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 방문을 마친 일행은 버스를 타고 시립공원(городском парке)으로 향했습니다. 공원 안의 거북 석상과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니까 문화센터에서 시립공원까지는 약 2킬로미터, 우스리스크 호텔에서는 1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단체여행이 아니었다면, 호텔에서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들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우수리스크 호텔이 참 편리한 숙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원 정문에는 <시립공원>이라고 씌여 있지만, 지도를 보면 <도라 공원(Парк ДОРА)>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라(ДОРА)는 “러시아군 장교관사(дома офицеров Российской армии)”의 약자더군요. 한때 이곳에 있던 장교 관사 지역이 시립 공원으로 바뀌었나 봅니다.
김발레리아 선생께서 애써 이곳으로 안내하신 것은 거북석상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거북석상 때문에 도라 공원은 거북이 공원(парк черепах)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과연 거북 석상은 거대하고 육중할 뿐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위엄이 있어 보입니다. 직경이 2미터가 넘고, 등에는 비석이 세워질 수 있을만큼 큰 홈이 파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석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한 눈에도 고대의 유물이라는 점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거북석상을 시립공원에 보관하고 있는 점, 지붕있는 정자를 지어 석상이 노천에 방치되지 않게 한 점, 그리고 깨알 같은 설명문이 두 개나 세워진 것으로 미루어, 우수리스크 시당국이 이 거북석상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이 거북석상이 발해 시기의 것이라고 보시기 때문에 방문단에 꼭 소개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한국 근대사뿐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박한용 선생도 거북 석상의 등에 새겨진 문양이 한민족 문양에 가깝다며 동의하셨습니다. 아는 게 별로 없는 저는 그저 거북석상을 손으로 쓸어보면서 1천년이 넘는 세월을 느껴볼 뿐이었습니다.
정작 우수리스크 당국과 극동 학술계에서는 이 거북석상을 여진 거북이(Черепаха чжурчжэней)라고 부릅니다. 여진족이라면 말갈족의 후예이고, 발해의 국민이었으므로, 이 석상이 발해와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거북 석상은 1864년 러시아 지리학자 이노센티 로파틴(Инокент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Лопатин, 1839-1909)이 니콜스코예(=오늘날의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발굴했습니다. 발굴 당시 거북석상이 2개였는데 하나는 1896년 하바로스크의 그로데코브(Гродеков) 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하나는 우수리스크에 남겨져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도라 공원에 안착되었습니다.
두 개의 거북석상은 모두 직경이 2미터, 무게가 6톤쯤인데, 거북의 등에는 비석을 세울 홈이 파여 있습니다. 하바롭스크의 거북석상에는 깨진 비석의 밑둥이 일부 남아 있지만, 우수리스크의 석상에는 발굴 당시에도 이미 비석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바롭스크의 거북석상 비석에는 글씨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훼손과 마모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고고학자들의 계속된 연구에 의해 거북석상에 중국 석상의 특징이 전혀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를 여진족의 무덤을 지키는 13세기의 석상으로 추정했습니다.
마침내 1960년대 러시아 고고학자 비탈리 라리체프(Виталий Ларичев, 1932-2014)가 비문을 읽어내어, 거북석상이 금(金)나라 4대 황제 완안량(完顔亮)의 묘비석상임을 추정했습니다.
그의 여진 이름은 디구나이(迪古乃)로, 태조 완안아골타(完顏阿骨打, 1068-1123)의 서자인 요왕종간(遼王宗幹)의 차남으로, 3대황제 희종(熙宗) 완안단(完顔亶, 1119-1150)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그 자신도 반란군에게 시해당하고 사후 폐위된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거북석상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디구나이의 모친이 발해의 왕손 대씨(大氏)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러시아 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더라도 이 거북석상의 주인공이 발해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jc, 202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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