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와 최승희의 회상에 따르면 그가 결혼식을 올렸던 곳은 불교 사찰 영도사와 청량사, 그리고 요리점 청량관으로 좁혀졌다. 이 세 장소는 모두 청량리에 있지만 같은 곳은 아니다.
영도사(永導寺)는 최승희가 1935년 7월호 <삼천리>에서 자신이 결혼한 곳이라고 주장한 불교 사찰이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6년 이성계의 국사 무학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의 이름이 영도사인데, 1799년 정조의 후궁 홍빈(洪嬪)의 묘인 명인원(明仁院)이 들어서면서 영도사는 동쪽으로 2마장쯤 이전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절터를 옮기면서 당시 주지였던 인파화상(仁波和尙)은 절 이름을 개운사(開運寺)라고 고쳤지만, 1930년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절을 원래 이름대로 영도사라고 불렀다. (돈암동 고려대학교 캠퍼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절은 지금은 <개운사>라고 불리고 있다. 오늘날의 주소는 ‘서울 성북구 개운사길 73’ 혹은 ‘안암동 5가 산4-11번지’이다.)
1925년 6월17일 <동아일보>는 영도사를 소개하면서 “어둠 속에 헤매는 삼계중생을 깨우치는 종소리가 한번 때-ㅇ하고 울리매 울울창창한 솔밭사이로 그 소리가 멀리멀리 퍼지어 인근 산촌의 농사짓는 백성들은 물론 십리를 격한 문안 사람들까지 불덕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선남선녀가 문턱에 닿았”고 “그때야말로 극락세계”였다고 했다.
그러나 1921년 영도사가 1만8천원의 거금을 들여 대대적으로 새 단장을 한 후 하루 관광객이 5-6백명에 이르면서 시속이 변했다. 영도사 승려들은 20여 호의 밥집을 만들어 밥과 술과 요리를 팔면서 방문객들은 음주가무와 음담패설로 절터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2년 11월8일의 <매일신보>는 <영도사 유기(遊記)>라는 기고문에서 “원래 사원은 진인(眞人)의 지경(境)이요 신성의 영역(域)”이지만 “근년에는 진인속객(塵人俗客)의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장소로 변하였으며 청년탕아(靑年蕩兒)의 유희오락의 장소로 되었”다면서 이것은 “사원이 주사(酒肆)와 요정(料亭)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년탕아의 유희오락의 장소”라고 한 것은 영도사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자주 이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전무길의 소설 <과도기(1932)>에 “춘자가 영도사에 놀러 갔다가 영식이에게 몸을 허락한 것도 벌써 두 달이나 되었다”는 대목이 나오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영도사의 풍기가 문란해지고 폭력이 빈발하고 심지어 범죄의 온상이 되자 일본 경찰까지 단속에 나섰다. 1927년 6월7일의 <중외일보>는 “최근 동대문 밖 각 승방 사찰에는 탕자와 음녀가 가위 진을 벌이고 주야로 떠나지 아니하여 신성타는 불경이 자못 노류장화의 음분한 지경을 이룬 까닭에 ... 소관 동대문서는 5일 새벽 4시를 기하여 ... 영도사를 급습 수색한 결과 ... 여덟 명의 기생을 발견하여 고발”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영도사는 여전히 경성시민들이 즐겨 찾는 소풍지였고, 단체들이 총회를 열고 청년들이 결혼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매일신보>는 1920년 3월7일 하루에 6천여 명이 영도사를 찾아 “본년 처음 가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했고, 1926년 10월17일에 문인 도향 나빈씨의 추도식, 1927년 4월25일에 언론인 권익단체 무명회의 제7회 총회, 같은 해 8월14일에 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의 동창회 등이 영도사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영도사는 당연히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39년 4월11일의 <동아일보>는 청년 서화연구가인 김태수군(26)과 신부 성순애양(22)의 결혼식이 9일 오전10시에 열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신부가 나타나지 않아 파혼된 경위를 보도하기도 했다.
최승희가 실제로 영도사에서 결혼을 했는지는 그 자신의 일회 증언 외에는 다른 문헌 증거가 없다. 그러나 영도사가 경성 상층 시민들의 모임과 관혼상제 의례가 자주 열렸던 곳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안막-최승희가 이곳에서 결혼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신혼여행지가 함경남도 안변군의 석왕사였던 것을 보면 영도사가 결혼식장이었던 것으로 믿고 싶기도 한다. 두 사찰이 모두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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