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지> 창간호(1938년 5월호)에 “경성다방 성쇠기”를 기고한 저자 노다객은 결과적으로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후타미>와 <카카듀>의 개업시기에 대한 실수는 결정적이었다.
그 실수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1923년에 개업한 <후타미>를 경성의 첫 커피 전문점으로, 1927년에 창업된 <카카듀>가 조선인 최초의 커피 전문점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런데 노다객은 누구였을까? “경성 다방 성쇠기”의 첫 문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울서 맨 처음 우리가 다점(茶店)이라고 드나든 곳은 본정(本町, 혼마치=충무로) 3정목 현재 <윈> 근처에 있던 <이견(二見, 후다미)>이란 곳으로 이곳이 아마 경성 다방의 원조일 것이다. 그 다음이 현재 본정 2정목 식료품점 구옥(龜屋) 안에 있는 <금강산>으로 우리들과 같이 동경서 새 풍습을 익혀 가지고 돌아온 문학자나 화가나 그 밖에 지극히 소수의 내지인(內地人) 청년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 시절 다방 손님은 현재 적어도 나이가 30을 훨씬 넘은 중년으로 지금엔 대부분이 다방출입을 그만둔 이들이나 지금에 융성한 다방문화의 개척자들도 선공(先功)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글에 ‘우리’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 ‘우리’는 “동경서 새 풍습을 익혀 가지고 돌아온 문학자나 화가”이며 “현재 나이가 30을 넘”었고 “지금은 대부분 다방출입을 그만둔 이들”이지만 “다방 문화의 개척자들”이라고 했다. 노다객도 그런 ‘우리’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당시 동인잡지의 관행에 따르면 ‘작품’이 아닌 ‘잡문’으로 여겨지던 세평이나 회고의 글은 동인들이 돌아가면서 집필하되 본명이 아니라 필명을 쓰곤 했다. 노다객이 <청색지> 동인의 한 사람일 것이라는 가정 아래 우선 창간호의 저자들을 모두 꼽아 보았다.
글을 기고한 사람은 박종화, 김남천, 임화, 이원조, 윤태영, 청구자, 이헌구, 노다객, 안회남, 이상 등 10명이었고 편집자 구본웅까지 합치면 11명이었다. 임화는 2편의 글을 냈고, 전 해(=1937년)에 사망한 이상의 글도 2편이 실렸다. 익명은 ‘청구자’와 ‘노다객’의 2명이었다.
이중 도쿄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은 김남천, 이원조, 이시우, 이헌구와 구본웅의 5명이었고, 30세가 넘은 사람은 이헌구(李軒求, 1905-1982)와 구본웅(具本雄, 1906-1952)이었다. 이헌구는 와세다대 불문과(1931)를 졸업했고, 구본웅은 니혼대 미학과(1929)와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1933)를 졸업했다. 두 사람 중 누가 ‘노다객’이었을까?
아마도 이헌구였을 것이다. 구본웅은 화가였고 글쓰기보다는 그림에 익숙했었음에 틀림없었을 뿐 아니라 당시 <청색지> 창간호의 편집을 맡고 있었으므로 따로 원고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다객이 이헌구였을 것으로 단정하는 결정적 증거는 그가 한 달 전, 잡지 <삼천리> 1938년 5월호에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라는 글을 기고했었다는 사실이다.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는 당시 조선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다방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을 서술하면서 각 다방들의 특징도 묘사했다. 따라서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와 “경성 다방 성쇠기”는 소재뿐 아니라 주제까지 거의 겹치는 글이다.
예컨대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에는 경성의 22개 다방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고, “경성 다방 성쇠기”에도 23개의 다방이 언급되었는데, 그중 10개 이상이 공통된다. 따라서 “경성 다방 성쇠기”의 저자가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의 저자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물론 두 글이 각기 따로 언급한 다방들도 12개(이헌구)와 13개(노다객)에 이르기 때문에 두 글이 완전히 같은 글, 즉 재탕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헌구는 “경성 다방 성쇠기”를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의 속편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요컨대 “경성 다방 성쇠기”의 저자 노다객은 <삼천리>에 “다방 보헤미안의 수기”를 기고했던 이헌구와 동일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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