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서전(1936)><최승희 자서전(1937)>에서 최승희는 19263월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무용유학을 시작했을 때 나이가 15, 유학을 마치고 경성에 돌아와 192911월 무용연구소를 개설했을 때의 나이가 18세였다고 서술했다. 이 나이들은 각 자서전에 한 군데 이상에서 일관적으로 서술되었다.

 

같은 방법으로 두 자서전에 나타난 결혼 시기의 나이 서술을 찾아보았다. 결혼 당시의 나이에 대해서는 <나의 자서전><최승희 자서전>에 각 1번씩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우선 <나의 자서전>의 기록을 보자.

 

번잡하지 않게 세비루를 입은 신랑과 간단한 스포츠복을 입은 신부는 트렁크를 하나씩 든 간단한 차림으로 석왕사로 밀월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 그것이 쇼와7(=1932), 내가 스무 살, 안막이 스물두 살 되던 봄의 일이었습니다.” (<나의 자서전>, 1936:99-100).

 

 

우선 바로잡을 것은 최승희의 결혼연도는 1932년이 아니라 1931(쇼와6)이다. 안막과 최승희의 결혼식을 보도한 당시 신문들을 조사하면, 결혼일시는 193159일 오전11시였고 장소는 동대문밖 흥릉 옆의 청량관이라는 연회장이었다.

 

따라서 최승희의 생일 19111124일이 양력 날짜가 맞다면 결혼 당시 최승희의 만 나이19(+5개월반), ‘연 나이20, ‘세는 나이21세였다. 그러나 만일 최승희의 공식 생일 날짜가 실제로는 음력 날짜였다면, 이를 양력 날짜로 환산하면 1912112일이 되고, 그랬을 경우 최승희의 결혼 당시 나이는 만 나이19(+4개월), ‘연 나이19, ‘세는 나이20세가 된다.

 

생일이 1910418일로 알려져 있는 안막의 만 나이21(+20), ‘연 나이21, ‘세는 나이22세였다. 그러나 만일 안막의 생일날짜가 음력이어서 양력날짜(1910526)로 환산해서 나이를 다시 계산하면, ‘만 나이20(+11개월), ‘연 나이21, ‘세는 나이22세가 된다.

 

 

따라서 안막의 나이가 22, 최승희의 나이가 20세였다는 것은 나이 계산방식이 세는 나이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나이 서술은 <최승희 자서전>에도 똑같이 나타났다.

 

내가 결혼을 하면 인기가 줄어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나의 결혼을 반대한 사람들도 많았으나, 나는 가령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여자로서, 아내로서, 또는 무용가로서, 어디까지든지 참되게 살아갈 생각을 하고 소화7(=1932) 봄 나는 스무 살 때에 결혼하였다.” (<최승희 자서전>, 1937:26).

 

여기에서도 최승희는 결혼연도가 1932년으로 기술됐다. 여성이 자신의 결혼시기를 잘못 기억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중에 보겠지만 최승희의 회상에는 자주 오류나 착오가 발견되곤 한다. 그의 나이에 대한 서술을 이렇게 자세히 살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자서전>에는 최승희가 결혼 즈음에 19세였다고 서술한 부분도 등장한다. 나이 서술에 일관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에 조금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열아홉의 봄을 맞이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 예술상의 번민, 인력 부족, 금전에 의한 유혹, 더러운 유혹의 마수……어느덧 옳고 진지한 결혼으로 기울어졌던 것이 그 무렵의 나의 심정이었습니다.” (<나의 자서전>, 1936:89-90).

 

이 서술이 무용연구소를 개설한 192911월부터 1930년 대부분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맞는 기술이다. 그러나 결혼 직전인 1931년 초를 포함하는 기술이라면 최승희의 나이를 19세라고 한 것은 착오를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승희가 결혼식을 가졌던 193159일 기준으로 그의 세는 나이20세였다면, 그보다 5년 전 여학교 졸업당시인 19263월의 세는 나이15세였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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