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이 바쿠는 그의 <팜플렛 제1집>에서 <갇힌 사람>의 악상이 “나폴레옹군이 모스크바 전투에서 패배한 것에서 떠오른 것”이지만 정작 “무용작품의 핵심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인간... 외로운 인간... 수탈받고... 자유를 잃어버린...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서술했다.
인간의 속박과 자유에 대한 실존적 모습을 표현한 <갇힌 사람>은 경성공회당에서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관람했던 최승희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 작품 중의 하나였다. 그는 <나의 자서전(1936:)>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용을 천하고 낮은 것으로만 생각하던 나는, 오빠의 말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열심히 무대를 바라보던 중에 내 모든 것이 강력한 매력에 이끌려 무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 물 흐르는 듯 아름답게 그려지는 육체의 선의 율동과 즐거운 꿈과 같은 멜로디의 울림에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황홀한 세계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첫눈에 현혹되었던 것보다 더욱 강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시이 선생님의 유명한 작품 <갇힌 사람>이나 <멜랑콜리>, <솔베지이의 노래>와 같은 무용에 흐르는 힘찬 정신이 내 작은 가슴 속에 꿈틀거리던 영혼을 불러일으키면서 끝없는 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최승희가 잡지 <삼천리(1936년 1월호, 108쪽)에 기고한 “나의 무용 10년기”라는 글에는 <갇힌 사람>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을 다음과 같이 더욱 생생하게 서술했다. (이 글은 <나의 자서전(1937:37)에도 전재되어 있다.)
“석정막(石井漠=이시이 바쿠) 무용회의 밤! 이 밤은 나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인상 깊은 밤이었다. 동라(銅鑼)의 소리가 나자 불이 꺼지고 젤라틴을을 통하여 코발트빛과 그린의 빛이 교차하는 가운데 무슨 곡조인지 장중한 피아노의 멜로디가 시작되면서 석정막씨의 독무 <수인>이 시작된다. 쇠사슬에 얽히어 무거운 걸음으로 무대를 밟는 그의 한 발자국 두 발자욱!
“아! 나는 그때 저것은 춤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여태껏 춤이란 기쁘고 즐거운 때만 추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무거운 괴로운 것을 표현하면서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그는 그 굵은 쇠사슬을 끊고 하늘을 우러러 고개를 들고 두 팔을 들어 환희를 표현하면서 무대에 거꾸러지고 만다. 다시금 동라는 울리면서 스포트 광선은 꺼지며 장내의 전기는 켜진다.”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의 <갇힌 사람>을 처음 관람하면서 느꼈던 충격은 유아사 가츠에()의 <성난파도의 외침(怒濤の譜)>에도 서술되어 있다. <성난파도의 외침>은 최승희와 안막의 친구인 유아사 가츠에가 최승희의 반생을 소설형식으로 서술한 전기이다.
“‘가슴이 마치 전율을 하듯 벅차오르면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숨을 멈추고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고 덜덜 떨리는 무릎을 필사적으로 꼬면서 그 충동을 억제할 정도였지요. ... 그 때까지 무용이라고 하면 기생의 요염한 춤이나 일본인 무희들이 박람회에서 선보이는 손동작을 중시하는 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
“그런데 이시이의 무용을 통해서 그런 기존의 개념이 깨어져 버렸다. <붙잡힌 사람들(=갇힌 사람)〉은 ...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은 사람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번민을 상징적으로 연출한 무용인데, 최승희는 15세의 나이에 그 무용의 내용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전율과 무릎이 떨리는 감동을 받을 정도의 감성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갇힌 사람>을 처음 관람하면서 최승희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던 것으로 묘사되었다. “가슴이 전율하듯 벅차오르고, 고함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이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고 덜덜 떨리는 무릎을 필사적으로 꼬”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충동과 감격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증폭되어서 결국 그로 하여금 이시이 바쿠를 따라 무용가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것이다. (*)
'조정희PD의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희의 부산공연] 5-6. 부산공연 작품 <산을 오르다> (0) | 2021.12.11 |
---|---|
[최승희의 부산공연] 5-5. 부산공연 작품 <개구장이> (0) | 2021.12.10 |
[최승희의 부산공연] 5-4. 부산공연 작품 <갇힌 사람> 4. 영상 (0) | 2021.12.04 |
[최승희의 부산공연] 5-4. 부산공연 작품 <갇힌 사람> 3. 음악 (0) | 2021.12.04 |
[최승희의 부산공연] 5-4. 부산공연 작품 <갇힌 사람> 2. 창작 연도 (0) | 2021.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