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본대사관의 최승희 환영 리셉션
1939년 1월21일 파리주재 일본 대사관은 최승희 환영 리셉션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파리주재 외교관들과 언론인, 무용가와 무용평론가들이 대거 초청됐다. 리셉션 개최 목적은 최승희의 공연 홍보였다. 한편으로 이는 최승희의 바람이기도 했다. 유럽까지 와서 공연에 실패할 수는 없었으므로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얻어야했다.
따라서 일본 대사관이 제공하는 환영 리셉션을 흥행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였다. 또 일본대사관의 협조를 거절할 명목도 없었고, 만약 이유 없이 거절했다면 더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일본 대사관이 베푼 환영 리셉션은 최승희의 조선인 정체성 주장에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했다. 자신을 ‘꼬레안느 무용가’로 소개하고 싶었던 최승희의 바람이 완전히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 리셉션이 일본 대사관에서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파리의 언론인들은 “최승희는 일본인”임을 인식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표3>에 보이듯이 리셉션 이후 살플레옐 공연 때까지 파리의 언론에 보도된 32개의 기사에서 최승희를 ‘꼬레안느 무용가’로 소개한 것이 단 1건, ‘극동의 무용가’로 서술한 것이 5건에 불과했고, 대다수(26개)가 ‘일본인 무용가’였다. 파리 언론은 ‘꼬레안느 무용가’로 소개되고 싶은 최승희의 소망보다 ‘일본인 무용가’로 홍보하려는 일본 대사관의 요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표3>을 <표2>와 비교하면 <파리 수와(Paris Soir)>는 1월8일의 보도에서 최승희를 ‘꼬레안느 무용가’로 소개했지만 1월22일 보도에서는 ‘일본인 무용가’로 수정했다. <르마탱(Le Matin)>은 1월28일의 공연단신에서는 최승희를 ‘극동인 무용가’로, 공연일정표에서는 ‘일본인 무용가’로 표기했지만, 사흘 후인 1월31일의 신문에서는 모두 ‘일본인 무용가’로 서술했다.
파리에서 발행되어 전 유럽으로 배포되었던 영자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1월20일과 22일, 31일 기사에서 모두 최승희를 ‘일본인 무용가’라고 기술했으며, 당시 파리 내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이었던 <파리수와>와 <르마탱>, <르땅>과 <르피가로>, <르주날> 등이 모두 최승희를 ‘일본인 무용가’로 표기했다.
심지어 살플레옐 공연 당일에 배포된 프로그램조차도, 최승희 측에 의해 준비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꼬레안느 무용가’가 아니라 ‘극동의 무용가’로 서술했다. 즉, 최승희 자신도 입장을 후퇴시킨 것이었다. 이는 일본 대사관의 감시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 시기에도 최승희의 작품은 모두 ‘꼬레안느 무용’으로 소개되었다.
일본 대사관의 리셉션이 최승희의 민족 정체성 주장을 저해했지만 순기능도 있었다. 최승희와 일본 대사관 사이의 긴장을 느낀 파리의 언론인들이 꼬레와 쟈폰의 관계에 대해 더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르앵트랑지장(L‘Intransigeant)>은 일본 대사관의 최승희 환영리셉션에 대한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시켰다.
“일본 대사관은 어제 오후 5시 무용가 최승희를 위해 리셉션을 열었다. 최승희씨가 일본인이 아님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극동인 중에서는 인종적으로 몽골 인종에 더 가깝다. 그러나 한국은 약 30년 동안 일본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일본제국의 대사대리와 미야자키 부인은 이 무용가를 ‘동포’로서 따뜻하게 환영했다.”
최승희가 일본인과 인종적으로 다른 한국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한국이 일본에 30년간 합병되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이러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파리와 파리 신문이 보급되는 프랑스의 다른 지역, 나아가 파리 신문이 전해지는 벨기에나 스위스 등의 유럽 각국에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사실과 “최승희는 꼬레안느”라는 사실이 점점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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