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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とロシアの国境通過した訪問団国際バスにみました舗装状態があまりくない地方道路30ほどって最初都市クラスキノ(Крскион)到着しましたきているうちにがロシアにも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中国での戸惑いがロシアでもきました中国では簡字体漢字からなくてっていましたがロシアのクリリックアルファベットもごわいです中国ではハングルが併記されているところがくてなんとかごしていましたがロシアめませんでした

 

 

クラスキーノは沿海州(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プリモルスキー·クライのハサンスキー(Хасанского района)都市定着地人口33百人2010年国勢調査ほどだそうです以前44百人(1989)35百人(2002)だったということでここも人口っていますね

 

クラスキノエは1867定着最初名前はノヴォキエフスコエ(Новокиевское)でした1869から越境犯罪防止のために守備隊派遣され1880にはウスリスク騎兵隊駐屯めましたつまりここは国境守備するための軍事都市だったわけです

 

 

1936510ノヴォキエフスコエはクラスキノと改名されましたが1936325この地域侵略する圧倒的日本·満州軍一個小隊兵力撃退戦死した赤軍將校のミハイル·クラシキン(Михаиле Краскине)中尉えるためだったといいます

 

 

ロシア語版ウィキペディアは1880年代中半にこの地域有力実業家であり在露高麗人非公式指導者崔在亨(チェ·ジェヒョン, Чхвэ Джэхен,, 洗礼名, ピョートルチェ, Петр Цой, 1860-1920)先生がここで活動めたとべています非公式というのは公務員ではなかったという意味のようで崔先生主導最初6年制高麗人学校がここに設立されたそうです

 

 

<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訪問団がロシア入国後めて到着したところが崔在亨先生独立運動めて高麗人学校設立したクラスキノということが意味深じられました

 

意味いのはそれだけではありません国際バスがクラスキーノに到着すると一行荷物って全員下車したのですがここからは貸切バスでウスリスクまで移動することが計画されたからです荷物をまとめておいて貸切バスをっているのですがすぐに到着したバスからキム·ヴァレリア先生がご男便のキム·バレンチン先生一緒りるのでした

 

 

キムヴァレリア先生一行一人ずつまえて抱擁挨拶してくれました黃光石(ファン·グァンソク)先生はコロナ事態とウクライナ戦争4ぶりに沿海州訪問したのですがキム·ヴァレリア先生しぶりにってしくって抱擁する姿本当素敵でしたしかも黃光石先生はご南便のキム·バレンチン先生アニキびながらっていました

 

 

沿海州をよく訪問していたチョン·ソンフン李黃徽(·ファンフィ)先生もキム·バレリア先生しく昨年大陸横断自動車ラリーをめながらウスリスクを訪問キム·バレリア先生ったことがある李高恩(·ゴウン)先生じでした

 

はキムヴァレリア先生直接会うのがめてでしたしかしこの2年間一緒きながらオンラインで交換した写真音声メッセージですでにおなじみでした拝見していたらすぐ昨日会ったようながしましたキム·ヴァレリア先生もハグでえてくださり沿海州めて訪問するリュ·ゴンジュイム·サンテク·ソンスキム·サモキム·チャヌパク·ハンヨンパク·ミヒョンチョン·ジェウンパク·インホ先生などもじでした

 

 

バスにってグーグルマップでウリスクまでの距離てみました200キロをえましたソウルから江陵まで2時間40分走ってえにてくださったのです訪問団がクラスキーノに到着することをりながらウスリスクでっていられなかったそうです

 

 

めてたロシアでこんなからのもてなしをけるとは予想していませんでした(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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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러시아 국경을 통과한 방문단은 다시 국제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포장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지방도로를 30분쯤 달려서 첫 도시 크라스키노(Краскино)에 도착했습니다. 살다보니까 제가 러시아에도 발을 디뎌보게 된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당황스러움이 러시아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중국에서는 간자체 한자를 몰라서 애를 먹었는데, 러시아의 크릴릭 알파벳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글이 병기되어 있는 곳이 많아서 그럭저럭 지냈지만, 러시아어는 아예 읽지도 못하겠더군요.

 

 

크라스키노는 연해주(Приморского края,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의 하산스키군(Хасанского района)의 도시정착지로 인구는 33백명(2010년 센서스) 정도라고 합니다. 전에는 44백명(1989), 35백명(2002)이었다고 하니까 여기도 인구가 줄고 있네요.

 

크라스키노에는 1867년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첫 이름은 노보키에프스코에(Новокиевское)였습니다. 1869년부터 월경과 범죄방지를 위해 수비대가 파견됐고, 1880년 우수리스크 기병대가 주둔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이곳은 국경을 수비하기 위한 군사도시였던 셈입니다.

 

 

1936510일 노보키에프스코예는 크라스키노로 개명되었는데, 1936325일 이 지역을 침략하는 압도적인 일본-만주군을 일개 소대 병력으로 격퇴하고 전사한 적군(赤軍) 장교 미하일 크라시킨(Михаиле Краскине) 중위를 기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러시아어 위키피디어는 1880년대 중반에 이 지역의 유력 사업가이자 재러 고려인들의 비공식 지도자 최재형(Чхвэ Джэхён, 세례명 뾰뜨르 최 Петр Цой, 1860-1920) 선생이 이곳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서술했습니다. 비공식이라고 한 것은 공무원은 아니었다는 뜻인 것 같고, 최재형 선생의 주도로 최초의 6년제 고려인 학교가 이곳에 설립됐다고 합니다.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 방문단이 러시아 입국 후에 처음 도착한 곳이 최재형 선생께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시고 첫 고려인 학교를 설립하신 크라스키노라는 것이 뜻 깊게 느껴졌습니다.

 

뜻이 깊은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국제버스가 크라스키노에 도착하자 일행은 짐을 가지고 모두 하차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세버스로 우수리스크까지 이동하기로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짐을 한데 모아놓고서 전세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내 도착한 버스에서 김 발레리아 선생이 남편이신 김 발렌친 선생과 함께 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다짜고짜 일행을 한 사람씩 붙잡고 포옹으로 인사해 주셨습니다. 황광석 선생은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년 만에 연해주를 방문한 것인데, 김발레리아 선생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만나 포옹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더구나 황선생은 남편이신 김발렌친 선생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오래 포옹하시더군요.

 

 

연해주를 자주 방문하셨던 정성훈, 이황휘 선생도 김발레리아 선생을 반갑게 맞았고, 작년 대륙횡단 자동차 랠리를 시작하면서 우수리스크를 방문, 김발레리아 선생을 만난 적이 있는 이고은 선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김발레리아 선생을 직접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온라인으로 교환한 사진과 음성메시지로 이미 친숙했습니다. 얼굴을 뵙고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어제 만났던 것 같았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저도 포옹으로 맞아 주셨고, 연해주를 처음 방문하는 류건주, 임상택, 나성수, 김사모, 김찬우, 박한용, 박미현, 전재운, 박인호 선생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구글맵으로 우수리스크까지의 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200킬로미터가 넘었습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2시간40분을 달려 마중을 나오신 것입니다. 방문단이 크라스키노에 도착하는 것을 알면서 우수리스크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하십니다.

 

 

처음 온 러시아에서 이런 진심어린 환대를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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琿春海関ぎてロシアに入国すると包装状態があまりくないクラスキノ-国境国道(а/д Крскин-госг)沿って30ほどってクラスキノに到着します

 

グーグルの地図琿春海関をローマ表記するフィチュンポート(Huichun Port)表記したのが若干疑問です。 「琿春という意味満州語發音huncun音叉した名前だそうですが中国語のや満州語琿春をロシアではHuichun発音するのでしょうか

 

 

琿春海関えると国道両側にコンテナトラックや天然ガスを輸送するタンカートラックがんでいます琿春海関から国境まではもちろん国境ってロシアにってもトラックの行列きました琿春海関通関つトラックだそうです

 

 

ロシア国境地帯には大規模建築工事進行中です道路沿ってとても地域整地していてその巨大鋼鉄のビームがてられ連結されて3-4階建てのさの建物がっています国境地帯でなぜこのような大規模開発進行中なのか疑問いました

 

 

グーグルリングによりこの地域開発潜在力きい地域でありその潜在力中国主導実現していることがかりました昨日今日のことではなく10数年前から開発ブームが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ね

 

える成果琿春市発展です中国琿春中国東北地域観光中心地であり朝鮮羅津-先鋒とロシアの沿海州国際交易中心地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

 

 

観光都市琿春470キロの長春-琿春高速鉄道開通本格化しましたこれで長春から琿春まで3時間けます2015920開通したこの高速鉄道利用客開通1100万人突破したということです

 

にその101国慶節中華人民共和国政府樹立記念日まった7日連休22万人琿春駅到着したということですね琿春人口24万人ですからそれに観光客1週間集まったわけです

 

 

観光都市よりも野心的計画琿春東北出海しい通路にするということです渾春集散された商品天然資源陸路羅津-先鋒港んで船積みしたり琿春から船積みして豆満江沿って東海るようにするということですここには韓国物流会社琿春ポスコ現代参加することで南北中露4国際交易発展する可能性かれています

 

 

琿春東北出海のためには朝鮮とロシアの協力必要です中国東北地域していません豆満江下流最後17キロが朝鮮とロシアの国境だからです中国東北領土びていて防川村まっています

 

中国物流東海かうには朝鮮とロシアの協力必要中国反対給付提供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朝鮮とロシアが関税恩恵けながら薫天利用させるのでしょう

 

 

この計画過去 4 ~ 5 年間中断されたようですコロナ朝鮮国境閉鎖ウクライナ戦争でロシアがこれを推進する余力がなかったからです

 

しかし最近三国による国際交易努力再開されたもようです20232には羅先-琿春間のトラック通行再開2024には中国豆満江使用権をめぐる朝鮮中国交渉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ただ最近北韓韓国への敵対宣言この地域での韓国役割縮小する見通しです

 

 

ロシアは琿春中心とした三国国際交易消極的ですが琿春経由してシベリアや沿海州天然資源中国北韓輸出する問題深刻考慮しています

 

 

韓国訪問団国境地帯目撃したロシアのトレーラーとタンカートラックはそのようなきがすでにまっていることをえる証拠だといます(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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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해관을 지나 러시아에 입국하면 포장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크라스키노-국경 국도(а/д Краскино-госграница)”를 따라 30분쯤 달려 크라스키노에 도착하게 됩니다.

 

구글 지도에서 훈춘해관(渾春海關)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 휘춘포트(Huichun Port)라고 표기한 것이 약간 의문입니다. ‘훈춘(渾春)’꼬리라는 뜻의 만주어 훈춘(huncun)’을 음차한 이름입니다. 중국어 훈춘을 러시아어로는 휘춘이라고 발음하는 것일까요?

 

 

훈춘해관을 넘으니 국도의 양쪽에 컨테이너 트럭들과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탱커 트럭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습니다. 훈춘해관에서 국경까지는 물론, 국경을 지나 러시아에 들어서도 트럭의 행렬은 계속되었습니다. 훈춘해관의 통관을 기다리는 트럭들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측 국경지대에는 대규모의 건축공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굉장히 넓은 지역이 정지되어 있었고 그 위에 거대한 강철 빔들이 세워지고 연결되어 3-4층 높이의 건물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국경지대에 어째서 이같은 대규모 개발이 진행 중인지 궁금했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이 지역이 개발 잠재력이 큰 지역이고, 그 잠재력은 중국 주도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10여년 전부터 개발 붐이 시작됐다는군요.

 

가시적인 성과가 훈춘시의 발전입니다. 중국은 훈춘을 중국 동북지역의 관광 중심지이자, 조선의 나진-선봉과 러시아의 연해주를 연결하는 국제교역 중심지로 삼으려고 합니다.

 

 

관광도시 훈춘은 470킬로미터의 창춘-훈춘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이제 창춘에서 훈춘까지 3시간에 갈 수 있습니다. 2015920일 개통된 이 고속철도의 이용객은 개통 한 달 만에 1백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특히 101일 궈칭제(国庆节, 국경절,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 기념일)에 시작된 7일 연휴 동안 22만명이 훈춘역에 도착했다는군요. 훈춘 인구가 24만명이니 그에 버금가는 관광객이 일주일 동안 몰린 것이지요.

 

 

관광도시보다 더 야심찬 계획이 훈춘을 동북출해(東北出海)의 새통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훈천에 집산된 상품과 천연자원을 육로로 나진-선봉항으로 운반해 선적하거나, 아예 훈춘에서 선적해 두만강을 따라 동해로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물류회사 훈춘포스코현대가 참여함으로써, 남북중러의 4개국 국제교역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훈춘의 동북출해를 위해서는 조선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중국 동북지역은 바다에 접해있지 않습니다. 두만강 하류의 마지막 17킬로미터가 조선과 러시아의 국경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동북 영토는 가는 꼬리모양으로 뻗다가 끄트머리의 팡촨(防川)에 멈춰있습니다.

 

중국의 물류가 동해로 나가려면 조선과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이들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합니다. 물류 중심지 훈춘을 조선과 러시아가 관세 혜택을 받아가면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이 계획은 지난 4-5년간 중단된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조선이 국경을 닫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이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삼국의 국제교역 노력이 재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20232월에는 나선-훈춘 사이의 트럭 통행을 재개됐고, 2024년에는 중국의 두만강 사용권에 대한 조선과 중국 사이의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최근 북한의 대남 적대 선언으로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은 축소될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훈춘을 중심으로 한 삼국의 국제교역에 가장 소극적이지만, 훈춘을 경유해 시베리아와 연해주의 천연자원을 중국과 북한에 수출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방문단이 중러 국경지대에서 목격한 러시아의 트레일러와 탱커트럭들은 그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시적인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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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程2日目一行国際バスで中国-ロシアの国境えましたバスがホテルまでてくれて琿春バスターミナルまで移動しなければならない手間らしたのですがこれは旅行社渉外のおかげでした

 

 

バスが追加乗客のために琿春駅停車した旅行社のホ·ドンヒョク社長とガイドの金仙女さんとれました中国日程几帳面管理しながらくの便宜提供してくださったお二人感謝バスの記念撮影もしました金仙女さんは白頭山旅行にまたおうとびかけました

 

 

バスは琿春南西外郭海関移動しましたが海関とは国境設置された中国税関です淸國阿片戦争-南京条約開国され設置したのでったわけですがそのではなく国境税関もただ海関んでいるようです

 

 

旅行社のアドバイス朝早到着したら海関複雑になるやかに中国への出国手続きをえることができました乗客とバスは々に税関出国手続きを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乗客海関荷物ってバスを空港でのように入国審査通関手続きをバスもしい検索けましたバスを検査する通路になっていてバスのまでくまなく調べ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ましたね

 

 

乗客りたバスの内部係員んで々まで調べます許可されていない物品搬出または搬入されることを統制するためです乗客荷物検査には探知犬動員されましたがおそらく麻薬類搬入·搬出されるかどうかを調べるためのものとみられます

 

地上移動国境える手続きが空港じようにめられるのを経験したのは今回めてですアメリカ-カナダ国境とアメリカ-メキシコ国境るときには自動車からりずに手続きがヨーロッパを旅行するときには越境手続きも必要なかったからです

 

 

中国出国過程問題じました団体ビザで旅行する訪問団入国海関出国海関じ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原則のためです個人旅行者わないのですが団体ビザで延吉空港入国したたち一行原則として琿春出国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旅行社はその原則っていましたが金仙女さんは中国てロシアに出国する韓国人団体旅行客何度案内した経験らしてきな問題はないだろうと安心させてくれましたしかし琿春海関審査官たちは前例らなかったのかいに議論しながら規定手続きを確認するのにかなり時間がかかりました結局訪問団一行出国され出国審査まると審査にはそれほど時間はかかりませんでした

 

 

ロシアでは国境守備隊検問税関および移民局調査々にわれたため手続きがくなりました検問には武装していない軍人がバスにんで一行見渡移民局官吏乗車して一行のパスポート所持有無一次検査しましたそれからはロシアの出入国管理所前めて乗客とバスの入国審査われました

 

ロシアへの入国審査中国出国審査よりも簡単でした韓国とロシアのビザ協定締結されていてパスポートだけ提出すればよかったからですしかし税関荷物検査中国よりも几帳面でしたにはスーツケースをけてみろという要求はしませんでしたがすでにレントゲン装置通過したバックパックと腰袋けてせてもらいました

 

 

バックパックとウエストバッグの検査では現金集中的調べましたドルやユーロをっているのかいていましたおそらくウクライナ·ロシア戦争進行中これを口実にアメリカとヨーロッパの経済制裁状況でドルとユーロが流入することを統制するものと解釈されましたロシアのルーブルと韓国のウォンは問題にならないようでした

 

財布けて韓国のおとロシアのおせたら入国審査とともに税関検査やかにわりました一行一部がスーツケースをけてみろという要請けましたが問題きず一行全員正常にロシアに入国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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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둘째 날 아침, 일행은 국제버스로 중국-러시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버스가 호텔까지 와주어서 훈춘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해야할 수고를 덜었는데, 여행사의 섭외덕분이었습니다.

 

 

버스가 추가 승객을 위해 훈춘역에 정차했을 때 여행사 허동혁 사장님과 가이드 김선녀씨와 헤어졌습니다. 중국 일정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많은 편의를 제공하신 두 분에게 감사드렸고,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김선녀씨는 백두산 여행 때 다시 만나자고 당부했습니다.

 

 

버스는 훈춘 남서쪽 외곽의 해관(海關)으로 이동했는데, 해관이란 항구나 국경에 설치된 중국의 세관입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난징조약으로 개국당하면서 항구에 설치했기 때문에 ''관이라고 한 것인데, 이후 항구가 아닌 국경의 세관도 그냥 해관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여행사의 조언대로 아침 일찍 도착했더니 해관이 복잡해지기 전에 신속하게 중국 출국 절차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승객과 버스는 따로따로 해관의 출국 절차를 받아야 했습니다. 승객들이 해관 앞에서 짐을 가지고 버스를 내려서 공항에서처럼 입국 심사와 통관 절차를 밟는 동안, 버스도 까다로운 검색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검사하는 통로는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버스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승객이 내린 버스의 내부도 관원이 탑승해 샅샅이 살핍니다. 허가되지 않은 물품이 반출, 또는 반입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이겠습니다. 승객의 짐 검사에는 탐지견도 동원되었는데, 아마도 마약류가 반입/반출되는지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상 이동으로 국경을 넘는 절차가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진행되는 것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미국-캐나다 국경과 미국-멕시코 국경을 건널 때에는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고 절차가 진행되었고, 유럽을 여행할 때에는 월경에 아무 절차도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출국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단체 비자로 여행하는 방문단은 입국해관과 출국해관이 같아야 한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개인 여행자는 상관없지만, 단체 비자로 옌지 공항으로 입국한 우리 일행은 원칙상 훈춘으로 출국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사는 그 원칙을 알고 있었지만, 김선녀씨는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출국하는 한국인 단체여행객을 여러 번 안내한 경험에 비추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훈춘 해관의 심사관들은 전례를 알지 못했는지 서로 의논해 가면서 규정과 절차를 확인하느라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방문단 일행의 출국은 허용되었고, 출국심사가 시작되자 개개인의 심사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쪽에서는 국경수비대의 검문과 세관 및 이민국의 조사가 따로따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절차가 길어졌습니다. 검문에는 무장하지 않은 군인이 버스에 올라 일행을 살폈고, 이민국 관리도 승차해서 일행의 여권 소지 여부를 일차 검사했습니다. 그리고는 러시아의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내려, 다시 한 번 승객과 버스의 입국 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러시아 입국심사는 중국의 출국심사보다 간편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어서, 여권만 제출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관의 짐 검사는 중국보다 꼼꼼했습니다. 제게는 캐리어를 열어보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엑스레이 장치를 통과한 백팩과 허리가방을 열어서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백팩과 허리가방의 검사에서는 현금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달러나 유로화를 가지고 있는지 반복해서 묻더군요. 아마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진행 중이고, 이를 빌미로 미국과 유럽의 대러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달러화와 유로화가 유입되는 것을 통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러시아 루불화와 한국 원화는 문제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저는 지갑을 열어 한국 돈과 러시아 돈을 보여주었더니 입국심사와 함께 세관 검사가 신속하게 끝났습니다. 일행 중의 일부가 캐리어를 열어보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고, 일행 전원이 정상적으로 러시아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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広野というがあります19871013ソウル鍾路5のキリスト教百周年記念館かれた<める(=ノチャッサ)>創立公演めて公開演奏されたです

 

 

<広野>1984成均館大学校サークル<ソリサラン>誕生しました文大鉉(ムン·デヒョン, 貿易学83)作詞作曲広野はその後運動歌謡代表曲となりましたがいつも/反合法集会愛唱されましたそれが<ノチャッサ>最初公開公演決定すると演奏曲ばれたのです

 

<ノチャッサ>1983ソウル大学サークル<メアリ>創立者·ギョンホ(経営学75)先生文大鉉実兄文承鉉(政治78)先生などが主軸になって延世大学<ウリムト>高麗大学<アル>成均館大学<ソリサラン>梨花女子大学<ハンソリ>などの卒業生たちが参加して創立された演奏團です

 

 

金光石(キム·グァンソク)大学サークル出身ではありませんが1982結成された汎大学歌サークル連合メアリ参加運動歌謡第一歩卓越した歌唱力ですぐにノチャッサの中核メンバーとなりましたノチャッサ創立公演でも金光石緑豆金芝河詩/趙念作曲)」この山河文承鉉作詞/作曲)」、「広野でもイ·ジュイク先生交互にソロ部分歌唱担当しました

 

広野編曲文承鉉先生担当文大鉉先生伴奏班でドラムを担当しました。 「おいここのドラムは文大鉉がやらないとっていた文承鉉先生々しいです正確力強よくシンバルをつことができるというのが理由でした

 

 

はこの公演司会、『のシンシンわがわが民族』、『広野などの合唱にも参加しましたがそれはがノチャッサの初期代表歌手であるチョ·ギョンオク·ジュイクパク·ミソンキム·ジェソプソン·スクファンキム·グァンソクのように上手だったからではありません

 

ただ公演司会をしながら歌手紹介そのままるのではなく合唱でもえなさいという文承鉉先生指示があったからですこの歴史的公演でそのような役割でもけたことがには人生がいっぱいになった瞬間つとしてりました

 

 

広野くなりましたがそれは広闊満州原野という歌詞のためですそれまでは日帝植民地時代独立軍歌いては満州運動歌素材になったこと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でした。 「広野じて満州原野韓国主流運動歌謡流入したのです

 

広闊という形容詞りましたが満州原野直接見るまではその言葉意味をきちんと理解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ようですアメリカのウィスコンシンやアリゾナ横断しながらそのたようなじをっていたのは事実ですがそのはその広大さがとは関係ありませんでした他人土地だというえが先走ったからだといます

 

 

しかし今回延吉空港りるまでから見下ろす満州広闊この広大土地一時韓民族らしの基盤だったという事実がこみげてきましたでもかかっていたら事情っていたでしょうがそのって天気がとてもくて3フィート上空時速700キロでびながらもてしなく々とその広大丘陵野原がはっきりと見下ろせたのです

 

 

今回訪問前後旅程<広野>する親近感してくれました仁川空港出発する直前はユジュン画伯五月美術館展示会応援するために光州ってきましたそしてすぐに満州上空ぶ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また沿海州には飛行機便西海上空経由帰国には船便東海横切って東海港入港することになっていました沿海州訪問前後南道満州西海東海両方旅行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今度旅行<広野>主題歌になった理由です

 

"日が昇る東海から/ 日が沈む西海まで/ 熱い南道から/ 広闊な満州原野" (jc, 2024/5/14)

 

 

 

1987年10月、『ノチャッサ』の初公演で演奏された『広野で』を聴いてみたいなら、下のリンクを押してみてください。(さらに、私が歌っている姿も出てきます。^^)

 

https://www.youtube.com/watch?v=U3U8jasua0Y&list=PLqY5Wn1plEnGlTGhoZUoiHE9JcSMgJtqL&index=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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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9871013, 서울 종로5가의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창단 공연에서 처음으로 공개 연주되었던 노래입니다. 그 공연에서 <광야에서>3부 첫 곡이자 전체 공연의 9번째 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광야에서>1984년 성균관대학교의 노래패 <소리사랑>에서 탄생했습니다. 문대현(무역83) 작사/작곡의 <광야에서>는 이후 운동가요의 대표곡이 되었지만, 언제나 비/반합법 집회나 술자리에서 애창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첫 번째 공개공연을 결정하자 연주곡으로 선택된 것이지요.

 

노찾사는 1983,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창립자 이경호(경영학75) 선생과 문대현의 친형 문승현(정치78) 선생 등이 주축이 되고, 고려대 <노래얼>, 성균관대 <소리사랑>, 연세대 <울림터>,  이화여대 <한소리> 등의 졸업생들이 참여해 창립된 노래패입니다.

 

 

김광석은 대학 노래패 출신은 아니지만 1982년 결성된 범대학 노래패 <연합메아리>에 참가해 운동가요에 첫발을 디뎠고, 탁월한 가창력으로 이내 노찾사의 핵심 멤버가 되었습니다. 노찾사 창단 공연에서도 김광석은 <녹두꽃(김지하 시/조념 작곡)><이 산하에(문승현 작사/작곡)>를 불렀고, <광야에서>에서도 이주익 선생과 번갈아 솔로 부분 가창을 맡았습니다.

 

<광야에서>의 편곡은 문승현 선생이 맡았고, 문대현 선생은 반주반에서 드럼을 맡았습니다. “, 여기 드럼은 대현이가 해야 겠다고 말하던 문승현 선생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가장 정확하고 힘차고 맛깔지게 심벌즈를 때릴 줄 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는 이 공연에서 사회를 맡았었고, <바람씽씽><내나라 내겨레>,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광야에서> 등의 합창에도 참가했는데, 그것은 제가 노찾사의 초기 대표가수들인 조경옥, 이주익, 박미선, 김제섭, 송숙환, 김광석처럼 노래를 잘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공연 사회를 보면서 곡과 가수 소개하고 그냥 들어가기 뭐하니까, 합창에 소리나 보태라는 문승현 선생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인 공연에서 그런 역할이나마 맡았던 것이 제게는 인생의 뿌듯했던 순간의 하나로 남았습니다.

 

 

<광야에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그것은 광활한 만주 벌판이라는 가사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의 독립군가를 제외하고는 만주가 운동가의 소재가 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광야에서>를 통해 만주 벌판이 다시 한국 주류의 운동가요에 유입된 것이지요.

 

저는 광활한이라는 형용사가 마음에 들었지만, 만주 땅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위스컨신주나 아리조나주를 횡단하면서 그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는 그 광활함이 나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남의 땅이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연길 공항에 내릴 때까지 창문으로 내려다 본 만주는 광활했고, 이 광활한 땅이 한때 한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이 북받치더군요. 구름이라도 꼈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좋아서 3만피트 상공을 시속 7백킬로미터로 날아가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산들과 그 사이의 광활한 구릉이나 들판이 또렷하게 내려다 보였던 겁니다.

 

 

이번 방문의 전후 여정이 <광야에서>에 대한 친근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인천 공항을 출발하기 직전에 저는 유준 화백의 오월미술관 전시회를 응원하기 위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만주 상공을 날아보게 된 것이지요.

 

 

또 연해주에 갈 때는 비행기편으로 서해 상공을 경유하고, 귀국길에는 배편으로 동해를 가로질러 동해항에 입항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연해주 방문을 전후로 남도와 만주, 서해와 동해를 모두 여행하게 된 것이지요. 이번 여행에서 <광야에서>가 저의 주제가가 된 까닭입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jc, 2024/5/14)

 

 

 

1987년 10월 <노찾사> 첫공연에서 연주된 <광야에서>를 들어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눌러 보세요. (심지어 제가 노래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화질은.... 썩 좋지 않지만요.)
https://www.youtube.com/watch?v=U3U8jasua0Y&list=PLqY5Wn1plEnGlTGhoZUoiHE9JcSMgJtqL&index=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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図們川辺公園観光とバスキングをえた一行びバスに宿舎かいました初日宿所中国日程案内した<延辺海峡国際旅行社>予約したウィンナーホテルです

 

 

前述のとおりこのホテル中国語発音はウェイイェナ維也納ですがドイツのウィンナー(Vienna)音叉した言葉です中国語名前ではなぜウィーンのブイV発音えてしまったのか疑問です

 

 

海峡国際旅行社ウェイイェナホテルが図們もきれいな4ホテルだと紹介しました普段愛用しているビジネスホテルよりもずっと宿であることに感謝していました食堂土産物店素晴らしく冷蔵庫がないけば客室もきれいでベッドも快適でした

 

 

ただロビーや客室のすべての案内文中国語だけになっていてしいがありましたテレビのリモコンや充電端子説明文全部中国語だけなので中国語からない電話充電はもちろんテレビをつけることさえとてもしかったです

 

 

客室にはベッドが2つあってはリュゴンジュ先生一緒客室使うことになりましたリュ·ゴンジュ先生大学学科先輩ですが2020在日ウリ学校後援のための最初募金活動めたから<舞踊靴>活動支援してくださった後援者ですリュ·ゴンジュ先生毎月一定金額自動振替形式<舞踊靴>後援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

 

 

リュ·ゴンジュ先生10ほど集安から白頭山地域韓半島北西部鴨緑江地域旅行されたことがあるのですがいつか東北部豆満江地域沿海州をぜひ旅行したいといういがあったそうです今回<舞踊靴>日程がその期待符合したため募集公告るやいなやすぐに参加申請をしてくださいました10後輩でありながらきちんと口答えをはばからない後輩にもとても寛大なのでとしては最上のルームメートにったのです

 

 

ガイドの金仙女さんのけでチェックインをえてたちはびバスにって食堂かいました海峡旅行社手配したレストランはリムガ(林家)·ジャングクチプ(酱汤屋)です

 

韓国語看板にはチャングクとありますが漢字酱汤(チャンタン)」となっていますねチャンタンとは味噌豚肉シレギなどをれたスープのことですが韓国のシレギの味噌汁美味しい豚肉れてじっくり煮込んだものと理解できますね

 

 

しかしたち一行夕食献立には味噌汁味見としてただけで正方形きなテーブル2つにいっぱい各種やナムル(菜蔬)海鮮豆腐などがっていましたテーブルに8ずつってべてもべきれないほど豊富でした

 

はエビや豆腐イカの焼肉豚肉薄切りなどきなものがすぎてすぐぎてしまいました昼食にもきなでいっぱいの冷麺べていたので夕食べられないとっていたのですが夕食としてまたぎてしまいました

 

 

昼食時べきれなかった大同江ビールがびテーブルにがりましたが中国でもこのビールをこんなにかにわえるというのは贅沢です

 

さらに北京産ホンシン(紅星)ブランドの二鍋頭酒(イグアドゥジュ)わうことができました蜀黍主原料2蒸留生産される二鍋頭酒生産6かかる白酒だそうです

 

 

紅星というの暗示されている1949中華人民共和国建国されて設立された酒造会社です中国人民手頃価格めるようにすることを目標設立された会社ニューランシャン(牛栏山)とともに二鍋頭酒生産する2大酒造会社だそうです

 

 

中国到着するやいなや朝鮮大同江ビールと朝鮮族同胞味噌酒醬露そして中国白酒<紅星二鍋頭酒>まで々とわ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ので今回旅行いお試飲旅行としてまったとっても過言ではないようです(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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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먼 강변공원 관광과 버스킹을 마친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숙소로 향했습니다. 첫날의 숙소는 우리의 중국 일정을 안내한 <연변해협국제여행사>가 예약한 비엔나 호텔입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 호텔 이름의 중국어 발음은 웨이예나(維也納)인데, 독일어 비엔나를 음차한 말입니다. 중국어 이름에서는 어째서 비엔나의 브이(V) 발음이 사라져버렸는지 의문입니다.

 

 

여행사에서는 웨이예나 호텔이 투먼에서 가장 깨끗한 4성급 호텔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애용하는 비즈니스호텔보다 훨씬 좋은 숙소인 것이 감사했습니다. 1층의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도 훌륭하고, 냉장고가 없는 점만 빼면 객실도 깨끗하고, 침대도 편안했습니다.

 

 

다만 로비나 객실의 모든 안내문이 중국어로만 되어 있어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티비 리모콘이나 충전 단자의 설명문이 전부 중국어뿐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저는 전화 충전은 물론 티비를 켜는 것조차 아주 어려웠습니다.

 

 

객실에는 침대가 2개 마련되어 있었고, 저는 류건주 선생님과 함께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류건주 선생님은 제 대학 같은 학과의 선배님이신데, 2020년 재일 우리학교 후원을 위한 최초의 모금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무용신>의 활동을 지원해 주신 후원자이십니다. 류건주 선생님은 지금도 매달 일정 금액을 자동이체 형식으로 <무용신>을 후원하고 계십니다.

 

 

류건주 선생님은 십년 쯤 전에 집안에서 백두산 지역에 이르는 한반도 북서부의 압록강 지역을 여행하신 적이 있으신데, 언젠가 동북부의 두만강 지역과 연해주를 꼭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이번 <무용신>의 일정이 그 기대에 부합되는 바람에 모집 공고가 나자마자 바로 참여 신청을 해 주셨습니다. 10년이나 후배이면서도 따박따박 말대답을 서슴지 않는 후배한테도 무척 관대하신 분이어서 저로서는 최상의 룸메이트를 만난 것이지요.

 

 

가이드 김선녀씨의 도움으로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여행사에서 주선한 식당은 <림가네 장국집(林氏酱湯屋)>입니다.

 

한국어 간판에는 장국이라고 되어 있지만 한자는 장탕(醬湯 혹은 酱汤)’이라고 되어 있네요. 장탕이란 된장과 돼지고기, 시레기 등을 넣은 국인데, 한국의 시레기 된장국에다가 연하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넣어 푹 끓인 것으로 이해되네요.

 

 

그러나 우리 일행의 저녁 식단에는 장국은 맛뵈기로 조금 나왔을 뿐이고, 정방형의 커다란 테이블 2개에 가득 각종 고기와 나물, 해물과 두부 등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각 테이블에 8명씩 앉아서 먹더라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이 풍성했습니다.

 

저는 새우와 두부, 오징어 불고기와 돼지고기 편육 등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금방 과식을 해 버렸습니다. 점심 식사 때에도 커다란 놋대접에 가득한 냉면을 먹었던 터라, 저녁식사를 제대로 못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저녁은 저녁식사 대로 또 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점심식사 때에 다 먹지 못한 대동강 맥주가 다시 테이블에 올랐는데, 중국에서나마 이 맥주를 이렇게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호사입니다. 그리고 벌써 한국의 소주가 그리우신 분이 계셨는지 진로소주 프레시도 등장했습니다.

 

거기다가 베이징산 홍성(紅星, 홍싱) 브랜드의 이과두주(二鍋頭酒, 어쿼투지우)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수수를 주원료로 2차례의 증류를 거쳐 생산되는 이과두주는 생산에 6개월이 걸리는 백주(白酒, 바이주)라고 합니다.

 

 

붉은 별이라는 뜻의 홍싱은, 이름에 암시된 대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설립된 주조사입니다. 중국 인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려는 목표로 설립된 회사로, 뉴란샨(牛栏山)과 함께 좋은 이과두주를 생산하는 2대 주조사라고 합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조선의 대동강 맥주와 조선족 동포들의 된장술 <지앙루(醬露)>, 그리고 중국 백주 <홍성이과두주(紅星二鍋頭酒)>까지 차례로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번 여행은 좋은 술 시음여행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합니다. (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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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行図們川辺公園った自由時間朴仁浩(パク·インホ)先生はサックス演奏会きました

 

 

<舞踊靴>訪問団組織する参加する朴仁浩先生歯科医師でありながらもサックスと大金演奏けています国楽演奏団<風流会>会員として10年以上テグムを演奏され最近はサックスの演奏力量ててきました

 

昨年20232来日にも兵庫県宝塚市滿福寺風流会のメンバーと一緒臨陣江演奏していただき日本人在日同胞印象えましたが今回訪問でもその熱意実力遺憾なく発揮しました

 

 

こののバスキングの演奏曲、「汽車はその夜明けにったfeat.黃光石先生)」、「大地」、「ソウルから平壌まで」、「くなれクムスンアfeat.林尙澤先生)」、映画ゴッドファーザーのテーマショスタコーヴィチのセカンド·ワルツなどの6でしたが一曲ずつ演奏されるたびに住民観光客拍手りました

 

 

·ジサン作曲汽車はその夜明けにった演奏するには黃光石先生歌唱参加しましたが黃光石先生実力にこの歌唱力日進月歩模範という評価です帰国には東海航海する歌曲明太熱唱されると予告されていましたがこのする期待非常いです

 

 

<くなれクムスンア>演奏には林尙澤先生がダンスでえてくれました演奏りのシンクロ100%であることをると林尙澤先生のリズム卓越していることがかります

 

 

サックスの演奏歌唱りは全宰云先生写真とチョン·ソンフン先生映像まれました10年以上在日朝鮮学校生徒たちの姿撮影してこられた全宰云先生今回もスマートフォンを3のカメラを動員して訪問団旅程しく撮影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

 

 

映画監督のチョン·ソンフン先生図們川辺のバスキングを撮影してくださいました々な位置角度から撮影される姿さすが専門家らしい風貌ですこの映像がうまく編集されれば今回<舞踊靴>沿海州訪問記録としてるでしょう

 

 

川辺公園では観光客川向こうの朝鮮様子撮影することが禁止されています案内員金仙女中国公安=警察韓国人観光客北韓地域での撮影まっているとらせてくださり発覚した場合制裁深刻なので規則ってほしいとびかけました

 

 

ところがバスキングが川辺遊歩道われ訪問団一行めながら街路沿いにったので演奏撮影していると自然対岸様子写真映像ま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このような姿心配になった金仙女氏この区域担当した公安づき対話けながら関心訪問団写真撮影集中しないようにしたという後日談ですおかげで一行はバスキングをしみながら豆満江沿いの姿写真映像め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こののバスキングにはソウルから平壌までのサックス演奏まれていました統一韓国同胞いがのリズムとともに豆満江こうの朝鮮同胞たちにもわってほしいとった演奏でした

 

 

一行はオクスス(=トウモロコシ)マッコリと羊肉串焼きでバスキングのがりをさらに韓国のアイスクリームが販売されるのがうれしいということでロッテ製菓輸出した<ワールドコーン>つずつべながら公園ました

 

 

川辺公園川岸のほうは遊歩道がよく整備されていて食堂居酒屋土産屋韓服レンタルなどがきれいにられていましたがその裏手にはびた路地閉店した商店などがんでいましたコロナ禍以降観光客開発れたり中断されたりしたためだといます

 

 

この地域開発発展朝鮮族同胞らしとびがかになることを気持ちです(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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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투먼 강변 공원에서 가진 자유 시간에 박인호 선생은 색소폰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무용신>이 방문단을 조직할 때마다 참여하시는 박인호 선생은 치과의사이면서도 색소폰과 대금 연주에 능합니다. 국악연주단 <풍류회>의 회원으로 10년 이상 대금을 연주하셨고, 최근에는 색소폰의 연주역량도 길러 왔습니다.

 

작년(2023) 2월의 일본 방문 때도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만푸쿠지에서 <풍류회> 회원들과 함께 <림진강>을 연주하셔서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에게 깊은 인상을 드렸는데, 이번 방문에서도 그 열의와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이 버스킹의 연주곡은 <기차는 그 새벽에 떠났다(feat. 황광석 선생의 노래)>, <대지의 항구>, <서울에서 평양까지>, <굳세어라 금순아(feat. 임상택 선생의 춤), 영화 <대부>의 테마곡, 쇼스타코비치의 <세컨드 왈츠> 등의 6곡이었는데, 한 곡씩 연주될 때마다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지상 작곡의 <기차는 그 새벽에 떠났다>를 연주할 때는 황광석 선생이 가창으로 동참했는데, 황광석 선생의 노래 실력, 특히 이 노래의 가창 실력은 일취월장의 모범이라는 평가입니다. 귀국길에는 배가 동해를 항해하는 동안 가곡 <명태>를 열창하시겠다고 예고하셨는데, 이 곡에 대한 기대도 아주 높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연주에는 임상택 선생님이 춤으로 화답하셨습니다. 연주와 춤사위의 싱크로율이 1백퍼센트인 것을 보니까 임상택 선생님의 리듬감이 탁월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와 가창과 춤사위는 전재운 선생의 사진과 정성훈 선생의 영상에 담겼습니다. 10년 이상 재일 우리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촬영해 오신 전재운 선생은 이번에도 스마트폰을 포함, 3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방문단의 여정을 자세히 촬영하고 계십니다.

 

 

영화감독 정성훈 선생도 투먼 강변의 버스킹을 촬영해 주셨습니다. 다양한 위치와 각도에서 촬영하시는 모습이 과연 전문가다운 풍모입니다. 이 영상들이 잘 편집되면 이번 <무용신>의 연해주 방문이 좋은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 강변공원에서는 관광객들이 강 건너 조선 남양의 모습을 촬영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안내원 김선녀씨는 중국의 공안(=경찰)이 한국 관광객들의 북한지역 촬영을 단속하고 있다고 알려 주셨고, 발각될 경우 제재가 심각하므로 규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버스킹이 강변 산책로에서 이뤄졌고, 방문단 일행은 강을 바라보면서 가로변에 앉았기 때문에 연주를 촬영하다보면 자연히 강 건너의 모습이 사진과 영상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일행의 이런 모습에 걱정이 되신 김선녀씨는 이 구역을 담당한 공안에게 다가가 대화를 이어나가시면서, 그의 관심이 방문단의 사진 촬영에 쏠리지 않게 하셨다는 후일담입니다. 덕분에 일행은 버스킹을 즐기면서 두만강변의 모습도 사진과 영상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버스킹에는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색소폰 연주도 포함되었습니다. 통일을 바라는 한국동포들의 염원이 노랫가락과 함께 두만강 건너의 조선 동포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연주였습니다.

 

 

버스킹과 함께 일행은 옥수수 막걸리와 양꼬치로 흥을 더욱 돋우었고, 한국 아이스크림이 판매되는 것이 반가워, 롯데제과가 수출한 <월드콘>을 하나씩 먹으면서 공원을 나섰습니다.

 

 

강변 공원의 강안 쪽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식당과 주점, 기념품 가게와 한복대여소 등이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그 뒤편에는 허름한 골목과 문을 닫은 상점들이 즐비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관광객들이 줄면서 개발이 지체되거나 중단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 지역 개발과 발전이 계속되어서 조선족 동포들의 삶과 놀이가 풍성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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昼食えて図們かいました中国語図們朝鮮族同胞ドムンんでいますがこれは豆満(マン)関連した名前だとわれます

 

 

中国語漢字図們韓国語漢字豆滿なるから中国韓国漢字使用慣行なることもあったことをしていますしかし発音ていても漢字うというげて豆満江図們江いにだという主張もあったりします

 

 

たちが図們ったのは川辺公園時間ごすためです公園自体しいですが豆滿江対岸朝鮮都市南陽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でけられた日程です裸眼朝鮮領土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事実がそれとなく魅力的です

 

 

図們公園南端には豆満江横切があります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1941515メートルのさで完成したこの韓国人をはじめとする外国人くにってることもできなくなっていますしかしインターネットには韓国人中間地点までってった写真がアップされているのをるとこの接近禁止措置最近出されたもののようです

 

 

対岸える南陽姿はそれほど活気ちていませんのこちら図們住民観光客わう一方川向こうの南陽にはえずただまりっている様子です図們では朝鮮土地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だけでも観光要素になる反面南陽では図們るということがあまり意味がないという意味でしょう

 

 

図們川辺公園には朝鮮中国友好強調する構造物彫刻作品いですそのうち最初についたのは洪水克服記念碑ですこの地域大洪水きた朝鮮中国当局人民わせて復旧したことを記念する彫刻です。 

 

 

他にも、丈夫な男性が大きな櫓を漕ぎながら船を海に駆り立てる姿の彫像もありましたが、この彫像の題名は「出海」と付けられていました。 豆満江(トゥマンガン)に沿って東海(トンヘ)に進出しようとする気象で読めます。

 

 

公園南西側には々がっていて瓦屋根きな東屋っていますが観光客よりはこの地域住民まる場所えましたまったたちはほとんどが中年以上男性でしたが将棋したり見物したりしていて一部かけました

 

 

この東屋くに朝中友好える現代的造形物女性彫像2つがてられていますあずまやをめて左側には中国人女性竪琴ってっていて右側には朝鮮女性がめをせている姿です

 

 

いた彫像がもうつあったのですがきなまえた少年いてしそうな子犬彫刻ですのようにがった釣竿いでにっこり少年表情かったし少年身振りとじくらいきな構図りました

 

 

一番感心なのはぴょんぴょんついて子犬姿ですげた姿躍動的だしくは子犬表情笑顔です。(ところで子犬ったりもしましたか^^)

 

 

ただこの公園けられた彫刻大理石青銅ではなく石灰生地られたもののようですところどころれているのにれた隙間からのぞいてみるといていましたこんなに素敵作品がもっと耐久性って制作され展示されるといいなといました

 

 

初日宿泊先図們のウィーンホテルでしたこのホテルの名前がまたえてくれますヴィエナホテルを現地では漢字維也納(韓國發音ユヤナプ)いてウェイイェナweiyenaんでいましたドイツVienna音叉した名前です漢字外来語表記いが中国人えられた言語条件最善くすわけです

 

 

韓国語外来語発音表記正確簡単なのにその長點かせない場合残念ですフランス(France)佛蘭西(韓國發音ブルランソ)ドイツァンツ(Deutschland)獨逸(韓國發音ドクイル)いて慣行っていますそれはまるでウィーン(Vienna)をユヤナプとぶようなものなんですけれども(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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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치고 투먼(圖們)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어 투먼을 조선족 동포들은 도문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두만강(豆滿)과 연관된 이름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중국어 한자 투먼(圖們)과 한국어 한자 두만(豆滿)이 다르다는 점으로 미루어 중국과 한국의 한자 사용 관행이 다르기도 했던 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발음이 비슷해도 한자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서 두만강과 투먼강이 서로 다른 강이라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가 투먼에 들른 것은 강변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공원 자체도 아름답지만 투먼강 건너로 조선의 도시 남양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마련된 일정입니다. 맨눈으로 북한의 영토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투먼 공원 남단에는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515미터의 길이로 완성된 이 다리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건널 수 없을 뿐 아니라 가까이 가서 구경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한국인들이 다리의 중간지점까지 가서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이 접근금지 조치는 최근에 내려진 것인가 봅니다.

 

 

강 건너로 보이는 남양의 모습은 그리 활기차지 않습니다. 강 이쪽의 투먼이 주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반면 강 건너의 남양에는 사람이나 차가 보이지 않고 그저 정적인 모습입니다. 투먼에서는 조선의 땅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광의 요소가 되는 반면, 남양에서는 투먼을 건너다본다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투먼의 강변공원에는 조선과 중국의 우호를 강조하는 구조물과 조각 작품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홍수 극복의 기념비입니다. 이 지역에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조선과 중국의 당국과 인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했던 것을 기념하는 조각입니다

 

 

그밖에도 건장한 남성이 커다란 노를 저으면서 배를 바다로 몰아가는 모습의 조각상도 있었는데, 이 조각상의 제목은 <바다로 나섬(出海)>라고 붙여져 있었습니다. 두만강을 따라 동해로 진출하려는 기상으로 읽을 수 있더군요.

 

 

공원의 남서쪽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고 기와지붕의 커다란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관광객들보다는 이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모인 분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었는데, 장기를 두거나 구경하고 있었고, 일부 책을 읽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바로 이 정자 근처에 조중(朝中) 우호를 기리는 현대적 조형물과 여성의 조각상 두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자를 바라보고 왼쪽에는 중국 여인이 수금을 들고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조선의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눈길을 끈 조각상이 또 하나 있었는데, 커다란 물고기를 잡은 소년이 앞서 걸어가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가 뒤따르는 조각상입니다. 활처럼 휘어진 낚시대를 어깨에 메고 활짝 웃는 소년의 표정도 좋았고, 소년의 몸짓만큼이나 큰 물고기가 좋은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감탄스러운 것은 깡총거리며 따라가는 강아지의 모습입니다. 뒷발을 치켜든 모습이 역동적이었고, 심지어 강아지의 표정도 웃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웃기도 하던가요?^^)

 

 

다만 이 공원에 마련된 조각상들은 대리석이나 청동이 아니라 석회반죽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네요. 군데군데 깨져있는데, 깨진 틈으로 들여다보니 속은 비어 있더군요. 이렇게 멋진 작품들이 좀 더 내구성 있게 제작되어 전시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날 숙소는 투먼의 비엔나 호텔이었습니다. 이 호텔 이름이 또 생각거리를 줍니다. 비엔나 호텔을 현지에서는 한자로 유야납(維也納)이라고 쓰고 웨이예나(weiyena)라고 부르더군요. 독일어 비엔나(Vienna)를 음차한 이름입니다. 한자가 외래어 표기에 약하지만 중국인들은 주어진 언어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셈입니다.

 

 

한국어는 외래어 발음과 표기가 정확하고 손쉬운데도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프랑스를 불란서, 도이칠란트를 독일이라고 쓰고 말하는 관행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비엔나를 유야납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말이죠(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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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団一行延吉空港でバスに延吉市内かいました昼食のためでしたねあまりおいてはいませんでした2時間半飛行時間でしたが機内食があったからです

 

 

機内食はあまり印象的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包装紙にはビーフとかれていましたがステーキ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ブルゴギたメインメニューとサラダとロールパンがありデザートにさなケーキがっている曖昧国籍(^^)食事でしたしかしから釜山えたことをえるとありがたい一食ではありました

 

 

昼食いました一行中国日程案内する<延辺海峡国際旅行社>昼食冷麺をあらかじめ注文しておきました延吉(ヨンギル)では朝鮮族同胞しむ冷麺べ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をよくきましたが今日その宿題をしたわけです

 

 

ヨンギルでもこの食堂冷麺定評があったそうです2がる階段かい「(冷麺一度がらなかったらあなたの一度だけがればたちのかれていました冷麺のメニューに自信があるという意味ですこの昼食ちはれたのでいつかまたヨンギルにればこの食堂ちを免除してげ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です

 

 

冷麺前食(appetizer)糖水肉(=酢豚)てきましたヨンギル糖水肉しジメジメしていたのでサクサクした韓国式糖水肉とはいましたげたお一口大よりはきめでソースは韓国式よりかったです

 

 

ヨンギル酢豚かける=かけてべる)」つける=つけてべる)」両分法では分類しいですね酢豚とソースがられててきますがソースが酢豚にかかっているわけではなくかれていますそのため酢豚底面にすでにソースがついていてこれをそのままべてもいいですがよりくのソースをつけてべることも可能です

 

 

つまりヨンギル式酢豚かけるつける要素がすべてっているのでその中間形態ぶかあるいは最初からあえるというしい名前けてもいいでしょう

 

 

冷麺るとすべての関心酢豚から冷麺っていきましたビジュアルが素晴らしかったですきな真鍮製透明なスープがそこにのメミル・グクス(=そば)られていますがそのせられた野菜薬味がどれだけきれいかわかりません

 

 

そばの立派でしたがスープが抜群でしたすぎずっぱすぎずその2つの適切配合されたわいですさすがに一度だけべたらたちの宣伝するにします

 

 

ランチのキラキラしたハイライトは飯酒でした黃光石先生東北アジア平和連帯(=東平)企画室長としていていた時代同僚/友人たちが食堂ねてこられましたがにペ·ドンゴル先生大同江ビールを3ってこられましためから昼酒だなんて··· という一部きもなく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大同江ビールという言葉にすべての不満まりました

 

 

はペ·ドンゴル先生がテーブルごとに一本ずつせてくれたテンジャン=味噌酒)にもっと印象けました名前醬露(ジャンルーですからすと味噌露」。 味噌でどのようにおしたかかりませんがおそらく中国風白酒をもとに味噌要素加味したものだといます一杯飲んでみるとれない名前とはって感嘆ずとてきます

 

 

味噌酒42毒酒(spirit)なので2満足しました大同江ビールはたくなくて一杯めようとしたが·ドンゴル先生がしきりにいでくれたので··· それでもビールがたくさんっていたのでバスにせて食事のたびにべることにしました

 

 

昼食えてバスにりながら"最初からべて旅行だな"いました々で提供される山海珍味美酒佳肴覚悟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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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단 일행은 옌지 공항에서 버스에 올라 연길 시내로 향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서였지요. 별로 시장하지는 않았습니다. 2시간 반의 짧은 비행시간이었지만 기내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내식은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포장지에는 비프(beef)’라고 쓰여 있었지만, 스테이크는 아니었습니다. 불고기 덮밥과 비슷한 메인메뉴와 함께 샐러드와 롤빵이 있었고 디저트로 작은 케익이 들어 있는 애매한 국적(^^)의 식사였습니다. 하지만 새벽부터 부산을 떤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한 끼이기는 했습니다.

 

 

점심식사는 격이 달랐습니다. 일행의 중국 일정을 안내하는 <연변해협국제여행사(延边海峡国际旅行社)>는 점심식사로 냉면을 미리 주문해 놓았습니다. 연길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이 즐기는 냉면을 먹어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오늘 그 숙제를 한 셈이지요.

 

 

연길에서도 이 식당의 냉면은 정평이 났다고 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맞은 편 벽면에 “(우리 집 냉면을) 한 번도 안 드시면 당신의 잘못, 한번만 드시면 우리의 잘못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냉면 메뉴에 자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날 점심식사로 내 잘못은 면했으니, 언젠가 다시 연길에 오면 이 식당의 잘못을 면제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전식(appetizer)로 탕수육이 나왔습니다. 연길식 탕수육은 약간 눅눅했기 때문에 바삭바삭한 한국식 탕수육과 조금 달랐습니다. 튀긴 고기가 한입 크기보다는 조금 큰 편이었고, 소스는 한국식보다 색깔이 연했습니다.

 

 

연길 탕수육은 부먹(=부어먹기)’찍먹(=찍어먹기)’의 양분법으로는 분류하기 어렵더군요. 탕수육과 소스가 같은 접시에 담겨 나오기는 하지만 소스가 탕수육 위에 부어져 있지는 않고,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따라서 탕수육의 밑면에 이미 소스가 묻어 있었고, 이를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더 많은 소스를 찍어먹는 것도 가능합니다.

 

 

, 연길식 탕수육은 부먹찍먹의 요소가 모두 갖춰져 있으므로, 그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겠고, 혹은 아예 묻먹(=묻혀먹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도 되겠습니다.

 

 

냉면이 나오자 관심이 온통 그리고 옮겨갔습니다. 비주얼이 훌륭하더군요. 커다란 놋대접에 말간 냉면국물이 보이고, 거기에 진한 색깔의 냉면사리가 잠겨 있는데, 그 위에 올려진 울긋불긋 채소와 고기 고명이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냉면국수가 검은 색인 것을 보니까 메밀국수인 것 같은데, 면발도 나름 쫄깃하게 훌륭했지만 국물이 탁월하더군요. 지나치게 달지도, 지나치게 새콤하지도 않으면서 그 두 가지 맛이 적절하게 배합된 국물맛입니다. 과연 한번만 드시면 우리 잘못이라고 홍보할 만하더군요.

 

 

점심의 반짝 하이라이트는 반주였습니다. 황광석 선생이 동북아평화연대(=동평)의 사무국장으로 일하셨던 시절의 동료/친구들이 식당으로 찾아오셨는데, 특히 배동걸 선생은 대동강 맥주를 세 박스나 가지고 오셨습니다. 여행 초반부터 낮술이라니... 하는 일부의 탄식도 없지 않았으나, 대동강 맥주라는 말에 모든 불만은 사그러들었습니다.

 

 

저는 배동걸 선생께서 테이블마다 한 병씩 올려주신 된장술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름이 장로(醬露)니까, 번역하면 된장이슬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지앙루입니다. 된장으로 어떻게 술을 빚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중국식 백주(白酒, 바이주)를 바탕으로 된장의 요소를 가미한 것 같습니다. 한 잔을 마셔보니 생소한 이름과는 달리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된장술은 42도의 독주(spirit)이므로 술을 못하는 제가 많이 마실 수는 없었고, 두 잔으로 만족했습니다. 대동강 맥주는 차갑지 않아서 한 잔에 그치려 했으나, 배동걸 선생님이 자꾸 따라 주시는 바람에... 그래도 대동강 맥주가 많이 남았기 때문에 버스에 실었고, 식사때마다 마시기로 했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면서 처음부터 먹고 마시는 여행이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제공될 산해진미와 미주가효를 각오해야 할 듯합니다. (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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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から延吉までは飛行機2時間半です95出発しましたが延吉朝陽川空港りたら1135です

 

 

前席エアショー(Air Show)のスクリーンをると仁川から延吉まで直線距離800キロですから1時間半距離ですそれでも2時間半かかるのは韓国飛行機北韓領空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仁川空港出発した飛行機西んで黄海遼東半島大連南東側右折して北東側がります北韓領空通過すれば1時間半十分飛行距離1400キロにえます航空油はともかく時間損害きいです乗客500なら500時間無駄になるわけです分断費用というのはこういうものなんでしょうね

 

사진제공: 전재운 작가

 

中国旅行2回目2009学術会議北京訪問して以来初めてです東北3省地域訪問めてで吉林省延辺朝鮮族自治州中心都市延吉訪問するのもめてです

 

北京訪問名前のせいで混乱しました韓国人北京をブクゲンとびますがそうえばれるのは韓国人だけです韓国式漢字発音だからです15世紀世宗はその発音ろうとハングルまで創製しましたが21世紀にはそうしてはいけないことです中国たちがページングとぶならたちもそうぶべきでしょう

 

 

しかし延辺延吉という名前事情がもう複雑です延吉橋陽川国際空港到着すると庁舎前面のてっぺんにきな漢字延吉(イェンジかれていてそのすぐそばにはきさのハングルでヨンギルえてあります

 

つまりこの地域名前"イェンジ"あるいは"ヨンギル"という意味です延辺朝鮮族自治州住民半分以上朝鮮族そのため中国政府朝鮮語中国公用語としてめたからですこの地域では中国大学入学試験朝鮮語う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です

 

 

はその制度廃止され朝鮮族学生たちも中国語大学試験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なんですねこのような傾向けば一定時間ぎたにはヨンギル(연길)という名前イェ(延吉)だけがることになるかもしれないことです

 

イェンジ(延吉)ヨンギル(연길)両方ともこの都市名前になったのはくは朝鮮後期日本統治時代朝鮮人移住のためでありくは古朝鮮高句麗時代以来ここが韓民族領土だったからでしょうそういえばバイカル起源つという韓民族歴史この5千年大陸領土韓半島傾向せているとえるでしょう

 

 

延吉空港えに旅行会社案内員金仙女(キム·ソンニョ)さんについて庁舎けていくとラッキーリア(럭키리아)というファーストフードのレストランとエンジェリス(엔젤리스というコーヒーショップがんできます看板形式文字のフォントが韓国ロッテリア(롯데리아)エンジェリナス(엔제리니스)とそっくりですおそらく韓国のお名前じようにってきてられたおであり名前だといます

 

 

韓国風えばラッキーリアとエンジェリスはロッテリアとエンジェリナスの偽物だとえるのですがそのハンバーガーやコーヒーをわっていない以上ただの偽物というわけにはいかないかもしれませんただ朝鮮族同胞社会から韓国社会慣行輸入する傾向がありそれをそのままむよりは変形えて法的問題けようとする意図推察されることはありますつまり韓国社会延辺朝鮮族社会偽物関係でつながっているわけですよね

 

 

とにかく、「ヨンギルという名前通用することそしてラッキーリアというハンバーガーエンジェリスというコーヒー延吉玄関口である国際空港商店ということは中国韓国そして朝鮮族同胞韓国同胞関係交流歴史がかなり複雑っていることを推察させてくれます(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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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옌지(延吉)까지는 비행기로 두 시간 반입니다. 아침 95분에 출발했는데 옌지차오양촨(延吉朝阳川) 공항에 내리니까 1135분입니다.

 

 

좌석 스크린의 에어쇼(Air Show)" 지도를 보면 직선거리로 두 시간이나 걸릴 거리는 아닙니다. 인천에서 옌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800킬로미터쯤 되니까 1시간 반이면 도착할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2시간 반이 걸리는 것은 북한 영공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서쪽으로 날아 황해로 나왔다가 랴오뚱 반도의 다롄 남동쪽에서 날카롭게 우회전해서 북동쪽으로 올라갑니다. 북한 영공을 통과하면 1시간 반이면 충분한 비행거리가 14백킬로미터로 늘어납니다. 항공유는 둘째 치고라도 시간 손해가 큽니다. 승객이 5백 명이라면 5백 시간이 낭비되는 셈입니다. 분단 비용이라는 게 이런 것이겠지요.

 

사진제공: 전재운 작가

 

저는 중국 여행이 두 번째로 2009년 학술회의로 베이징을 방문한 이래 처음입니다. 동북3성 지역의 방문도 처음이고, 지린(吉林)성의 옌벤(延邊)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 옌지(延吉)를 방문하는 것도 처음입니다.

 

베이징 방문 때 이름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북경(北京)이라고 부르곤 했지만, 그렇게 발음하면 알아듣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밖에 없죠. 이른바 한국식 한자발음이기 때문입니다. 15세기의 세종은 그 발음을 지키려고 한글까지 창제했지만, 21세기에는 그러면 안 될 일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뻬이징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그렇게 불러줘야겠지요.

 

 

그러나 옌벤과 옌지라는 이름은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합니다. 옌지차우양촨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청사 전면 꼭대기에 커다란 붉은 한자로 옌지(延吉)”라고 쓰여 있고, 그 바로 옆에는 같은 크기의 한글로 연길이라고 덧붙여져 있습니다.

 

즉 이 지역 이름은 옌지라고 해도 되고 연길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옌벤조선족자치주 주민의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고, 따라서 중국 정부가 조선어를 중국의 공용어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중국대학 입학시험을 조선어로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제도가 폐지되었고, 조선족 학생들도 중국어로 대학시험을 치러야 한다는군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연길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옌지만 남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옌지와 연길이 둘 다 이 도시의 이름이 된 사실은, 가깝게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이주 때문이겠고, 멀리는 고조선과 고구려 시기 이래 이곳이 한민족의 영토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바이칼호에서 연원했다는 한민족의 역사는 지난 5천년 동안 대륙의 영토를 잃어버리고 한반도로 쪼그라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연길 공항에 마중 나오신 여행사 안내원 김선녀씨를 따라 청사를 빠져 나오는데 입구에 <럭키리아>라는 패스트푸드 식당과 <엔젤리스>라는 커피숍이 눈에 들어옵니다. 간판의 형식과 색깔, 폰트가 한국의 <롯데리아><엔젤리너스>와 꼭 같습니다. 아마도 한국 상점들의 이름을 비슷하게 가져와서 만들어진 가게이자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럭키리아와 엔젤리스는 롯데리아와 엔젤리너스의 짝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거기서 파는 햄버거나 커피를 맛보지 않은 이상 마냥 짝퉁이라고 볼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조선족 동포사회에서 한국 사회의 관행을 수입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변형을 주어서 법적인 문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짐작되기는 합니다. , 한국 사회와 연변 조선족 사회가 짝퉁 관계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지요.

 

 

암튼, ‘연길이라는 이름이 통용된다는 점, 그리고 럭키리아라는 햄버거 가게와 엔젤리스라는 커피가게의 이름이 연길의 관문인 국제공항의 상점이라는 점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조선족 동포와 한국 동포들 사이의 관계와 교류의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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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辺空港行きの飛行機9時出発ですが黃光石団長6までに空港到着するよう指示しました国際線2時間前空港到着するのが普通ですが団体旅行手続きに時間がかかる再分配する手荷物があるというおだったようです

 

 

空港鉄道では6までに到着することはできませんソウル始発列車520出発空港到着すると620なのにえてチェックインデスクまではおよそ10分以上歩か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ですかということで深夜リムジンにることにしました最後深夜バスは320空港到着4時半ですねしぶりの早朝空港です

 

 

はあちこちの空港でかなりかしたことがありますのことではありますがJFKLGAでもていてオヘアやCDGでも徹夜しました一番記憶るのはパリのオルリー空港ですメジャー空港到着したり出発する乗客のために一定地域いておいたりするんですがオルリーはそれほどきくもないのに待合室開放しておいたんですね

 

 

2回目カミノだったので20162だったといますがその高速電車わりに飛行機ることにしました仁川から出発してCDGビアリッツきの飛行機はオルリーから出発しました問題はこの飛行機早朝出発するので市内てその時間わせて空港自信が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でCDGからりるややオルリーにきました11時過ぎには空港閑散としていて出発飛行機はほとんどなくたまに到着する飛行機ばかりでした

 

 

くはなかったですがって空港人里離れたところにあるのでりながら見物することもありませんでしたいなことに待合室かくいリュックサックもいくつかいましたけの椅子くことができずかいの椅子距離があってをかけることはできませんでしたがいスーツケースをててせることができましたそんな姿勢なら椅子でもとてもよくれます

 

 

こじんまりとした空港構内雰囲気あちこち見回しながらコーヒーもんでいたところをりにめたのが師団でしたCDGからりてプラハの共同墓地というについたのでポケットのペーパーバックをったんです2010出版されたですがこれまでらなかったものですエコーのファンだといながらも···

 

 

そのオルリー空港待合室でそのんでいてれませんでした秘密警察やラビも登場文書偽造者以上名前···しかもタイトルにプラハが登場しますが物語くはパリで展開されるのでもなく臨場感じられました々とける本棚ってごそごそと搭乗する準備をしました

 

 

でもオルリー空港といえばそのします。 「プラハの共同墓地るとオルリー空港かびます

 

しぶりに空港にとてもきました1にはけるのを乗客たちが椅子って充電をしていたり最初から椅子になっていです仁川空港はとても親切です椅子になれるようにしてくれますから

 

 

出発する3があまりいないしはるかに活発ですねもうチェックインできるようになっていますセルフチェックイン機器のおかげですちょっとってみることにしたが修学旅行くのか学生たちが数百人集まってくるのをた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ってもなくがってくチェックインしましたんでつのが苦手なんです

 

 

あとは一行つだけなのですがもうかっていますってきた<最後陪審員>です今回訪問団員朴仁浩先生陪審制積極擁護論者です陪審制韓国司法正義実現するいきっかけになるとじているです

 

 

ジョン·グリシャムの司法正義ではありませんが今日早朝空港連想させるもう一冊になってくれ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がしますね(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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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9시 출발인데 황광석 단장님께서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국제선은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단체여행의 수속에 시간이 더 걸리는데다가, 재분배할 수하물이 있다는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공항철도로는 6시까지 도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서울역 첫 기차가 520분에 출발하고, 공항에 도착하면 620분인데다가 체크인 데스크까지는 대략 10분 이상 걸어야 하잖습니까? 그래서 심야 리무진을 타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심야버스는 320, 공항 도착은 4시반이네요. 오랜만의 새벽공항입니다.

 

 

저는 이곳저곳의 공항에서 밤을 샌 적이 꽤 됩니다. 젊을 때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JFKLGA에서도 잤고, 오헤어와 CDG에서도 밤샘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파리의 오를리 공항입니다. 메이저 공항들은 늦게 도착하거나 일찍 출발하는 승객을 위해 일정한 지역을 열어놓곤 하는데, 오를리는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도 대합실을 개방해 놓았더군요.

 

 

제가 두 번째 카미노를 갈 때였으니까 20162월이었겠는데, 그때는 기차 대신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해서 CDG에서 밤에 내렸고, 비아리츠 가는 비행기는 오를리에서 출발하더군요. 문제는 이 비행기가 이른 아침에 출발하기 때문에 시내에서 자고 그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CDG에서 내리자마자 오를리로 갔죠. 11시가 넘으니까 공항은 한산했고, 출발 비행기는 거의 없고, 간간히 도착하는 비행기만 있었습니다.

 

 

춥지는 않았지만 눈도 내리고 공항이 외진데 있기 때문에 밖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할 것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대합실이 따뜻했고, 다른 젊은 배낭족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붙박이 의자는 움직일 수 없었고, 맞은편 의자와 거리가 있어서 발을 걸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여행가방을 세워놓고 발을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세라면 저는 의자에서도 아주 잘 잡니다.

 

 

아담한 공항 구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커피도 뽑아먹고 하다가 잠이 달아났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사단이었습니다. CDG에서 내려서 <프라하의 공동묘지>라는 책이 눈에 띄길래 포켓판 페이퍼백을 샀거든요. 2010년에 출판된 책인데, 그동안 제가 몰랐던 것이지요. 에코의 팬이라고 하면서도....

 

 

그날 오를리 공항 대합실에서 그 책을 읽느라고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비밀경찰과 랍비도 등장하고 문서위조꾼이 두 개 이상의 이름으로.... 게다가 제목에 프라하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파리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괜히 현장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희뿌옇게 날이 밝아올 무렵 책장을 덮고 주섬주섬 탑승할 준비를 했습니다.

 

 

지금도 오를리 공항이라고 하면 그 책이 생각납니다. <프라하의 공동묘지>를 보면 오를리 공항이 생각나고요.

 

오랜만에 공항에 아주 일찍 도착했습니다. 1층에는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의자에 앉아서 충전을 하고 있거나, 아예 긴 의자에 누워서 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천 공항은 매우 친절합니다. 의자에 누울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출발하는 3층은 널부러진 사람들이 별로 없고, 훨씬 활발하네요. 벌써 체크인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셀프체크인 기기 덕분입니다.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가 수학여행을 가는지 학생들이 수백 명 몰려오는 것을 보고, 오래 기다려야 할까봐 괜히 겁을 집어먹고 빨리 체크인을 했습니다. 저는 줄서서 기다리는 걸 잘 못하거든요.

 

 

이제 일행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책을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 가져온 책은 <마지막 배심원>입니다. 이번 방문단원 중에서 박인호 선생이 배심제 적극 옹호론자입니다. 배심제가 한국에서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분입니다.

 

 

존 그리샴의 책은 사법 정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늘 새벽공항이 연상시켜 주는 또 한권의 책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jc, 202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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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外同胞民族学校交流したり協力したりするには現地訪問必須だといますごとに々がきていく姿うし制度文化うからですっている固定観念在外同胞状況必要判断したり決定することはきなりだからです

 

それでもたちはそのような明白間違いをよくします在外同胞たちの生活様式思考方式韓国同胞たちとじだろうと仮定する習慣のためです在外同胞韓国人/朝鮮人/高麗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っているのは事実ですが生活日本米國中国ロシアなどとうとしたらそ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内容表現仕方ってくるからです

 

 

そのため沿海州訪問団準備しながらも慎重準備必要でしたいなことに<舞踊靴>には沿海州訪問された々がウスリスクの同胞々と協力して仕事をされた々もいらっしゃいますおかげさまで今回訪問団事前準備をうまく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黃光石(ファン·グァンソク)先生団長しい仕事けてくれたのは本当にありがたいことです黃光石先生希望来日/大陸学校常任理事としていてこられたので中国とロシアの同胞状況しい沿海州訪問経験いので今回訪問団団長としては最適任者であることはらかです

 

 

沿海州訪問団めて考慮されたのは3回沿海州キャンペーンが終了した2月初めでした<舞踊靴>一年事業決定5日本西宮訪問7沿海州訪問提案されましたしかし黃光石先生はウスリスクの訪問時期5一番良いと提案されたので日本訪問7延期<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訪問めることになったのです

 

 

黃光石先生一緒朴美賢(パク·ミヒョン)李高恩(·ゴウン)先生準備団合流してくださいました朴美賢先生富川地域市民運動指導的役割ってこられ李高恩先生3次沿海州キャンペーンを成功裏いたので訪問準備団のリーダーシップは最上のものになったといます

 

 

実際3訪問団準備初期からいチームワークをせてさり訪問団募集日程準備などの重要事項だけでなく航空便とホテル予約のようにややこしい作業までよく推進してこられました必要場合現地旅行社けをけながらただしくなく内実のあるプログラムをりました

 

ホテルや船上客室てにも細心注意中国やロシアで使充電器タイプや船上旅行必要までえてくれるなど些細なことにえるがややもすると不便まで丁寧管理してくれました

 

 

今回訪問準備参加してくださったウスリスクのバレリア先生苦労かせませんただしい学校授業日程にもかかわらず韓国準備団随時協議してくださり日程調整したりプログラムを添削してくださったときました3にわたる沿海州キャンペーンのはキムヴァレリア先生とカカオトークのメールでよくおしゃべりしながら一緒仕事をしてきましたが直接いするのは今回めてなのでとてもしみです

 

 

もう一人準備苦労してくださったイ·ファンフィ先生がいらっしゃいます北東アジア平和連帯によくおいしていたですが今回訪問団合流してくださっただけでなく中国日程調整しながら中国旅行会社との連絡業務けてくださったと理解していますそれでウスリスクとウラジオストクのロシア日程だけでなくヨンギルでの中国日程がスムーズにつながることができたといます

 

 

明日から韓国中国とロシアで5々にまた一緒準備していただいた日程によって訪問むにつれてこの々がけてくださった手間がいかに大変なものだったかをじることになるといます

 

準備するのに苦労してくださった々にあらかじめ感謝いたします(jc, 202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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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민족학교와 교류하거나 협력할 때에는 현지 방문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고, 제도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으로 재외동포의 상황이나 필요를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명백한 실수를 자주 저지릅니다. 재외동포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한국동포들과 같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습관 때문입니다. 재외동포 분들이 한국인/조선인/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신 것은 사실이지만, 생활의 장이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으로 다르다면, 그 정체성의 내용이나 표현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연해주 방문단을 준비하면서도 조심스럽고 면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무용신>에는 연해주를 방문하신 분들이 많으시고, 더구나 우수리스크의 재러동포분들과 협력해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덕분에 이번 방문단은 사전에 면밀한 준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황광석 선생께서 단장의 어려운 일을 맡아주신 것은 진짜 고마운 일입니다. 황광석 선생은 <희망래일/대륙학교>에서 상임이사로 오래 일해 오셨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 상황을 잘 아시는데다가, 연해주 방문 경험이 많으시기 때문에, 이번 방문단의 단장으로는 최적임자이심에 분명합니다.

 

 

연해주 방문단이 처음 고려된 것은 제3차 연해주 캠페인이 마무리된 2월초였습니다. <무용신>의 한 해 사업을 결정하면서 5월의 일본 니시노미야 방문과 7월의 연해주 방문이 제안되었습니다. 그러나 황광석 선생은 우수리스크 방문 시기는 5월이 가장 좋다고 제안하셨기 때문에, 일본 방문을 7월로 미루고,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 방문을 먼저 진행하게 된 것이지요.

 

 

황광석 선생과 함께 박미현, 이고은 선생께서 준비단에 합류해 주셨습니다. 박미현 선생은 부천 지역 시민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담당해 오셨고, 이고은 선생은 제3차 연해주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끄셨기 때문에, 방문 준비단의 리더십은 최상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세 분은 방문단 준비 초기부터 좋은 팀웍을 보여주셨고, 방문단 모집과 일정 마련 등의 중요사항뿐 아니라, 항공편과 선편, 호텔 예약과 같이 까다로운 작업까지 잘 추진해 오셨습니다. 필요한 경우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분주하지 않으면서도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셨습니다.

 

호텔과 선상 객실을 배정하시는 데에도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셨고, 중국과 러시아에서 사용할 충전기 타입과 선상 여행 때에 필요한 준비물까지도 알려주시는 등 사소해 보이지만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점들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시더군요.

 

 

이번 방문 준비에 참여해 주신 분으로 우수리스크의 김발레리아 선생님의 수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분주한 학교 수업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준비단과 수시로 협의래 주셨고, 일정을 조정하거나 프로그램을 첨삭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3차에 걸친 연해주 캠페인 동안 저는 김발레리아 선생님과 카톡 문자로 자주 말씀을 나누면서 함께 일해 왔지만, 직접 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자못 기대가 됩니다.

 

 

또 한 분 준비에 수고해 주신 이황휘 선생이 계십니다. 동북아평화연대 모임 때에 자주 뵙던 분인데, 이번 방문단에 합류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중국 일정을 조정하면서, 중국의 여행사와의 연락업무를 맡아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의 러시아 일정뿐 아니라 연길에서의 중국 일정이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내일부터 황광석, 박미현, 이고은 선생께서 한국에서, 김발레리아 선생께서 연해주에서, 이황휘 선생이 중국에서 따로 또 같이 준비해 하신 일정에 따라 45일의 방문 일정이 시작됩니다. 방문이 진행됨에 따라 이 분들이 기울여 주신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에 수고해 주신 분들에게 미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jc, 202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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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舞踊靴>沿海州<崔在亨(チェ·ジェヒョン)高麗人民族学校>訪問します明日(5/14)から45日程ですウラジオストクまでの航空便正常化していないため出国中国延吉経由して長距離バス便でウスリスクに到着帰国はウラジオストクからって江原道東海港ることになります

 

 

今回訪問目的<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との交流協力方案模索することですこの学校韓国語韓国芸術えるロシア唯一公認学校ですが最近国際国内しい情勢のためにくの困難直面しています<舞踊靴>今回訪問契機<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安定ロシア同胞教育機関発展していくことをいながらたちにできることがかをしてみようといます

 

 

<舞踊靴><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最初20223にさかのぼります当時<舞踊靴>在日ウリ學校舞踊部学生たちに舞踊靴後援していてこの便りをいた(キムバレリア先生沿海州民族学校にも舞踊衣装必要だとらせてくださいました金先生<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校長先生であり同時付設<アリラン歌舞団>団長です

 

 

後援要請けた<舞踊靴>日本市民団体<チームアイ>協力して舞踊衣装沿海州ることができました韓国同胞たちは425から3週間333ウォンを募金これを舞踊衣装16製作費発送費として使うことができました

 

 

この募金には個人後援者97(日本13韓国84)韓国日本10市民団体参加してくださいました当時作成して発表した後援者名簿るとソウルと京畿地域はもちろん江陵羅州釜山大邱など全国各地から後援金ってくれたことがかります

 

 

日本<チームアイ>会員たちは舞踊衣装製作担当される一方兵庫県大阪府東京都広島県などの在日同胞たちが40中古舞踊衣装とその他舞踊公演必要小道具装飾品収集してくださいました

 

このように用意された舞踊衣装小道具620日大阪出発623日江原道東海市629キルキーズスタンビシュケクを経由して710ウスリスクの<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到着910<アリラン歌舞団>秋夕公演使われました

 

 

昨年(2023)52次沿海州キャンペーンは児童用韓服約160寄贈してくださった坡州のナ·ミョンフム先生のおかげで突然行われましたキム·テヨプ先生仲介坡州のナ·ミョンフム先生直接訪問この韓服東海-ウラジオストックを経由してウスリスクで発送することができ必要になった50ウォンの発送費用朴仁浩先生特別後援てられました

 

3キャンペーンは昨年(2023)12から今年1まで2にわたってわれた<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後援キャンペーンでしたこのキャンペーンは廃校危機まれた民族学校危機状況打開するためにわれたもので李高恩先生2にわたって主導した2連続募金(直接募金+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じて1300ウォンを支援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これで<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今後約1年間建物賃貸料教師月給支給できるようになり安定発展のための中長期計画準備必要時間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舞踊靴><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はそれほどではないですが今後韓国同胞在日同胞たちが協力しながら在露同胞たちの民族教育実質的持続的後援げ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ことをっています

 

 

したがって今回訪問団<崔在亨高麗人民族学校>直接訪問してみて生徒たちと教師々にって慰労激励げる一方安定発展のための学校側計画により韓国同胞たちがどのようにけることができるのかを調べることになります(jc, 202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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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신>이 연해주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를 방문합니다. 내일(5/14)부터 45일의 일정입니다. 블라디보스톡까지의 항공편이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국할 때는 중국 연길을 경유해서 장거리 버스 편으로 우수리스크에 도착하고, 귀국할 때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강원도 동해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와의 교류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는 한국어와 한국예술을 가르치는 러시아 유일의 공인 학교이지만, 최근의 국제, 국내의 어려운 정세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용신>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가 안정을 찾고, 재러교포의 교육기관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무용신><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첫 인연은 2022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무용신>은 재일 우리학교 무용부 학생들에게 무용신을 후원하고 있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으신 김발레리아 교장 선생님께서 연해주의 민족학교에도 무용의상이 필요하다고 알려 오셨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님은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시면서, 동시에 부설 <아리랑 가무단>의 단장이십니다.

 

 

후원 요청을 받은 <무용신>은 일본의 시민단체 <팀아이>와 협력해 요청하신 무용 의상을 연해주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 동포들은 425일부터 약 3주일 동안 333만원을 모금했고, 이를 무용의상(16)의 제작비와 발송비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금에는 개인 후원자 97(일본의 13, 한국의 84)과 한국과 일본의 10개 시민단체가 참여해 주셨습니다. 당시 작성해 발표한 후원자 명단을 보면, 서울과 경기지역은 물론 강릉과 나주, 부산과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후원금을 보내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일본 <팀아이> 회원들께서는 무용의상의 제작을 담당하시는 한편, 효고현과 오사카부, 도쿄도와 히로시마현 등지의 재일동포들께서 약 40여벌의 중고 무용의상과 기타 무용공연에 필요한 소도구와 장식품도 수집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무용의상과 소품들은 620일 오사카를 출발, 623일 강원도 동해시, 629일 키르키즈스탄 비슈케크를 경유해서, 710일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에 도착되었고, 910일의 <아리랑 가무단> 추석 공연에 사용됐습니다.

 

 

작년(2023) 5월의 제2차 연해주 캠페인은 아동용 한복 약 160벌을 기증해 주신 파주의 나명흠 선생 덕분에 갑작스럽게 이뤄졌습니다. 김태엽 선생의 주선으로 파주의 나명흠 선생님을 직접 방문해 이 한복을 동해-블라디보스톡을 경유해 우수리스크로 발송할 수 있었고, 갑자기 필요해진 약 50만원의 발송 비용은 박인호 선생의 특별 후원으로 충당되었습니다.

 

3차 캠페인은 작년(2023)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2달에 걸쳐 이뤄진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 후원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폐교 위기에 몰린 민족학교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이고은 선생께서 2달에 걸쳐 주도하신 2차례의 연속 모금(직접모금+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두 13백만원(크라우드펀딩 수수료와 송금 수수료 제외)을 지원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는 향후 약 1년 동안 건물 임대료와 교사 월급을 지급할 수 있게 되었고, 안정과 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 마련에 필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무용신><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인연은 그리 긴 편은 아닙니다만, 앞으로도 한국동포와 재일동포들이 협력하면서 재러동포들의 민족 교육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후원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방문단은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를 직접 찾아보고, 학생들과 교사분들을 만나 위로와 격려를 드리는 한편, 안정과 발전을 위한 학교 측의 계획에 따라 한국 동포들이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지 알아보게 됩니다. (jc, 202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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