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최승희 선생의 <에헤야 노아라>가 ‘한량’의 술 취한 모습을 묘사한 춤이라고 서술했다. 작품의 의상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한량 복장에 갓을 쓰고 경쾌하게 추는 춤”이라고 했고, 결정적으로 “한성준에게서 배운 태평무와 한량무를 기초로 새롭게 해석”한 춤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과연 <에헤야 노아라>가 한량의 모습을 묘사한 춤이었을까? 조선시대의 한량이란 하는 일 없이 노는 부잣집 젊은이를 가리켰다. 학문이나 수양에 힘쓰는 넉넉한 집안의 자제를 한량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주색잡기에 빠진 젊은이, 혹은 난잡성이나 퇴폐성은 그보다 덜하더라도 풍류와 노름에 빠진 부잣집 젊은이를 한량이라고 불렀던 것이 보통이다.
한량이란 특정신분이나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복식이 별달랐을 리 없다. 한량이라면 보통 양반 자제이었으므로 그들의 복장은 ‘양반 복장’이었고, 집안이 부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좋은 옷감의 바지저고리에 쾌자와 가죽신 등을 곁들인 호화로운 복장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량 복장’이라는 특별한 복식이 따로 있었을 리는 없다.
또 최승희가 이 춤을 한성준에게서 배운 태평무와 한량무를 기초로 창작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시기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에헤야 노아라>의 초연은 1933년 5월20일인데, 최승희가 한성준으로부터 조선무용을 사사받은 것은 1934년 6월경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승희가 창작한 작품 중에 <한량무(1938)>가 따로 있다. “한성준에게서 배운 태평무와 한량무를 재해석해 창작했다”는 작품은 바로 이 <한량무>일 가능성이 크다. 정병호(1985)에 따르면 이 <한량무>의 창작연대는 1939년이었는데,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1938년 2월2일 LA 이젤극장 공연이 그 초연이었다. 어떤 경우이든 이 작품은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7.12-1940.12) 중에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이춤(=<에헤야 노아라>)은 1933년에 창작되었지만 춤을 무대에 올린 것은 1934년 5월 동경의 일본청년회관에서 열린 여류무용발표회”라고 밝혔던 것을 보면, 이 작품이 <한량무(1938)>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보다 5년이나 이른 시기에 창작된 <에헤야 노아라(1933)>는 한량을 묘사한 춤이라고 보기 매우 어렵다.
<에헤야 노아라>가 한량을 소재로 한 춤일 수 없다는 사실은 최승희 자신의 증언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는 <나의 자서전(1936)>에서 <에헤야 노아라>는 자신의 부친 최준현씨가 추던 <굿거리춤>을 배워서 작품화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술에 취한 자신의 아버지가 추었던 굿거리춤에서 영감을 얻어낸 작품”이라고 서술했다. <나의 자서전(1936, 7-8쪽)>에 서술된 내용을 직접 인용해 보자.
“도련님으로 자라신 아버지는 대단한 미남이셨고, 게다가 술자리도 좋아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예능에도 능하셨는데, 그중에서도 <굿거리춤>을 가장 잘 추셨습니다. 흥에 겨워 아버지가 추시던 “굿거리춤”을 재미있게 바라보면서 어린 나도 어느새 이 춤을 외워버렸습니다.
“나중에 이시이 바쿠 선생님의 작품 발표회에서 ‘네 작품도 하나 발표하지 않겠느냐?’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장 먼저 아버지의 <굿거리춤>을 떠올렸습니다. 쇠퇴한 조선무용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예술적으로 소생시키고 싶었던 나에게, 조선에서 태어난 무용가인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새로운 예술작품 창작의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그 춤을 소재로 삼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나의 중요한 레퍼토리 중의 하나인 <굿거리춤>은 결국 아버지가 추셨던 <굿거리춤>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외워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즉, 이 작품의 주인공은 중년 이상의 조선인 양반 남성이다. 그리고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을 한량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시대의 관행이 아니었다.
이상의 여러 문헌 증거와 상황 추론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에헤야 노아라>의 소재를 ‘술 취한 젊은 한량’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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