239명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은 강우규 의사의 거사일 아침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9월)2일 아침에 나와 보니 남대문역에는 구경군들이 이미 차 있었다. 강우규는 들어가 끽다점 앞에서 기다렸다. 사이토가 귀빈실을 나서 마차에 올라타려고 하자 강우규는 (폭탄의) 안전판을 뽑아내고 그것을 멀리 던졌다. (二日朝出, 南門驛觀者已塞塡, 宇奎入喫茶店前以待之, 於是齋藤出貴賓室, 方乘馬車, 宇奎拔安全栓, 大投之).”
<기려수필>에 따르면 아침 일찍 남대문 역에 도착한 강우규 의사는 역사 2층으로 올라가 <끽다점> 앞에서 사이토 마코토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사이토 마코토가 기차에서 내린 후 잠시 머물렀던 귀빈실이 2층이었고, 또 끽다점이야말로 일제 관헌의 주목을 끌지 않으면서도 거사 시간을 기다리기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끽다점이 일제 요인 암살에 활용된 것은 안중근 의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일인 1909년 9월2일 아침, 하얼빈 역의 끽다점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당시의 공판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검사: 이토 공작이 승차한 열차는 몇 시에 도착하였는가?
안중근: 나는 7시경부터 기다리며 끽다점(喫茶店)에서 차를 마시고 있은즉 9시경에 공작의 열차가 도착했다.
검사: 이토 공작이 승차한 열차가 도착했을 때 그대는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진술하라.
안중근: 내가 끽다점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열차가 도착했다. 주악이 있었고 병대가 경례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차를 마시면서 이토가 하차하는 것을 저격할까 또는 마차에 타는 것을 저격할까 하고 생각했다.
안중근 의사와 강우규 의사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역사적 순간을 기다리면서 침착하게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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