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1일, 제작사가 니카츠(日活) 영화사로 정해지면서 이제 <대금강산보>는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니카츠는 1912년 4개 군소 촬영소가 합병되어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된 최초의 메이저 영화사였고, 뒤이어 설립된 쇼치쿠(松竹, 1920), 도호(東寶, 1932)와 함께 당시 3대 영화사였다.
니카츠는 도쿄와 교토에 촬영소(studios)를 운영했는데, 1930년대 이래 교토의 다이쇼군 촬영소는 시대극, 도쿄의 타마카와 촬영소는 현대극을 제작했다. 조선총독부 외사과의 설득과 철도국의 지원 약속으로 니카츠는 <대금강산보>의 제작에 뛰어들었고, 촬영을 도쿄의 타마카와 촬영소에 맡겼다. 이로써 이제 <대금강산보>는 촬영과 편집과 배급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대금강산보>는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단됐다. 중일전쟁이 터진 것이다. 1931년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1937년 7월7일 베이징 서남쪽 외곽의 루고챠요(盧溝橋) 다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군과 대치하던 중, 한 병사의 일시적 탈영을 트집삼아 중국과 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는 노구교(盧溝橋) 사건, 중국에서는 치치시벤(七七事變), 서방에서는 마르코폴로 다리사건, 일본에서는 로코쿄지켄(盧溝橋事件)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이 최승희의 무용영화 <대금강산보> 제작에 치명타를 준 것이다.
니카츠 영화사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제작비 지원을 기다렸으나, 병력과 군수물자를 중국으로 수송하기 위해 총동원 상태에 돌입한 철도국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영화 제작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최승희와 니카츠 영화사는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금강산보>를 지연시킨 또 다른 원인은 도쿄 올림픽의 취소였다. 1940년의 제12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는 도쿄와 헬싱키가 경합, 36대27의 투표로 도쿄로 결정됐다.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올림픽 개최권이 박탈당하자 개최지가 헬싱키로 변경되었지만, 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에서도 전쟁이 터지자 1940년 올림픽은 취소되었다.
히로히토 천황과 히틀러 총통이 올림픽을 목졸라 죽이자, <대금강산보>도 덩달아 말라죽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의 <대금강산보> 제작 동기는 구매력 높은 서양 관광객의 유치였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면서 일본을 방문할 관광객들이 사라져버렸다. 더구나 일본이 중국을 침략 중인데, 전장 바로 옆의 조선 관광에 나설 서양인들이 생겨날 까닭이 없었다.
중일 전쟁과 올림픽 취소로 총독부의 해외 관광객 유치 정책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대금강산보>에 대한 정책적 관심도 사라졌다. 그나마 영화 제작이 백지화되지 않았던 것은 최승희와 니카츠 영화사의 인내심 어린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승희와 니카츠 영화사 사이에도 관점의 차이가 생겼다. 니카츠 영화사는 <대금강산보>의 해외 상영을 포기하고 국내 상영 중심으로 관심을 옮겼다. 해외 상영 자체가 불투명해졌으므로 내수 시장을 겨냥한 것인데, 이는 기업인 영화사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대금강산보>의 해외 상영이 필요한 것은 최승희 뿐이었다. 그가 세계 순회공연을 단행할 것이라는 소문을 최초로 보도한 것은 미주 일본인 신문 <타이호쿠닛포(大北日報)>였다. 소문을 전제한 1935년 10월18일의 기사에서 “최승희가 내년(1936년) 4월경 세계 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보도했었다. 이 소문의 진위를 묻는 영자지 <재팬타임스(The Japan Times and Mail)>와의 인터뷰에서 최승희는 “1년쯤 후에 출발하겠다”고 답변했다.
즉 최승희는 당초 1936년 10월경 유럽과 미국 순회공연 계획을 세웠지만, 분주한 공연 일정으로 약 1년이 지체되었다. 마침내 1937년 9월27일 최승희는 도쿄극장에서 ‘도구(渡歐) 고별공연’을 열었는데, 이는 곧이어 유럽 공연 출발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승희는 출발을 연기했다. <대금강산보>가 완성은커녕 촬영도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총독부 및 영화사와의 계약을 유지한 채 끈질기게 기다렸다. 유럽 공연 한 시즌을 포기하더라도 꼭 <대금강산보>를 완성해서 가져가겠다는 뜻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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