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의 조선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나이 산정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생일을 정하는 데 사용하는 달력으로 음력양력의 두 가지가 있고, 그 각각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방법이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의 세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력이란 흔히 말하는 그레고리력이다. 한국에서는 1895년 김홍집 내각에 의해서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그레고리오력 채택을 추진했고, 고종은 김홍집의 의견을 받아들여 음력 18951115일에 공식적으로 개력을 반포, 음력 18951117일을 양력 189611일로 정하고,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며 왕의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변경하기까지 했다.

 

책력을 관장하던 기관도 이름을 관상감에서 관상소로 바꾸고 양력 달력을 발행, 배포했으나, 갑작스런 양력 채택으로 일반 백성뿐 아니라 궁궐 행사에도 혼란이 초래됐고, 음력에 맞춰 농사를 짓던 농촌에서는 새 달력에 반발했다. 책력을 양력으로 바꾸고 왕의 연호까지 건양으로 정한 것은 중국에서 독립하려는 의지로 보였지만, 사실은 일본에 종속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양력과 친일파에 대한 반발로 양력 시행은 저항에 부딪혔고, 시행 1년 만에 과거의 시헌력(時憲曆)으로 돌아갔으나, 일제의 강점(1910)으로 조선은 재차 양력을 사용해야 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의 일환으로 1873년에 음력을 완전히 폐지하고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었다.

 

조선에서 사용하던 시헌력(時憲曆)은 순수 음력이 아니라 양력과 음력을 합친 태음태양력이었다. 태음태양력은 한 달의 날짜를 정하는 데에는 달의 움직임을, 하루의 시간과 일 년의 계절을 정하는 데에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은 달력이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에서 쓰인 책력은 모두 태음태양력이다. 신라와 고구려는 인덕력(麟德曆), 백제는 원가력(元嘉曆)을 쓰다가 통일신라에서는 대연력(大衍曆), 후기에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했다. 고려에서도 통일신라의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썼으나 충선왕 때에 수시력(授時曆)을 채택했고, 공민왕19(=1370)에 수시력의 이름을 바꾼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했다. 조선에서는 <칠정산내편>에 의해 수시력을 수정하여 사용하다가 효종4(=1653)에 마테오리치가 개발한 서양식 계산법을 사용한 시헌력(時憲曆)을 채택해 대한제국 시기까지 이르렀었다.

 

 

한편 20세기 초반 조선인들의 나이를 세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가장 널리 쓰이던 것이 세는 나이였다. 태어나자마자 1살로 정하고, 이후 새해를 맞을 때마다 1살을 더하는 방식이다. 이는 생일이 언제인가와 상관없이 새해를 맞을 때 1살을 먹는 방식인데, 이때의 새해는 음력상의 새해, 즉 설을 가리켰다.

 

만 나이는 양력의 도입과 함께 본격화되었고, 특히 일제 강점 이후에는 공식 기록에 남기는 유일한 나이가 되었다. 태어났을 때를 0세로 보고, 출생 후 첫 번 생일을 맞으면 1세가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관공서 기록에 반드시 만 나이를 써야 했고, 그에 준하는 학교와 회사에서도 만 나이를 사용했다.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가장 간단한 나이 산정 방식이다. 당사자의 생일을 모를 때 사용하며, 신문이나 방송 등의 언론매체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세는 나이가 음력(사실은 태음태양력) 및 대한제국과 연결되고, ‘만 나이가 양력 및 일제침략과 연관되어서 관공서나 교육기관에서는 만 나이를 써야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는 세는 나이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와 30년대까지도 세는 나이(일상)와 만 나이(관공서), 연 나이(언론)의 적용이 이상과 같이 엄격하게 분야별로 지켜진 것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학무국이 정한 취학연령은 만8세였지만 최승희는 19184, 즉 세는 나이로 8세 때에 숙명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6325일의 <경성일보>와 326일 <매일신보>는 이시이 무용단에 입단해 무용 유학을 떠나는 최승희가 16세라고 보도했지만, 당시 최승희의 만나이는 14세였고, 16세는 세는 나이였다. 말하자면 일제강점 이후 1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도 조선에서는 세 가지 나이 중에서 세는 나이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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