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国とロシアの国境通過した訪問団国際バスにみました舗装状態があまりくない地方道路30ほどって最初都市クラスキノ(Крскион)到着しましたきているうちにがロシアにも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中国での戸惑いがロシアでもきました中国では簡字体漢字からなくてっていましたがロシアのクリリックアルファベットもごわいです中国ではハングルが併記されているところがくてなんとかごしていましたがロシアめませんでした

 

 

クラスキーノは沿海州(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プリモルスキー·クライのハサンスキー(Хасанского района)都市定着地人口33百人2010年国勢調査ほどだそうです以前44百人(1989)35百人(2002)だったということでここも人口っていますね

 

クラスキノエは1867定着最初名前はノヴォキエフスコエ(Новокиевское)でした1869から越境犯罪防止のために守備隊派遣され1880にはウスリスク騎兵隊駐屯めましたつまりここは国境守備するための軍事都市だったわけです

 

 

1936510ノヴォキエフスコエはクラスキノと改名されましたが1936325この地域侵略する圧倒的日本·満州軍一個小隊兵力撃退戦死した赤軍將校のミハイル·クラシキン(Михаиле Краскине)中尉えるためだったといいます

 

 

ロシア語版ウィキペディアは1880年代中半にこの地域有力実業家であり在露高麗人非公式指導者崔在亨(チェ·ジェヒョン, Чхвэ Джэхен,, 洗礼名, ピョートルチェ, Петр Цой, 1860-1920)先生がここで活動めたとべています非公式というのは公務員ではなかったという意味のようで崔先生主導最初6年制高麗人学校がここに設立されたそうです

 

 

<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訪問団がロシア入国後めて到着したところが崔在亨先生独立運動めて高麗人学校設立したクラスキノということが意味深じられました

 

意味いのは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国際バスがクラスキーノに到着すると一行荷物って全員下車したのですがここからは貸切バスでウスリスクまで移動することが計画されたからです荷物をまとめておいて貸切バスをっているのですがすぐに到着したバスからキム·ヴァレリア先生がご男便のキム·バレンチン先生一緒りるのでした

 

 

キムヴァレリア先生一行一人ずつまえて抱擁挨拶してくれました黃光石(ファン·グァンソク)先生はコロナ事態とウクライナ戦争4ぶりに沿海州訪問したのですがキム·ヴァレリア先生しぶりにってしくって抱擁する姿本当素敵でしたしかも黃光石先生はご南便のキム·バレンチン先生アニキびながらっていました

 

 

沿海州をよく訪問していたチョン·ソンフン李黃徽(·ファンフィ)先生もキム·バレリア先生しく昨年大陸横断自動車ラリーをめながらウスリスクを訪問キム·バレリア先生ったことがある李高恩(·ゴウン)先生じでした

 

はキムヴァレリア先生直接会うのがめてでしたしかしこの2年間一緒きながらオンラインで交換した写真音声メッセージですでにおなじみでした拝見していたらすぐ昨日会ったようながしましたキム·ヴァレリア先生もハグでえてくださり沿海州めて訪問するリュ·ゴンジュイム·サンテク·ソンスキム·サモキム·チャヌパク·ハンヨンパク·ミヒョンチョン·ジェウンパク·インホ先生などもじでした

 

 

バスにってグーグルマップでウリスクまでの距離てみました200キロをえましたソウルから江陵まで2時間40分走ってえにてくださったのです訪問団がクラスキーノに到着することをりながらウスリスクでっていられなかったそうです

 

 

めてたロシアでこんなからのもてなしをけるとは予想していませんでした(jc, 2024/5/15)

,

중국-러시아 국경을 통과한 방문단은 다시 국제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포장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지방도로를 30분쯤 달려서 첫 도시 크라스키노(Краскино)에 도착했습니다. 살다보니까 제가 러시아에도 발을 디뎌보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당황스러움이 러시아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중국에서는 간자체 한자를 몰라서 애를 먹었는데, 러시아의 크릴릭 알파벳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글이 병기되어 있는 곳이 많아서 그럭저럭 지냈지만, 러시아어는 아예 읽지도 못하겠더군요.

 

 

크라스키노는 연해주(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의 하산스키군(Хасанского района)의 도시정착지로 인구는 33백명(2010년 센서스) 정도라고 합니다. 전에는 44백명(1989), 35백명(2002)이었다고 하니까 여기도 인구가 줄고 있네요.

 

크라스키노에는 1867년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첫 이름은 노보키에프스코에(Новокиевское)였습니다. 1869년부터 월경과 범죄방지를 위해 수비대가 파견됐고, 1880년 우수리스크 기병대가 주둔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이곳은 국경을 수비하기 위한 군사도시였던 셈입니다.

 

 

1936510일 노보키에프스코예는 크라스키노로 개명되었는데, 1936325일 이 지역을 침략하는 압도적인 일본-만주군을 일개 소대 병력으로 격퇴하고 전사한 적군(赤軍) 장교 미하일 크라시킨(Михаиле Краскине) 중위를 기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어는 1880년대 중반에 이 지역의 유력 사업가이자 재러 고려인들의 비공식 지도자 최재형(Чхвэ Джэхён, 세례명 뾰뜨르 최 Петр Цой, 1860-1920) 선생이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서술했습니다. 비공식이라고 한 것은 공무원은 아니었다는 뜻인 것 같고, 최재형 선생의 주도로 최초의 6년제 고려인 학교가 이곳에 설립됐다고 합니다.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 방문단이 러시아 입국 후에 처음 도착한 곳이 최재형 선생께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시고 첫 고려인 학교를 설립하신 크라스키노라는 것이 뜻 깊게 느껴졌습니다.

 

뜻이 깊은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국제버스가 크라스키노에 도착하자 일행은 짐을 가지고 모두 하차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세버스로 우수리스크까지 이동하기로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짐을 한데 모아놓고서 전세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내 도착한 버스에서 김 발레리아 선생이 남편이신 김 발렌친 선생과 함께 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다짜고짜 일행을 한 사람씩 붙잡고 포옹으로 인사해 주셨습니다. 황광석 선생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년 만에 연해주를 방문한 것인데, 김발레리아 선생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만나 포옹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더구나 황선생은 남편이신 김발렌친 선생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오래 포옹하시더군요.

 

 

연해주를 자주 방문하셨던 정성훈, 이황휘 선생도 김발레리아 선생을 반갑게 맞았고, 작년 대륙횡단 자동차 랠리를 시작하면서 우수리스크를 방문, 김발레리아 선생을 만난 적이 있는 이고은 선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김발레리아 선생을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온라인으로 교환한 사진과 음성메시지로 이미 친숙했습니다. 얼굴을 뵙고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어제 만났던 것 같았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저도 포옹으로 맞아 주셨고, 연해주를 처음 방문하는 류건주, 임상택, 나성수, 김사모, 김찬우, 박한용, 박미현, 전재운, 박인호 선생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구글맵으로 우수리스크까지의 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200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2시간40분을 달려 마중을 나오신 것입니다. 방문단이 크라스키노에 도착하는 것을 알면서 우수리스크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십니다.

 

 

처음 온 러시아에서 이런 진심어린 환대를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jc, 2024/5/15)

,

 

琿春海関ぎてロシアに入国すると包装状態があまりくないクラスキノ-国境国道(а/д Крскин-госг)沿って30ほどってクラスキノに到着します

 

グーグルの地図琿春海関をローマ表記するフィチュンポート(Huichun Port)表記したのが若干疑問です。 「琿春という意味満州語發音huncun音叉した名前だそうですが中国語のや満州語琿春をロシアではHuichun発音するのでしょうか

 

 

琿春海関えると国道両側にコンテナトラックや天然ガスを輸送するタンカートラックがんでいます琿春海関から国境まではもちろん国境ってロシアにってもトラックの行列きました琿春海関通関つトラックだそうです

 

 

ロシア国境地帯には大規模建築工事進行中です道路沿ってとても地域整地していてその巨大鋼鉄のビームがてられ連結されて3-4階建てのさの建物がっています国境地帯でなぜこのような大規模開発進行中なのか疑問いました

 

 

グーグルリングによりこの地域開発潜在力きい地域でありその潜在力中国主導実現していることがかりました昨日今日のことではなく10数年前から開発ブームが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ね

 

える成果琿春市発展です中国琿春中国東北地域観光中心地であり朝鮮羅津-先鋒とロシアの沿海州国際交易中心地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

 

 

観光都市琿春470キロの長春-琿春高速鉄道開通本格化しましたこれで長春から琿春まで3時間けます2015920開通したこの高速鉄道利用客開通1100万人突破したということです

 

にその101国慶節中華人民共和国政府樹立記念日まった7日連休22万人琿春駅到着したということですね琿春人口24万人ですからそれに観光客1週間集まったわけです

 

 

観光都市よりも野心的計画琿春東北出海しい通路にするということです渾春集散された商品天然資源陸路羅津-先鋒港んで船積みしたり琿春から船積みして豆満江沿って東海るようにするということですここには韓国物流会社琿春ポスコ現代参加することで南北中露4国際交易発展する可能性かれています

 

 

琿春東北出海のためには朝鮮とロシアの協力必要です中国東北地域していません豆満江下流最後17キロが朝鮮とロシアの国境だからです中国東北領土びていて防川村まっています

 

中国物流東海かうには朝鮮とロシアの協力必要中国反対給付提供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朝鮮とロシアが関税恩恵けながら薫天利用させるのでしょう

 

 

この計画過去 4 ~ 5 年間中断されたようですコロナ朝鮮国境閉鎖ウクライナ戦争でロシアがこれを推進する余力がなかったからです

 

しかし最近三国による国際交易努力再開されたもようです20232には羅先-琿春間のトラック通行再開2024には中国豆満江使用権をめぐる朝鮮中国交渉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ただ最近北韓韓国への敵対宣言この地域での韓国役割縮小する見通しです

 

 

ロシアは琿春中心とした三国国際交易消極的ですが琿春経由してシベリアや沿海州天然資源中国北韓輸出する問題深刻考慮しています

 

 

韓国訪問団国境地帯目撃したロシアのトレーラーとタンカートラックはそのようなきがすでにまっていることをえる証拠だといます(jc, 2024/5/15)

,

훈춘해관을 지나 러시아에 입국하면 포장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크라스키노-국경 국도(а/д Краскино-госграница)”를 따라 30분쯤 달려 크라스키노에 도착하게 됩니다.

 

구글 지도에서 훈춘해관(渾春海關)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휘춘포트(Huichun Port)라고 표기한 것이 약간 의문입니다. ‘훈춘(渾春)’꼬리라는 뜻의 만주어 훈춘(huncun)’을 음차한 이름입니다. 중국어 훈춘을 러시아어로는 휘춘이라고 발음하는 것일까요?

 

 

훈춘해관을 넘으니 국도의 양쪽에 컨테이너 트럭들과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탱커 트럭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습니다. 훈춘해관에서 국경까지는 물론, 국경을 지나 러시아에 들어서도 트럭의 행렬은 계속되었습니다. 훈춘해관의 통관을 기다리는 트럭들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측 국경지대에는 대규모의 건축공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굉장히 넓은 지역이 정지되어 있었고 그 위에 거대한 강철 빔들이 세워지고 연결되어 3-4층 높이의 건물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국경지대에 어째서 이같은 대규모 개발이 진행 중인지 궁금했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이 지역이 개발 잠재력이 큰 지역이고, 그 잠재력은 중국 주도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0여년 전부터 개발 붐이 시작됐다는군요.

 

가시적인 성과가 훈춘시의 발전입니다. 중국은 훈춘을 중국 동북지역의 관광 중심지이자, 조선의 나진-선봉과 러시아의 연해주를 연결하는 국제교역 중심지로 삼으려고 합니다.

 

 

관광도시 훈춘은 470킬로미터의 창춘-훈춘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이제 창춘에서 훈춘까지 3시간에 갈 수 있습니다. 2015920일 개통된 이 고속철도의 이용객은 개통 한 달 만에 1백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특히 101일 궈칭제(国庆节, 국경절,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기념일)에 시작된 7일 연휴 동안 22만명이 훈춘역에 도착했다는군요. 훈춘 인구가 24만명이니 그에 버금가는 관광객이 일주일 동안 몰린 것이지요.

 

 

관광도시보다 더 야심찬 계획이 훈춘을 동북출해(東北出海)의 새통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훈천에 집산된 상품과 천연자원을 육로로 나진-선봉항으로 운반해 선적하거나, 아예 훈춘에서 선적해 두만강을 따라 동해로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물류회사 훈춘포스코현대가 참여함으로써, 남북중러의 4개국 국제교역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훈춘의 동북출해를 위해서는 조선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중국 동북지역은 바다에 접해있지 않습니다. 두만강 하류의 마지막 17킬로미터가 조선과 러시아의 국경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동북 영토는 가는 꼬리모양으로 뻗다가 끄트머리의 팡촨(防川)에 멈춰있습니다.

 

중국의 물류가 동해로 나가려면 조선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이들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합니다. 물류 중심지 훈춘을 조선과 러시아가 관세 혜택을 받아가면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이 계획은 지난 4-5년간 중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조선이 국경을 닫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이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삼국의 국제교역 노력이 재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20232월에는 나선-훈춘 사이의 트럭 통행을 재개됐고, 2024년에는 중국의 두만강 사용권에 대한 조선과 중국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최근 북한의 대남 적대 선언으로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은 축소될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훈춘을 중심으로 한 삼국의 국제교역에 가장 소극적이지만, 훈춘을 경유해 시베리아와 연해주의 천연자원을 중국과 북한에 수출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방문단이 중러 국경지대에서 목격한 러시아의 트레일러와 탱커트럭들은 그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jc, 2024/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