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결혼 소식은 경성 장안을 강타했다. 예술가와 연예인의 구별이 모호하던 시절, 근대 예술무용의 개척자이면서도 아름다운 용모와 시원시원한 몸매로 만인의 애인 대접을 받던 최승희가 아직 학교도 마치지 않은 ‘백면서생’ 안막과의 결혼을 발표하자 인텔리 계층은 물론, 화류계의 단골 한량들과 일반 대중까지도 충격을 받았다.
최승희의 결혼 소식은 속속 언론에 보도되었다. 최초의 보도는 뜻밖에도 일간지가 아니라 종합월간지 <별건곤>이었다. 1931년 4월호에 “최승희양이 약혼했다...고 한다”는 추측기사를 내보냈다. 호기심을 잔뜩 유발하는 이 기사에는 최승희의 짧은 인터뷰도 삽입되었는데, 최승희는 “언젠가 결혼은 하겠지만 정해진 것은 없고, 약혼했다는 풍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런데도 기자는 이 대답을 묵살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최승희양이 약혼을 하였다는 것은 전연 사실도 아니요, 전연 거짓말도 아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앞으로 결혼할 것을 부인은 아니 한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약혼까지는 아니 하였더라도 인제 오래지 않아 약혼을 할 전야(前夜)에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추측이 빗나간다면 최양을 비롯하여 만천하의 최양 패트론에게 백배 사죄 하겠다.”
기자에게는 다행하게도 이 추측보도는 맞아 들어갔다. <별건곤>의 추측기사가 나간 지 한 달이 지난 5월9일 오전11시 흰색 투피스 양장 차림의 최승희와 밝은 색 ‘세비로’를 입은 안막은 서정희 선생의 주례로 결혼식을 마치고, 청량리 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타고 함경남도 석봉산의 고찰 석왕사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최승희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4월호 잡지에 내려면 취재는 3월 중에 이뤄졌을 것인데, 그때는 최승희와 안막의 결혼 결정이 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언론의 최승희 결혼식 보도는 혼란스러웠다. <별건곤>은 5월호에서 “최승희 양이 정말 결혼을 한다”고 보도했지만 결혼일시와 결혼식장을 밝히지 못했다. 5월5일의 <조선일보>는 “결혼식은 9일 오전11시”라고 전했지만 “장소는 <공회당> 사정으로 아직 미정”이라고 했다. 아마도 경성 공회당을 결혼식장으로 섭외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성사되지 않았고, 결혼식이 4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식장은 발표되지 않았다.
결혼식 3일 전인 5월6일에야 <매일신보>는 “그들의 결혼은 오는 9일 낮에 시외 <청량사>에서”라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5월7일 최승희 결혼 소식을 단신으로 전하면서도 결혼식장은 언급하지 않았다. 마침내 <경성일보>가 결혼식 당일(5/9)에야 “최승희양은 9일 경성부 바깥 청량리의 <청량관>에서 서정희씨의 주례 아래 안막군과 결혼식을 거행한다”고 보도했다.
<청량관>은 동대문 밖 청량리에 연회장을 갖춘 요리집이었다. 그 지역은 지금의 홍릉 근처로 경치 좋은 유원지였다. 젊은 커플들은 <청량관>에서 결혼식을 했고, 학교들은 운동회를 열었고, 동문회나 사회단체들은 총회를 개최했다. 윤치호도 가족이나 요인들과 함께 식사하러 이곳에 올 정도였다. 1920년대면 청량리까지 가는 전차도 개통되었기 때문에 교통도 편했다.
결혼 당일까지의 보도를 종합하면 안막과 최승희의 결혼은 급하게 결정되었거나 결혼 소식을 공표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식장 섭외가 늦었거나 발표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승희는 소공동의 경성공회당을 예식장으로 확보하려 했던 것 같으나 실패했고, 결국 청량리의 사찰 청량사(매일신보) 혹은 요리점 청량관(경성일보) 중에서 한 곳을 결혼식장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혹은 두 신문 보도를 상충되지 않게 종합한다면, <청량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청량관>에서 피로연을 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최승희-안막 부부의 결혼식 장소를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이후의 문헌에서 당시 언론 보도와 상충되는 기록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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