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아주 세련된 비석이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편찬한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2019)>에는 일본 전역에 산재한 170여개의 추도비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 건립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2020)>는 여기에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어떤 추도비와 비교하더라도 그 현대적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인다.
추도비는 상하 2개의 장방형의 돌이 겹쳐져 구성되었고, 각각의 가장자리에는 돌을 자르기 위해 구멍을 낸 자국을 그대로 남아 두었다. 앞면에는 <월조남지>의 글씨를 중심으로 윗돌과 아랫돌에 각각 세 개씩의 줄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어져 있고, 글씨의 위쪽에는 양쪽에 두 명의 아기 천사 모습이 청동 조각으로 부착되어 있다. 아래쪽 돌에도 꽃을 묘사한 듯한 2개의 작은 청동조각상들이 덧붙여져 있다.
돌과 글씨와 장식물들이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배열되어 있는데다가, 음각으로 새겨진 <월조남지>의 행서체 큰 글씨와 역시 음각으로 새기고 짙은 색깔로 채워진 해서체의 희생자 이름이 현대적이지만 가볍지 않고, 단순하지만 우아한 모습이다. 뒷면에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모두 새겼지만 전체적으로 번잡하지 않고, 위와 이래의 여백이 중앙에 잘 배열된 글씨와 어울려 안정감을 준다. 상당한 수준의 미적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의 작품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이처럼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추도비를 디자인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진을 통해 추도비의 앞면과 뒷면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디자이너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서 곤도 도미오 선생께 질문을 드렸더니 이 추도비의 디자이너가 오사카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 온 조각가 타마노 세이조(玉野勢三)선생이라고 하셨다.
추도비의 디자인에 대해 궁금했던 몇 가지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더 드렸다. 곤도 선생은 즉시 타마노 선생에게 연락을 취하셨고, 그동안 나는 타마노 선생의 웹사이트를 찾아가 그분의 작품세계를 학습했다. 어린아이를 모티브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타마노 선생의 홈페이지에는 추도비의 청동 부조를 연상시키는 작품도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타마노 선생의 답변이 도착했다. 우선 “글씨 상단의 두 어린 천사”에 대해 타마노 선생은 “내 작품 주제는 ‘아이’이며, ‘아이’는 “민족이나 역사도 넘어서는 인류 보편의 테마”라고 하시면서, “추도비 전면에 부착한 남녀 2명의 아이의 모습은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비천은 한반도에서 불교 전래와 함께 전해진 모티브이기 때문에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 교류의 역사를 암시함과 동시에 추도비가 목적하는 '위령'의 마음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신 후, “반드시 불교를 의식할 필요는 없으며 보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서양적 '천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월조남지> 글씨의 좌우에 형상화된 5개의 꽃은 '목련' 꽃봉오리이며, 이는 희생된 다섯 분들의 '영혼'을 상징”하면서도 “추모비 건립에 앞장선 '목련회'를 가리키도록 했다”고 전했다. 심혈을 기울인 예술 작품답게 추도비의 디테일에까지 적절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또 추도비의 상단 왼쪽과 하단의 중간쯤에 그려진 물결 모양의 선들은 “각각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해안선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두 물결 사이의 공간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고향을 떠나 건너온 현해탄이 될 것이며, 그 한 가운데에 새겨진 <월조남지>는 일본 땅에 묻힌 조선인 노동자들의 망향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다.
타마노 선생은 또 이 선들이 “조수의 흐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시간의 흐름까지도 암시하여 한반도와 일본의 항구적인 우호와 유대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디자인과 거기에 담긴 뜻도 감탄스러웠지만, 이같은 자상한 관심과 실력을 가진 조각가에게 추도비의 디자인을 의뢰하게 된 경위도 궁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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