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정원에는 세 개의 독립운동가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문화센터 옆의 키로바 거리(Улица Кирова) 쪽 담장 앞에 나란히 마련된 홍범도, 안중근, 유인석 선생의 기념비가 그것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항일 의병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인석 선생은 을미사변에 이어 단발령이 내리자 1895년 12월 24일(음력) 의병활동을 개시했고, 홍범도 장군은 1906년 포수 조직인 포연대를 의병대로 재편, 의병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다가, 그해 7월 정미7조약이 체결되자 연해주로 망명, 노브키에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톡에서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단지동맹 기념비를 소개하면서 비교적 자세히 살핀 적이 있지만, 홍범도 장군과 유인석 선생에 대해서는 조금씩만 더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1907년 9월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고 포수들의 총기를 회수하려하자 그해 11월 포수 70명으로 산포대(山砲隊)를 조직, 북청 후치령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이후 갑산, 삼수, 혜산, 풍산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했습니다.
1908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길림성을 거쳐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을 근거지로 삼아,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본군을 공격했습니다. 경술국치(1910년 8월) 이후에는 장백산으로 옮겨 봉오동 전투(1920년 6월)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에서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간도참변(1920-21)으로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 러시아혁명과 내전 후에는 공산당에 입당(1927)해 활동했으나, 강제이주(1937년)로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에 정착, 고려극장의 관리인 등으로 근무하다가 1943년 76세로 타계, 키질로르다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조선은 1993년 홍범도 장군이 평양 출신이라는 점을 근거로 유해 봉환을 시도했으나 고려인 사회의 반대로 무산, 2021년 8월15일 한국으로 유해가 봉환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생애 후기에 공산주의자로 활동했다는 점 때문에 한국에서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신용하 선생의 연구로 본격적인 관심과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유인석 선생은 의병활동으로 1962년 건국공로훈장 광복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우수리스크의 고려인문화센터에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유인석 선생의 활동이 과연 대한민국의 건국훈장 서훈의 근거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문이 생겼습니다.
유인석 선생은 뼛속까지 유학자였고, 중국 황제를 받들고, 조선 왕을 모시면서, 구질서 회복을 주장했습니다. 의병활동의 목적도 존화양이(尊華攘夷), 즉 중국을 받들고 서양오랑캐를 배척한다는 것이었지요. 대한제국이 건국된 다음에도 조선이 황제국을 참칭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며, 고종의 연호 광무를 사용하지 않았고, 오래전에 망한 중국 명나라 연호를 썼습니다.
실제 의병활동에서도 유인석 선생은 제천군수 김익진, 충주 관찰사 김규식, 천안군수 김병숙 등을 살해했는데 단발령을 시행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는 매번 패했고, 제천 패배(1896) 후에는 서간도로 건너갔다가 중국 군벌에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연해주 의병이 결집되었던 1910년 6월, 13도의군의 도총재로 추대되었으나, 무력항쟁 개시하기 전에 경술국치를 맞았고, 13도의군도 일제 간섭을 받은 러시아 정부에 의해 해산됐습니다.
이후 유인석은 “모든 선비들은 간도로 건너와 중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다가 죽어라‘는 뜻의 ‘수화종신(守華終身)을 주장했고, 그 자신도 1914년 3월 중국 서간도 봉천성 서풍현으로 망명, 이후 관전현 방취구로 옮겼다가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솔선해서 수화종신을 한 것이지요.
유인석 선생이 연해주 시절, 고려인 동포들의 내적 갈등을 봉합하고 13도의군 결성에 기여했던 점은 긍정적이므로, 우수리스크의 문화센터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나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의 행적이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친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장군에 필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jc, 202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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