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래의 각종 매체의 보도와 최승희 자신의 회상에서는 그의 결혼식장으로 불교사찰 <영도사>와 <청량사>, 그리고 고급전문요리점 <청량관>이 언급되었음이 확인됐다. 이제 이 세 곳 중에서 어느 곳이 실제로 안막-최승희의 결혼식이 열린 곳인지를 추론할 단계이다.
안막과 최승희의 당시 시계열 동선을 파악한 결과 두 사람이 맞선을 통해 처음 만난 것은 1931년 3월8-31일 사이였고, 아마도 이 3주일 동안 2-3회의 데이트를 더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승희가 북선 지역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4월17일 직후에 결혼 결정이 내려졌고, 4월말까지는 최승희 부모의 승낙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안막과 최승희가 결혼식을 준비할 시간은 대략 10일밖에 없었고, 날짜를 9일로 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결혼식장을 섭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결혼식장 예약을 한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쉬웠을 리 없기 때문이다.
5월5일의 <조선일보> 보도나 5월7일의 <동아일보> 보도에도 결혼식의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고, 5월6일의 <매일신보> 보도에서 비로소 결혼식장을 <청량사>, 결혼당일인 5월9일의 <경성신문>은 <청량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체 보도를 중심으로 그 세 장소의 간략한 역사와 1920-30년대의 상황을 검토해 본 결과, 세 곳 모두 교통이 편하고 경성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소풍지였던 데다가, 모두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피로연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자료를 살피던 중 한 가지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났다. 1900년부터 1930년대까지의 30년 동안 <영도사>와 <청량관>에서는 다수의 결혼식이 있었던 기록이 나타났지만, <청량사>에서는 단 한 건의 결혼식도 보도된 것이 없었다. 결혼식 보도가 없다는 것이 곧 <청량사>가 결혼식장으로 사용된 바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량사>가 결혼식장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청량사>가 비구니 도량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승들만 기거하는 <청량사>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리 일반적인 관행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뿐 아니라 <청량사>의 승려들의 인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청량사>가 많은 단체행사들과 문화행사, 그리고 장례식과 각종 제례들이 열리면서도 유독 결혼식에 대해서만은 기록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안막-최승희의 결혼식장 후보는 <영도사>와 <청량관>으로 좁혀지게 되는데, 그중 <청량관>이 결혼식장이었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도사>에서 결혼했다는 기록은 1935년 7월호 <삼천리>에 서술된 최승희의 회상 한 건 뿐이었다. 다른 문헌에는 <영도사>가 결혼식장으로 언급된 바 없었다. 게다가 이 회상에서는 결혼 시기도 잘못되어 있었다. 1931년 5월9일이었던 결혼식을 ‘1932년 봄’이라고 기억한 것이다. <영도사>가 결혼식장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는 신빙성이 낮은 회상 1건 뿐이다.
반면에 <청량관>이 결혼식장이었다는 결정적인 언급은 <경성일보>의 5월9일 보도이다. 이 보도는 결혼식이 열리는 당일 배포되었지만 기사는 전날인 5월8일 작성되었을 것이다. 결혼식장이 뒤늦게 정해졌다면 이 보도야말로 취재를 통해 가장 사실대로 보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일신보>가 5월6일 보도에서 <청량사>라고 한 것은 <청량관>을 오해했거나, 혹은 결혼식장으로 <청량사>가 고려되고 있다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둘째, 최승희의 회상에 바탕을 둔 1934년 3월1일의 <조선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에서는 두 사람이 “재재작년 5월 <청량관>에서 화촉의 성전을 거행”했다고 서술한 반면, 1940년의 <조광>에서는 최승희가 “<청량사>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고 서술했다. 최승희의 상충되는 두 회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결혼식에 더 가까운 1934년의 회상에 더 신빙성을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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