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영화 3편은 모두 ‘무용영화’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명명법은 아니다. 세 영화에 모두 무용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용 장면의 비중과 형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반도의 무희(1936)>에도 무용 장면이 나오지만 원래 최승희의 성공기이며, 삽입된 무용장면도 주인공의 활동을 소개하는 방편이다. 따라서 <반도의 무희>는 엄격한 의미의 ‘무용영화’는 아니고 ‘무용가에 대한 영화’일 뿐이다.
그러나 <사도성 이야기(1956)>는 같은 이름의 무용극을 영화화한 것이므로 ‘무용극 영화’이고, <대금강산보(1938)>는 완결된 무용작품들이 포함된 본래적 의미의 ‘무용 영화’이다.
이 두 ‘무용영화’를 ‘음악영화’와 비교한다면, <사도성이야기>가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유령(2004)>나 <맘마미아(2008)>에 가깝다면, <대금강산보>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나 <원스(2007)>에 가깝다.
<대금강산보>에는 최승희의 무용작품 8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필름이 재발견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스토리라인의 적절한 부분 부분에 각각의 무용작품이 완결된 형태로 삽입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을 위해 조선의 여러 명승지에서 로케이션을 했다는 기록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무용작품을 촬영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1937년 9월22일자 <매일신보>와 10월27일자 <동아일보>는 <대금강산보>의 촬영이 ‘금강산과 석왕사, 평양과 경주와 부여와 수원에서 로케이션’으로 이뤄졌다고 서술했는가 하면, 사진가 후쿠다 가츠지(福田勝治, 1899-1991)의 사진집 <봄의 사진술(1938)>은 그 책에 실린 3장의 최승희 사진이 ‘스튜디오에서 <대금강산보>의 무용장면 촬영 때 동시에 촬영된 사진 작품’이라고 서술했다.
<대금강산보>에 삽입된 무용작품들도 확인되었다. 1938년 1월29일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경성일보>에 나란히 실린 <대금강산보> 개봉 광고문에서 삽입 작품 목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광고문에는 “빼어난 풍광의 금강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반도 처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로맨스”라는 선전문구와 함께 “전편 춤추는 걸작 8종”이라는 제목 아래 “무녀춤, 아리랑, 보살도, 검무, 봉산탈춤, 무녀, 승무, 금강산보”라는 작품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전편 춤추는 걸작’이라는 말뜻이 명확하지 않다. ‘영화 전편’에 걸쳐 ‘8개의 작품이 부분부분’ 삽입되었다는 것인지, 혹은 영화에 ‘8개 작품이 전편’ 삽입되었다는 뜻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무용 영화’라는 표현에 부합되려면 아마도 후자이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거의 다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 레퍼토리였다. 즉,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뉴욕의 미국 공연과 파리, 브뤼셀, 암스텔담, 헤이그 등의 유럽 공연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대금강산보>의 8개 작품 중 7개가 적어도 한번 이상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순회공연에서 발표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은 <금강산보>이다. 주제 작품이 왜 무대에서는 상연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금강산보>가 서양 음악을 사용한 현대무용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순회공연에서 최승희는 1백퍼센트 조선음악을 사용한 조선무용 작품만 공연했었다.
<대금강산보> 삽입 작품들이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최승희가 처음부터 영화와 공연 둘 다를 위해 작품들을 창작하고 준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들은 처음부터 세계무대를 겨냥해 창작되었던 것이다.
최승희의 무용영화 <대금강산보>와 그의 세계 순회공연 사이에 작품의 접점이 확인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최승희는 왜 <대금강산보>에 출연했을까? 그는 왜 세계 순회공연을 떠났을까? 영화와 공연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 특히 조선인과 일본인이 아닌 세계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그녀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
'조정희PD의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금강산보] 4. 조선총독부의 관광정책, ‘금강산’을 홍보하라. (0) | 2021.06.03 |
---|---|
[대금강산보] 3. 권력과 돈이 시작한 <대금강산보> (0) | 2021.06.02 |
[대금강산보] 1. <대금강산보>의 파리 상연 (0) | 2021.06.01 |
[살플레옐 5-13] <무당춤>, 서울의 무녀(Sorcière de Séoul) (0) | 2021.05.16 |
[살플레옐 5-12] <검무> 혹은 <칼춤>, (Danse de l'Epée) (0) | 202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