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1920년대에 태동해 30년대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다가 40년대 들어서는 일제의 군국주의적 문화 압살 정책에 짓눌려버렸다. 그래서 일제에 부역하는 일부 국책영화를 제외하고는 예술영화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예술 장르이자 계몽의 수단이었던 연극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사실상 호남지역의 연극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뿌리도 깊고 저변도 넓은 편이었다.

 

호남 연극이 태동한 것은 1909년경이었다. 판소리가 서구 연극적 형태로 이행돼 만들어진 창극이 우리나라 연극의 시작인데, 김창환이 정학진, 유성준, 김정길 등 이 지역 명창 50여 명을 규합하고 <김창환협률사>를 조직, 그해(1909) 가을 광주천변(현 양림교 부근)에 가설무대를 설치해 공연한 것이 그 시초였다.

 

 

호남 연극사를 보면, <김창환협률사> 이후 1910년대에는 신파극이 유입되었고, 1920년대에는 근대극이 형성되었다. 1930년대에는 연극이 항일운동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나, 1940년대에는 일제관헌의 검열을 받아야하게 되면서 잠복기에 들어갔다.

 

해방 후 호남인들의 연극 욕구는 다시 폭발했다. 19489월 창립된 조선대 연극회가 그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연극 붐은 195611월 광주극장에서 첫 막을 열었던 <전국학생연극제>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 중요한 것은 조선대 연극회가 창립된 것이 호남 연극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과 이학동 선생님이 그 연극회의 창단 멤버이셨다는 점이다.

 

정식 이름이 <조선대 극예술연구회>인 조선대 연극회는 현지에서는 <조대극회>라고 줄여 부른다. 이 대학의 연극 동아리인 조대극회는 오늘날까지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20101111일자 <경향신문>은 조대극회의 1백회 정기공연을 보도하면서 조대극회가 (201011) 17~18일 두 차례 펼칠 연극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 연습 무대를 소개했다.

 

 

이 연극은 인간의 탐욕, 권력욕, 성적 일탈 등을 꼬집은 셰익스피어 작품 37개를 각색해, 저물어가던 조선말의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였다고 한다. ‘철종 13은 진주민란이 일어난 1862년을 가리킨다. 유교사회 기득권에 대한 민중봉기의 물꼬를 튼 대사건이다.

 

조대극회의 100번째 정기 공연은 연극의 뿌리가 깊은 광주전남의 연극사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진기록이다. 이 작품의 러닝타임은 3시간인데 어떤 기성극단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출연 배우가 57, 연출, 조명 등 스태프가 20명에 이르렀다. 이 공연의 총기획자인 김영윤씨(81학번)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 선배들은 약 2달 사이에 제작비 1억원을 모금했다고 전했다.

 

정기공연 1백회만 하더라도 대학 연극부가 해낸 것은 조대극회가 유일하다. 그만큼 조대극회의 저변이 넓고 깊이가 깊다는 뜻이다. 조대극회로부터 시작된 전남 광주 지역의 연극 붐은 1956<전국학생연극제>로 절정에 달했고, 이후 연극협회 전남지부 발족(1962), 전대극회 창립(1965) 등으로 이어졌다. 전남 광주 지역의 연극 붐은 7-80년대에 전국적인 침체기를 거쳤으나 광주연극제 시작(1987), 광주학생연극제의 부활(1991), 광주지역 여배우들의 모임인 여우회창립(1996), 소극장연극축제의 시작(1998) 등으로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광주 전남 지역의 연극이 융성하게 된 계기가 1948년의 조대극회 창립이었다는 점은 지금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당시 조대 미대 3학년이었던 이학동 선생이 그 창단 멤버 중의 한 분이셨던 것이다. 그해 9월 현 무등시네마 자리인 동방극장에서 <무의도 기행>이 상연되었던 것이 조대극회의 첫 정기공연이었고, 1952년 한국전쟁 와중에도 <귀촉도>를 들고 목포, 군산 등을 누빌 만큼 조대극회의 활동은 왕성했다.

 

이학동 선생님의 작품 <남매>가 나주극장에서 상연되었던 것도 전남 연극 붐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 작품의 기획과 연출, 상연과 반응 등을 조사하여 잘 정리하는 것은 전남 연극 운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학동 선생님 2차 인터뷰에서는 나주극장에서 1달간 상연되었던 <남매>가 중요 사안으로 조사되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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