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323, 최승희가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325일 아침 이시이 무용단에 입단해 도쿄 유학길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가 16세라고 보도되었다. 325일자 <경성일보>는 최승희와 이시이 바쿠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조선 예찬자 바쿠씨가 이번 조선 방문을 기회로 조선 소녀를 제자로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일행이 경성 제3회 공연을 끝낸 23일 밤10시경 공회당의 이시이씨 일행의 대기실을 찾아와 제자가 되고 싶다고 부탁한 아름다운 조선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경성)부내 체부동 137번지 최준현씨의 영양(令孃) 최승희(崔承喜, 16)였다.”

 

 

326일자 <매일신보>는 최승희가 문사 최승일의 여동생이라는 점, 숙명여고보의 우등 졸업자라는 점, 그리고 325일 아침에 이미 도쿄를 향해 출발했다는 점 등을 보강하며 후속 기사를 게재했다.

 

유럽 순회공연의 길을 가는 중에 경성(서울)에 이르러 공회당에서 공연을 하자, 특히 무용시가 남매의 눈에 띤 가련한 흰옷 입은 조선 소녀의 아담한 자태가 매우 흥미를 끌어 결국은 조선 소녀를 몇 명 제자로 쓰겠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에 대하여 청년 문사 최승일(崔承日)씨의 영매로 올해 봄 숙명(淑明)여자고등보통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최승희(崔承喜, 16)양이 다행히 부모의 승낙과 이시이씨 남매의 눈에 들어 이십오일 아침 경성을 떠나게 된 것이다.”

 

<매일신보>327일의 보도에서도 숙명여학교 고등과 우등 졸업생 최승희(崔承喜, 16)양이 세계적 무용가 석정막(石井漠) 석정소랑(石井小浪)의 남매에게 제자가 되어 이십오일 아침 경성 역을 떠나 스승을 좇아 세계만유의 길을 떠났다함은 직보한 바 있다고 거듭 밝혔다.

 

 

이 두 매체의 보도에 나타난 최승희의 당시 나이는 16세였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19111124일생으로 알려진 최승희는 19263월말 현재 만 나이14(+4개월)이었고, 언론에서 흔히 쓰는 연 나이로도 15세였기 때문이다. 최승희의 나이를 16세라고 보도한 것은 조선식 세는 나이였던 것이다.

 

최승희의 여학교 졸업 당시 나이가 만14세밖에 되지 않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조기입학이다. 최승희는 19184월 숙명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나이가 만6세로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정한 취학연령 만8세에서 2살이나 모자랐다. 부친 최준현의 교육열과 최승희 자신의 영민함 때문에 세는 나이만 나이로 여기며 일찍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는 2년의 이른바 월반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을 발표했는데, 보통학교(=초등학교)의 교육연한을 4년에서 6년으로, 고등보통학교(=중학교)의 교육연한을 3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였다.

 

이 때문에 1922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혼란이 생겼는데, 2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보통학교 졸업 후 바로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고등보통학교 입학지원 자격이 ‘6년의 소학교(일본인) 혹은 보통학교(조선인)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총독부 학무국은 1922년 보통학교 졸업자들이 2년의 보습과를 이수한 후 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도록 지침을 정했지만, 그 시행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겼다. 숙명여고보의 이정숙(李貞淑) 교장은 이 재량권을 활용해서 보통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보습과를 건너뛰고 바로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도록 허용했는데, 최승희가 그 혜택을 입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승희는 동급생들보다 최대 4살 어린 나이에 숙명여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졸업한 것이 최승희에게 도움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도쿄음악학교와 경성사범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연령 제한을 벗어나기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오빠 최승일의 권고에 따라 이시이 무용단에 입단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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