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홍난파와 이종태가 작곡한 <대금강산보>의 주제가 <금강산곡(金剛山曲)>의 편곡은 야마다 코사쿠(山田耕作, 1886-1965)에게 의뢰되었다.
야마다 코사쿠는 당대 일본 최고의 작곡가 겸 지휘자로,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고, 독일 베를린 왕립 예술 아카데미 작곡과에 유학하면서 막스 브루크(Max Bruch, 1838~1920)에게서 사사했다. 1914년 도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했고, 1917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자신의 곡들을 연주했다.
1920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다이고쿠(帝國) 극장에서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일본 초연했고, 1924년에는 NHK 교향악단의 전신인 일본 교향악단을 설립, 연주활동을 이어나갔다. 활발한 해외 활동으로 193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최승희가 야마다 코사쿠에게 <금강산곡>의 편곡을 부탁한 것은 그의 탁월한 음악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무용을 이해하는 음악가였고, ‘음악과 무용은 하나’라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야마다 코사쿠는 제국오페라단 시절부터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7-1962)의 친구이자 동료로서, ‘무용시’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시이 바쿠의 ‘무용시 운동’을 지원했다.
이시이 바쿠가 1926년 3월 첫 번째 경성공연에서 최승희를 매료시켰을 때 공연된 <젊은 판과 님프(若きパンとニムフ)>의 작곡자도 야마다 코사쿠였다. 그밖에 이시이 바쿠의 초기 대표작인 <법열(法悦)>과 <쓸쓸한 그림자(淋しき影)>도 야마다 코사쿠의 음악에 맞추어 안무되었다.
훗날 최승희는 <아이들의 세계, 인형씨(子供の世界, A.お人形さん, 1936)>와 <그놈의 오뚜기(奴の彌次郞兵衛)> 등의 동심어린 작품을 안무했을 때에도 야마다 코사쿠의 음악을 사용했다.
한편 <대금강산보>의 원작을 최남선이 집필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 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원작자는 다마카와 에이지(玉川映二, 1903-1973)였다. 본명이 사토 하치로(佐藤八郎)인 그는 탁월한 글재주로 구제 와세다 고등중학교를 중퇴한 이래 수많은 시집과 소설 및 수필집을 낸 작가로 활동했다.
23세였던 1926년 첫시집 <손톱 색깔의 비(爪色の雨)>를 시작으로 20권의 시집을 출판했고, 아사쿠사6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엔코노로쿠(エンコの六, 1931)>을 비롯해 3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그밖에도 유머 소설 12권, 청소년 소설 38권을 내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에게 학교의 교가 가사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마카와 에이지가 작사한 교가는 66개에 달했다. 또 그는 야구팀 사이타마세이부 라이온즈의 응원가와 한큐 브레이브즈의 단가를 작사해 지금까지 운동장에서 불리고 있다.
다마카와 에이지는 <대금강산보(1938)>의 원작을 집필하기 전까지 <남자의 눈물(男のなみだ, 1935)>과 <벌거벗은 합창(はだかの合唱, 1936)>을 비롯해 7개의 영화 원작을 집필해 영화화된 바 있는 관록 있는 작가였기에 최승희는 그에게 <대금강산보>의 원작을 믿고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원작을 영화대본으로 각색한 것은 전설적인 각색 전문가 야마자키 겐타(山崎謙太)였다. 그는 1931년 <사랑의 장총(恋の長銃)> 이후 <대금강산보(1938)>를 포함해 평생 83편의 영화 각본을 각색했고, <장난삼아 사랑하지 말자(戯れに恋はすまじ, 1933)>를 포함한 11개의 영화 원작을 직접 집필했던 다작의 영화 원작 및 대본 각색자였다.
금강산 무용영화 제작 결정은 유력자들이 내렸고, 구체적인 작업 담당자들은 최승희를 포함해 모두 조선과 일본을 통틀어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이는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무용영화를 만들겠다는 최승희와 총독부의 의지를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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