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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予定されていた<舞踊靴>日本兵庫県西宮訪問わりました訪問団参加された15から714日夜帰国され615217帰国したことで全員無事ってこられました事故もなく訪問わったのが本当にありがたいことです

 

 

今回訪問昨年(2023)2<舞踊靴>2回目訪問です今回訪問第一目標西宮コッキリの京都ララン舞踊教室在日朝鮮人学生たちに舞踊靴風物衣装えることです

 

 

そのために<舞踊靴>8キャンペーンがわれ一般募金(450ウォン)と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150ウォン)成功学生たちに約束したプレゼントをすことができました

 

 

去年玉瀬滿福寺<風流会>国楽演奏慰霊感謝音楽会きましたが今年家族風物牌<ドンドン>四人(林寅出趙元子林東明林東權)光陽のバックノリの大家楊享鎭先生西宮公民館風物公演主導されました

 

 

現地では公演のタイトルを日韓風物交流会in西宮名付けましたおそらく今後大阪神戸尼崎宝塚伊丹などではもちろん東京九州でもこのような風物交流会かれることをっていたようです

 

 

実際西宮公演直後尼崎伊丹ドンドン家族風物公演いてもらえるかという要請ってきました日程予算されればいくらでもじます風物じて韓國同胞在日朝鮮人/韓國人同胞日本人活動家交流できる機会だからです

 

 

西宮公民館での公演2つの意味深いものでした<ドンドン>楊享鎭先生公演卓越していたことです在日韓国人/朝鮮人もたまに風物練習して公演もしますが今回<ドンドン>公演観客次元風物経験えたようです感動感嘆表現してくださったかったです

 

 

第二今回公演西宮市西宮市教育委員会公式後援けたということですこの公演はもともと自治体後援なしに市民団体公演として組織されめましたが企画進展現地活動家たちが市政府市教育委員会後援要請されたそうです

 

 

手続きが面倒だったといますがこの々が苦労してくださったおかげで教育委員会後援おかげでこの行事公式的公演になりました今後風物公演日本自治体公式後援けられる先例してくださったのでこの措置重要なものだったといます

 

 

今回訪問には西宮公民館風物公演以外にもつの重要日程まれました(1) 713訪問団切畑宝塚朝鮮人追悼碑玉瀬朝鮮人参拝墓滿福寺茶会いましたそして、(2714西宮甲陽園地下壕探訪しました

 

 

20203建立された宝塚朝鮮人追悼碑110年前にこの地域水道工事鉄道工事中くなった5朝鮮人労働者える追悼碑です

 

 

犠牲者のために祭祀ってきた玉瀬村住民滿福寺僧侶たちに感謝する意味<舞踊靴>昨年からここを音楽会いています

 

 

今年参拝墓<ドンドン>楊享鎭先生慰霊のビナリと慰霊のバックノリを実演されましたがとても印象的風物公演でした地元はもちろん滿福寺のおさんも印象感動けたそうです

 

714甲陽園地下壕探訪意味ある日程でした日本人活動家原田先生在日朝鮮人具実先生案内1945年頃着工され中断された7つのトンネルを探訪しましたこのトンネルの労働力朝鮮人労働者動員されましたが4トンネルでは解放、「朝鮮国独立という壁書まれたものが発見された場所でもあります

 

 

週末利用した34期間にこのような主要行事日程消化することは容易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しかし訪問団公演団、「面白さもあるが意味深今回訪問熱心参加おかげで現地でも反応自評しています(jc, 202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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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일로 예정되었던 <무용신>의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방문이 끝났습니다. 방문단에 참여하신 15분 중에서, 7분이 14일 밤 귀국하셨고, 6분이 15, 2분이 17일에 귀국함으로써 전원이 무사히 돌아오셨습니다. 아무 사고 없이 방문이 마무리된 것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이번 방문은 작년(2023) 2월에 이은 <무용신>2차 방문입니다. 이번 방문의 첫 번째 목표는 니시노미야의 <코끼리회>와 교토의 <라랑무용교실>의 동포 학생들에게 무용신과 풍물의상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무용신> 8차 캠페인이 진행됐고, 일반모금(450만원)과 크라우드 펀딩(150만원)이 모두 성공하여, 학생들에게 약속한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타마세의 만푸쿠지에서 <풍류회>의 국악 연주로 위령과 감사의 음악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가족풍물패 <동동>의 네 분(임인출, 조원자, 임동명, 임동권)과 광양 버꾸놀이의 대가 양향진 선생이 니시노미야 공민관에서 풍물공연을 주도하셨습니다.

 

 

현지에서는 공연 제목을 <한일풍물교류회 in 니시노미야(日韓風物交流會in西宮)>라고 붙이셨더군요. 아마도 향후, 오사카, 고베, 아마가사키, 다카라즈카, 이타미 등에서는 물론, 도쿄와 큐슈에서도 이런 풍물교류회가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하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니시노미야 공연 직후 아마가사키와 이타미에서 <동동> 가족풍물 공연을 열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일정과 예산이 허락되면, 얼마든지 응할 것입니다. 풍물을 통해 한국동포가 재일동포와 일본인 활동가와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니시노미야 공민관 공연은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첫째는 <동동>과 양향진 선생의 공연이 탁월했던 것입니다. 재일동포들도 더러더러 풍물을 연습하고 공연도 하지만, 이번 <동동> 공연은 관객들에게 높은 차원의 풍물 경험을 선사한 것 같았습니다. 감동과 감탄을 표현해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이번 공연이 니시노미야시와 시교육위원회의 공식 후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공연은 원래 지자체의 후원 없이 시민단체의 공연으로 조직되기 시작했지만, 기획이 진전되면서 현지 활동가들께서 시정부와 시교육위원회에 후원을 요청하셨다고 합니다.

 

 

절차가 번거로웠을 텐데 이분들이 수고해 주신 덕분에 시와 교육위원회가 후원을 결정했고, 덕분에 이 행사는 공식적인 공연이 되었습니다. 향후에도 풍물 공연이 일본 지자체의 공식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선례를 남기셨기 때문에, 이 조치는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방문에는 니시노미야 공민관의 풍물공연 말고도 두 개의 중요한 일정이 포함되었습니다. (1) 713일 방문단은 키리하타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 타마세의 조선인 참배묘를 방문했고, 만푸쿠지를 방문해 다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2) 714일 공민관 공연이 끝난 후에는 니시노미야 코요엔의 지하호를 탐방했습니다.

 

 

20203월에 건립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110년전 이 지역에서 수도공사와 철도공사 중에 사망하신 5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도비입니다.

 

 

희생자들을 위해 제사를 드려오신 타마세 마을 주민과 만푸쿠지의 스님들에게 감사드리는 뜻에서 <무용신>은 작년부터 이곳을 방문해 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는 참배묘 앞에서 <동동>과 양향진 선생이 위령의 비나리와 위령의 버꾸놀이를 시연하셨는데, 매우 인상적인 풍물공연이었습니다. 현지 주민들과 만푸쿠지의 스님께서도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내년에는 어떤 연주단을 모시고 갈 것인지 지금부터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714일의 코요엔 지하호 탐방도 의미있는 일정이었습니다. 일본인 활동가 하라다 코이치 선생과 재일동포 구실 선생의 안내로, 1945년에 착공되었다가 중단된 7개의 땅굴을 차례로 탐방했습니다. 이 땅굴 노역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는데, 특히 4호 땅굴에서는 해방을 맞아 조선국독립이라는 벽서가 새겨진 것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주말을 이용한 34일의 짧은 기간에 이같은 주요한 행사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방문단과 공연단은 재미도 있지만 의미가 깊은 이번 방문에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덕분에 현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jc, 202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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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教育闘争在日朝鮮人1948414から26まで兵庫県大阪府展開した朝鮮人学校廃止反対デモです連合軍最高司令部(GHQ)戦後唯一非常事態宣言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ほどしかった民族教育守護闘争でした

 

 

明治学院大学鄭栄桓チョン·ヨンファン教授資料によると民族教育守護闘争最初きたのは山口その後岡山兵庫大阪そして東京いたためこれを4.24教育闘争したりもします

 

しかし山口県教育闘争まったのは331在日朝鮮人民族教育守護闘争阪神地域死者まで発生するほど熾烈められたという阪神教育闘争という本来用語使うのもくないといます

 

 

日本占領連合軍司令部GHQ194710日本政府在日朝鮮人日本教育基本法学校教育法わせるようにという指示下達しましたこれに文部省1948124全国都道府県知事朝鮮人子供たちを日本学校転校させろという公文書発送324には拒否する朝鮮人学校閉鎖せよという公文書再度発送しました

 

神戸では 47朝鮮人学校閉鎖命令発令されましたが在日朝鮮人日本人活動家はこれに抵抗しました西神戸朝鮮人小学校では保護者校門いで抵抗424には兵庫県庁前結集して学校閉鎖命令撤回要求しました1時間半にわたる交渉じて兵庫県神戸市当局学校閉鎖命令撤回するという文書署名しましたしかしこの覚書米軍政によって無視されました

 

 

大阪では423府庁前大手前公園3万人余りが集結朝鮮人学校閉鎖反対する人民大会開催中武装警官鎮圧過程23重傷200人余りが検挙されました426にも人民大会かれ警察8千人鎮圧隊動員しましたこの警察発砲により学生金太一(キム·テイル)死亡しました

 

 

阪神地域朝鮮人学校閉鎖反対デモに100万人参加警察鎮圧による負傷者150人余死者1でした3千人余りが検挙されこのうち212起訴されました各級裁判所回付され実刑判決けた受刑者36りました

 

 

在日朝鮮人くの犠牲ってきましたが53朝鮮人教育対策委員会文部大臣教育基本法学校教育法という前提のもと、「私立学校自主性範囲内朝鮮人独自教育うことを前提私立学校としての認可申請するという覚書交換朝鮮人学校存続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阪神教育闘争勝利したのです

 

 

阪神教育闘争死者はもう一人いました朝鮮人連盟=朝連兵庫県委員長朴柱範パク·ジュボムさんです投獄され19491125病床悪化仮釈放されましたが4時間後死亡しました獄死したも同然だったのです

 

兵庫朝鮮関係研究会飛田雄一先生阪神教育闘争50周年えた199710大邱朴柱範さんの朴再禧(パク·ジェヒ)さんをねました阪神教育闘争50周年イベントに犠牲者家族招待するためでした

 

 

1885年生まれの朴柱範さんは1927日本神戸市東灘在住しました阪神消費組合設立参加して理事として活動解放後朝連阪神支部長となり1948には兵庫県委員長として阪神教育闘争いたのです

 

 

伯父遺骸故郷大邱った朴再禧さんは50ぎたが朴柱範さんの遺族ねてきたのは飛田雄一先生めてとおっしゃっていたそうですね阪神教育闘争成果広報されますがその犠牲者してえることはかだったのです残念なことだといます(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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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교육투쟁은 재일조선인이 1948414일부터 26일까지 효고현과 오사카부에서 전개한 조선인학교 폐지에 반대시위입니다. 연합군최고사령부가 전후에 유일하게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했을 만큼 치열했던 민족교육 수호투쟁이었습니다.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대학의 정영환(鄭栄桓)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민족교육 수호투쟁이 처음 일어난 곳은 야마구치(山口)였고, 이후 오카야마(岡山), 효고(兵庫)와 오사카(大阪), 그리고 도쿄(東京)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4.24교육투쟁으로 고쳐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마구치현의 교육투쟁이 시작된 것은 331일이었고,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수호투쟁이 한신지역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할 만큼 치열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신교육투쟁이라는 원래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점령의 연합군사령부(GHQ)194710월 일본정부에 재일조선인을 일본의 교육기본법, 학교교육법에 따르게 하라는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이에 문부성은 1948124일 전국 도도부현의 지사에게 조선인 자녀들을 일본 학교로 전학시키라는 공문을 발송했고, 324일에는 거부하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하라는 공문을 재차 발송했습니다.

 

고베(神戶)에서는 47일 조선인학교 폐쇄 명령이 발령되었는데,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활동가들은 여기에 저항했습니다. 니시고베(西神戶) 조선인소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몸으로 교문을 막고 항거했고, 424일에는 효고 현청 앞에 결집하여 학교폐쇄 명령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1시간 반에 걸친 교섭을 통해 효고현과 고베시 당국은 학교폐쇄 명령을 철회한다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각서는 미군정에 의해 무시되었습니다.

 

 

오사카에서는 423일 부청 앞의 오테마에(大手前) 공원에 3만여명이 집결해 조선인학교 폐쇄에 반대하는 인민대회를 개최하던 중, 무장경관의 진압과정에서 23명이 중상을 입었고 200여명이 검거되었습니다. 426일에도 인민대회가 열렸고, 경찰은 8천명의 진압대를 동원했습니다. 이날 경찰의 발포로 김태일(金太一) 학생이 사망했습니다.

 

 

한신지역의 조선인 학교 폐쇄 반대시위에 연인원 1백만명이 참가했고, 경찰의 진압으로 인한 부상자가 150여명, 사망자가 1명이었습니다. 3천여명이 검거되었고, 이중 212명이 기소되었습니다. 각급재판소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36명에 이르렀습니다.

 

 

재일조선인은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53일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와 문부대신 간에 교육기본법과 학교교육법을 따른다는 전제 아래, “사립학교의 자주성 범위 내에서 조선인의 독자적인 교육을 행하는 것을 전제로 사립학교로서의 인가를 신청한다는 각서를 교환, 조선인학교가 존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신교육투쟁이 승리한 것이지요.

 

 

한신교육투쟁의 사망자는 한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조선인연맹(=조련) 효고현 위원장 박주범(朴柱範)씨입니다. 그는 투옥되었다가 19491125일 병상악화로 가석방되었으나 4시간 만에 사망했습니다. 옥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지요.

 

효고조선관계연구회(兵庫朝鮮関係研究会)의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선생은 한신교육투쟁 50주년을 앞둔 199710월 대구를 방문, 박주범씨의 동생의 따님인 박재희(朴再禧)씨를 찾아갔습니다. 50주년 행사에 희생자 가족을 초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885년생인 박주범씨는 1927년 일본에 건너가 고베시 히가시나다에 거주했습니다. 그는 한신소비조합 설립에 참여해 이사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조련의 한신 지부장이 되었다가, 1948년에는 효고현 위원장으로서 한신교육투쟁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큰아버님의 유해를 고향 대구로 모신 박재희씨는 “50년이 지났지만 박주범씨의 유족을 찾아온 것은 히다 유이치 선생이 처음이라고 하셨다는군요. 한신교육투쟁의 성과는 대대적으로 홍보되지만, 그 희생자들을 찾아보고 기리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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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でもよくられている西宮有名歴史的事実甲陽園地域発掘された地下壕であるはずですここで発掘された7つのトンネルのうち4トンネルのから朝鮮国独立という壁書発見されたからです

 

 

太平洋戦争末期米軍空襲けるため日本軍部本土決戦のために全国にトンネルをりましたが西宮地下壕日本海軍戦闘機紫電改生産していた川西航空会社部品工場建設される予定でした

 

 

このトンネルをったのはほとんどが朝鮮人でした強制動員された朝鮮人労働者5-600最悪労働条件昼夜わず工事強行されましたが川西社がこの秘密工場飛行機部品生産める日本敗亡しました

 

 

このトンネルの存在終戦後られていましたが4トンネルから朝鮮国独立という壁書発見されたのは198711でした

 

 

これを発見した探査隊4構成されましたが探査隊長在日朝鮮人郷土史学者鄭鴻永先生その鄭志永その息子鄭世和友人である真銅敏之そのにも探査装備ぶために志願した在日朝鮮人青年一人同行したということです真銅敏之先生筆者当時状況をこのように証言しています

 

 

そのたち四人めて地下壕現場きました鄭鴻永先生終戦後公開された米軍戦略爆撃調査報告書調べていたところ西宮爆撃対象になったのはそこにあった川西航空機会社地下工場があったからだとかりましたその地下工場位置把握したくの々と探査隊構成されたのですね

 

最初鄭鴻永先生息子友人である鄭世和さんも一緒くことにしたが事情があって参加できず朝鮮人青年一人荷物んでくれるアルバイトとしてついてきましたそのカメラや電灯簡易発電機などをはじめ荷物がかなりかったんですよ

 

 

地下壕ったばかりでつにかれました片方天井がセメントでられた仕上げのもう片方はでこぼこした岩壁露出したれたでしたたちは2かれて探索しましたが鄭鴻永先生一緒れたりました

 

 

漆黒のように懐中電灯したのようなものをましたちに鄭鴻永先生らせるとしく調べて朝鮮人労働者たちの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たちはいで二人んでこのすごい発見らせみんな興奮してどうしていいかからなかったです興奮がおさまるとたちは自分っていったカメラのフラッシュとタイマーを使ってその文字背景4写真って記録しました

 

 

20001鄭鴻永先生他界された飛田雄一先生むくげ通信1782000130日付)』収録した弔辭鄭鴻永先生のように紹介しました

 

 

「(鄭鴻永先生兵庫朝鮮関係研究会中心的なメンバーのひとりだがなにより朝鮮国獨立文字西宮市甲陽園地下壕発見者としてられている西宮宝塚伊丹等在日朝鮮人歴史精力的研究されておりそのトンネル発見以前から米軍戦略爆撃調査報告書記述調べていてその地域たな宅地開発らせをいてかけつけたので発見す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ものである

 

 

甲陽園宅地開発されるとトンネルがすべてえることを憂慮して鄭鴻永先生いで調査断行したのですが意外にもこの地下壕壁書発見されたのです

 

この西宮光陽園地下壕壁書日本政府否認する朝鮮人労働者強制動員存在したことを立証する強力根拠として引用されています(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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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잘 알려진 니시노미야의 가장 유명한 역사적 사실은 코요엔(甲陽園) 지역에서 발굴된 지하호일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발굴된 7개의 땅굴 중에서 제4호 땅굴의 벽에서 조선국 독립이라는 벽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일제 군부는 본토 결전을 위해 전국에 땅굴을 팠는데, 니시노미야의 지하호는 일제 해군의 전투기 시덴카이(紫電改)를 조립하던 카와니시(川西)항공사의 부품생산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었습니다.

 

 

이 땅굴을 판 것은 대부분 조선인이었습니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5-6백명이 최악의 노동조건 속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가 강행됐지만, 카와니시사가 이 비밀공장에서 비행기 부품 생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은 패망했습니다.

 

 

이 땅굴의 존재는 종전 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4호 땅굴에서 조선국 독립(朝鮮國獨立)”푸른 봄()”이라는 벽서가 발견된 것은 198711월이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탐사대는 4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탐사대장은 재일조선인 향토사학자 정홍영(鄭鴻永) 선생이었고, 그의 동생 정지영(鄭志永), 그의 아들 정세화의 친구인 신도 도시유키(真銅敏之), 그밖에도 탐사 장비를 운반하기 위해 자원한 재일조선인 청년 한명이 동행했다고 합니다. 신도 도시유키 선생은 필자에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신 바 있습니다.

 

 

그날, 우리 네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지하호 현장으로 갔습니다. 정홍영 선생님은 종전 후에 공개된 미군 전략폭격 조사보고서를 조사하던 중, 니시노미야가 폭격의 대상이 된 것은 거기에 있던 카와니시 항공기회사의 지하 공장이 있었기 때문임을 아셨습니다. 그 지하공장의 위치를 파악하신 후에 가까운 분들과 탐색대를 꾸리신 것이지요.

 

처음에는 정홍영 선생의 아들이자 내 친구인 정세화씨도 같이 가기로 했으나 뭔가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고, 조선인 청년 한명이 짐을 운반해 줄 아르바이트로 따라 나섰습니다. 그날 카메라와 전등, 간이 발전기 등을 비롯해서 운반할 짐이 꽤 많았거든요.

 

 

지하호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갈래 길이 나왔어요. 한쪽은 천장과 벽이 시멘트로 발라진 다듬어진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울퉁불퉁한 암벽이 드러난 거친 길이었지요. 우리는 두 패로 나뉘어 탐색에 나섰는데, 나는 정홍영 선생과 함께 거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칠흑 같이 깜깜한 굴속에서 손전등으로 벽을 훑어보았을 때 나는 무언가 글씨 같은 것을 본 것 같았어요. 즉시 정홍영 선생님께 알리자 자세히 살펴보시고 조선인 노동자들의 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급히 다른 두 사람을 불러서 이 대단한 발견을 알렸고, 다들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우리는 내가 가져간 카메라의 플래시와 타이머를 이용해서 그 글씨를 배경으로 4명의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01월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셨을 때,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선생은 <무쿠게통신(178, 2000130일자)>에 수록한 조사에서 정홍영 선생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효고 조선관계 연구회의 중심 멤버 중 한 명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선국 독립>이라는 문자가 남아있는 니시노미야시 코요엔의 지하벙커의 발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정선생은 니시노미야, 다카라즈카, 이타미 등의 재일 조선인 역사를 정력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터널을 발견한 것도 이전부터 미군 전략폭격 조사보고서를 조사하다가 그 지역의 새로운 택지개발 소식을 듣고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요엔에 택지가 개발되면 땅굴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을 우려해 정홍영 선생이 급히 조사를 단행하셨던 것인데, 뜻밖에도 이때 지하호의 벽서가 발견되었던 것이지요.

 

이 니시노미야 코요엔의 지하호 벽서는 일본 정부가 부인하는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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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舞踊靴>訪問する西宮について紹介しながら阪神間モダニズムとダンスホール文化について調べてみたしこのような社会文化的雰囲気から日本新舞踊崔承喜朝鮮舞踊出発したという調べてみたことがあります

 

 

さて西宮歴史ますと在日朝鮮人にまつわる3つの事件がさらにあります阪神消費組合1931甲陽園地下壕壁書1945年頃)、そして阪神教育闘争1948がそれですたちがれる地域朝鮮人関連歴史理解したがいいということでこの3つの事件簡単にご紹介しておきたいといます

 

 

堀内稔先生論文阪神消費組合について(1980)によると1931320発足した阪神消費組合植民地時代在日朝鮮人結成した共同購買組合です結成されたのは尼崎築地本部もそこにきましたが西宮鳴尾芦屋青木などに支部西宮支部活動活発だったといわれています

 

消費組合あるいは購買組合とは今日韓国生活協同組合ています生活必需品生産者購買者たちを直接連結して中間流通過程省略することで生産者には販路安定させ消費者には安値購買できるようにするわせだったのです

 

 

西宮尼崎宝塚などの阪神間地域には数千人在日朝鮮人居住していてらの衣食住日本人主流社会のそれとなるものがかったですそのため味噌醤油明太(=スケトウダラ)唐辛子などの食料品やゴム朝鮮衣服などの生活必需品時価より20-30%ほど供給在日朝鮮人生活利益確保いだのです当時この地域在日朝鮮人零細商人肉体労働などの低所得層がほとんどでしたのでこのような消費組合らにとってきなけになりました

 

 

創立当時280人余りの朝鮮人商人参加芦屋綿工場経営者安泰運(アン·テウン)初代理事長選任して組織しましたが全盛期だった1930年代初めには阪神間地域居住する朝鮮人450世代組合員として加入したと記録されています

 

阪神消費組合規約1134構成されていましたが2には生活必需品購入生産加工その他消費経済利益擁護目的とすると規定され34には組合員資格阪神間居住する労働者農民無産市民設定18出資金1口座5設定24利益金一部口座金額じて配当するとなっています

 

 

韓信消費組合組合員生活利益確保することに注力しながらも<阪消ニュース>という情報誌発行して組合員言論役割担当夜間部用意して識字学級運営して朝鮮語日本語文字普及活動いました

 

またこの組合同胞災害救援活動にも積極的でした19341936韓国南部地方きな水害発生した救護金1934颱風室戸阪神地域ったにも立花村応急住宅25建設してった朝鮮人難民収容したりもしました

 

 

堀内稔先生によると同組合1935317かれた5回大会参加した150代議員消費組合拡大活動強化決議したのに、「組合員医療死亡結婚出産住宅する援助決議されました

 

 

阪神消費組合はこの時期んだったくの消費組合活動んで194112月末当局によって解散されるまで寿命かったのですがこれは阪神間在日朝鮮人民衆日常生活のニーズに密着した需要たしたためでした(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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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신>이 방문하는 니시노미야에 대해 소개하면서, 한신칸 모더니즘과 댄스홀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같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 일본의 신무용과 최승희의 조선무용이 출발되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니시노미야의 역사를 보면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3가지 사건이 더 있습니다. 한신소비조합(1931)과 니시노미야 지하호의 벽서(1945년경), 그리고 한신교육투쟁(1948)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의 조선인관련 역사를 이해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세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해 두고자 합니다.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의 논문 <한신소비조합에 대하여(阪神消費組合について, 1980)>에 따르면, 1931320일 발족한 한신소비조합은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들이 결성한 공동구매조합입니다. 결성된 곳은 아마가사키(尼崎)의 츠키지(築地)이고 본부도 그곳에 두었지만, 니시노미야(西宮), 나루오(鳴尾), 아시야(芦屋), 아오키(靑木) 등지에 지부를 두었고, 니시노미야 지부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비조합, 혹은 구매조합이란, 오늘날 한국의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합니다. 생필품 생산자와 구매자들을 직접 연결하여 중간유통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생산자에게는 판로를 안정시키고, 소비자들에게는 싼값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조합이었던 것이지요.

 

 

니시노미야와 아마가사키, 다카라즈카 등의 한신칸 지역에는 수천명의 재일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들의 의식주는 일본인 주류사회의 그것과 다른 것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쌀, 된장, 간장, 명태, 고추 등의 식료품과 고무신과 조선의복 등의 의류 등의 생활필수품을 시가보다 20-30%정도 싸게 공급하여 재일조선인들의 생활이익 확보에 주력했던 것인데, 당시 이 지역의 재일조선인들은 영세상이거나 막노동 등의 저소득층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이같은 소비조합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립 당시 약 280여명의 조선인 상인들이 참석했고, 아시야의 면공장 경영자 안태운(安泰云)을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하여 조직하였는데, 전성기였던 1930년대 초반에는 한신칸 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 450세대가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신소비조합의 규약은 1134개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조에는 생활필수품의 구입, 생산가종, 기타 소비경제의 이익옹호를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되었고, 3조와 4조에는 조합원의 자격은 한신칸에 거주하는 노동자, 농민 무산시민으로 설정했고, 18조는 출자금을 1구좌에 5으로 설정했고, 24조는 이익금의 일부는 구좌 금액에 따라 배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신소비조합은 조합원들의 생활 이익을 확보하는 데에 주력하면서도, <한쇼뉴스(阪消ニュース)>라는 소식지를 발행하여 조합원들 사이의 언론 역할도 담당했고, 야간부를 마련하여 식자학급(識字学級)”을 운영하여 조선어와 일본어의 문자 보급활동도 벌였습니다.

 

또 이 조합은 동포들의 재난구원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1934년과 1936년 한국의 남부지방에 큰 수해가 발생했을 때 구호금을 보냈고, 1934년 태풍 무로토(室戸)가 한신지역을 강타했을 때에도 다치바나(立花) 촌에 응급주택 25호를 건설해 집을 잃은 조선인 난민들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에 따르면 이 조합의 1935317일에 열린 제5회 대회에 참석한 150명의 대의원들은 소비조합의 확대와 활동의 강화를 결의한 데 이어 조합원의 의료, 사망, 결혼, 출산, 주택에 대한 원조도 결의되었습니다.

 

 

한신소비조합은 이 시기에 성행했던 많은 소비조합 중에서 활동이 가장 왕성했고, 194112월말에 일제 당국에 의해 해산될 때까지 수명도 가장 길었는데, 이는 한신칸에 거주하는 재일조선인 민중의 일상생활의 요구에 밀착된 수요를 충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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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宮訪問団水墨画金大中15っていきます韓国トップクラスの水墨画家兪俊(·ジュン)画伯出版した金大中先生伝記ですこの寄贈するのには朴仁浩(パク·インホ)李元榮(·ウォニョン)先生後援がありました

 

 

最初12用意したのは在日朝鮮人日本人活動家12宝塚朝鮮人追悼碑調査研究をたゆまず後援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名前趙正熙後援会とつけましたが私個人後援のためのものではなく宝塚朝鮮人追悼碑犠牲者5韓国内縁故地調査するリサーチを特定して支援されたのです

 

 

この々の後援のおかげで犠牲者5から金炳順さんが江原道江陵出身であることを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尹吉文さん吳伊根さんが慶尚南道固城郡出身南益三さんが慶尚南道統営出身であることを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残念ながら張長守さんの韓国内のゆかりのらかにできませんでしたリサーチのための記録くなかったからです

 

 

このリサーチの結果江陵市2022、「宝塚朝鮮人追悼碑建立貢献した8感謝牌贈呈しました今年下半期には固城郡統営市にも感謝牌贈呈請願する準備えています

 

 

統営市固城郡請願れてくれるなら来年3月頃感謝牌贈呈式組織しようと企画していますそして江陵-統営-固城支援要請<宝塚朝鮮人追悼碑>主題にした全宰云先生写真展このプロジェクトを公式えることになります

 

3年間、『宝塚朝鮮人追悼碑のリサーチが可能だったのは後援会員支援があったからですこの々は調査経費支援されただけでなく調査必要記録資料すことにもけを江陵市感謝牌贈呈式組織してくださいました本当にありがたいことです

 

 

このような事情いた兪俊画伯後援会員たちに自身最新著書寄贈する意思らかにしましたがこれを無償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李元榮朴仁浩先生けを要請二人がそれぞれ5水墨画金大中値段後援しましたりない2兪俊作家寄贈要請された3著書用意しました15には著者直接書いて署名した感謝挨拶っています

 

 

一見すると、『水墨画金大中内容上<宝塚朝鮮人追悼碑>とは直接関係がなさそうです金大中大統領韓国民主化経済危機克服そして南北和解のためにくの業績げたですが基本哲学人間基本権利としての人権強調していたです宝塚朝鮮人追悼碑犠牲者発掘記録100年以上慰霊祭ってきた々の人権意識れだったといます

 

 

そのうえ金大中大統領朴正熙独裁玄海灘水葬される危機した救出したのは日本人活動家積極的素早救命運動があったからでもありますこうしたからると日本人活動家在日朝鮮人水墨画金大中をプレゼントすることは意味深いことかもしれないといます

 

 

もちろん後援会員々の長年後援べると、『水墨画金大中時期からしても値段からしてもそれほどきな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このささやかなとしてこれまで<宝塚朝鮮人追悼碑>プロジェクトを後援してくださった々にささやかな感謝のしるしにはなるといます

 

 

また今後半年間続くこのプロジェクトにして最後まで関心っていただきプロジェクトが成功するように後援けてくださるといういもめられていますもやはりこの々の意思れずに固城統営でも結果せるよう最善くします

 

 

この意味深いプレゼントにいちいち著者サインをしてくださった兪俊画伯感謝いたします(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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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노미야 방문단은 15권의 <수묵화로 보는 김대중>을 가져갑니다. 한국 유수의 수묵화가 유준 화백이 출판한 김대중 선생의 전기입니다. 이 책을 기증하는 데에는 박인호, 이원영 선생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12권을 준비한 것은 재일동포와 일본인 활동가 열두 분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조사연구를 꾸준히 후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조정희후원회>라고 붙였지만, 제 개인 후원을 위한 것은 아니고,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희생자 5분의 한국내 연고지를 조사하는 리서치를 특정해서 지원하신 것입니다.

 

 

이분들의 후원 덕분에 희생자 5분 중에서 김병순씨가 강원도 강릉 출신임을 밝힐 수 있었고, 윤길문, 오이근씨가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 남익삼씨가 경상남도 통영 출신임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장장수씨의 한국내 연고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리서치를 위한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리서치의 결과를 바탕으로 강릉시는 2022<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에 기여하신 8분에게 감사패를 증정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고성군과 통영시에도 감사패 증정을 청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통영시와 고성군이 청원을 받아들여 준다면 내년 3월경 감사패 증정식을 조직하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릉-통영-고성의 지원을 요청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주제로한 전재운 선생의 사진전을 진행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3년에 걸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리서치가 가능했던 것은 후원회원들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조사경비를 지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조사에 필요한 기록과 자료를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을 주셨고, 강릉시의 감사패 증정식을 직접 조직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이같은 사정을 전해들은 유준 화백은 후원회원들에게 자신의 최신 저서를 기증할 의사를 밝히셨는데, 이를 무상으로 받을 수 없었으므로 이원영, 박인호 선생께 도움을 요청했고, 두 분이 각각 5권의 <수묵화로 보는 김대중>의 값을 후원하셨습니다. 모자라는 2권은 유준 작가가 기증하셨고, 나중에 요청된 3권의 저서는 제가 마련했습니다. 15권의 책에는 저자가 직접 쓰고 서명하신 감사의 인사말이 들어 있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수묵화로 보는 김대중>은 내용상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위기 극복, 그리고 남북화해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내신 분이지만, 그의 기본 철학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서의 인권을 강조하셨던 분입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도 희생자들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1백년이 넘도록 위령제사를 지내오신 분들의 인권의식의 발로였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치하에서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출한 것은 일본인 활동가들의 적극적이고 발빠른 구명운동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본인 활동가들과 재일동포들에게 <수묵화로 보는 김대중>을 선물하는 것은 뜻깊은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후원회원분들의 오랜 후원에 비하면 <수묵화로 보는 김대중>은 시기로 보나 값으로 보나 그리 큰 선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은 선물로나마 그동안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프로젝트를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작은 감사의 표시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반년 동안 계속될 이 프로젝트에 대하여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고, 프로젝트가 성공하도록 후원을 계속해 주십사는 당부의 뜻도 담겨 있습니다. 저도 역시 이분들의 뜻을 잊지 않고, 고성과 통영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뜻 깊은 선물에 일일이 저자 사인을 해 주신 유준 화백께 감사드립니다. (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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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回訪問団行事(1)切畑追悼碑玉瀬参拝墓訪問玉瀬住民滿福寺のおさんたちとの出会(2)伊丹バーベキュー交流会そして(3)西宮公民館公演ですがそのにも々やるべき重要宿題3つもあります

 

 

来年320大阪開催されるトモダチフェスタして、「舞踊靴3回来日団構成できるかどうかを調べることです2日本訪問した具実先生<コッキリの>支援加納健次先生<トモダチフェスタ>への参加要請してきました

 

具実先生要請今回西宮訪問団成就これからは加納健次先生のおっしゃるとおり来年3訪問団構成できるか確認してみなければなりません加納先生って<トモダチフェスタ>についてしく調<舞踊靴>協力できる行事なのかどのように協力できるのかを把握しますもちろん<チームアイ>けが必要なことです

 

 

<25回江陵人権映画祭>招待する映画のオファーです。 「舞踊靴去年(2023)から江陵人権映画祭後援めたのですが首都圏でなければ生存しにくい地方映画祭後援することで数年内安定的定着してほしいというえからです

 

<舞踊靴><江陵人権映画祭>後援することになったのも<宝塚朝鮮人追悼碑>との関連性のためです去年鄭世和先生がドキュメンタリー玉瀬100年伝説出品されたので、『チームアイ舞踊靴』、そして江陵人権映画祭はさらにくなっています

 

 

江陵人権映画祭共同組織委員長である姜承昊先生今回訪問団参加されたのも在日同胞日本人活動家たちが製作した人権関連映画してみて<江陵人権映画祭>招請できるか渉外するためのものと理解していますどうぞよろしくおいします

 

全宰云先生写真展可能性打診することです全宰云先生ウリ學校写真ってこられた作家ですが舞踊靴キャンペーンや訪問団のたびに積極的参加宝塚朝鮮人追悼碑関連写真もたくさんりました

 

 

宝塚朝鮮人追悼碑はもともと舞踊靴目標活動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いつのにかかせない重要なテーマとなりました追悼碑関連した全宰云先生写真がすでにいですがこれから1-2回宝塚をもっと訪問して追加撮影をすればいに季節々な関連者たちを写真くなり展示会くのに充分だといます

 

展示会めるにはなからぬ予算くの々のけが必要です黃光石先生のご指摘必要財源調達するために追悼碑関連した江陵固城統営活動家自治体支援必要またこの3巡回公演必要もあるでしょう

 

 

日本展示会でも在日朝鮮人日本人活動家積極的協力必要です<チームアイ>協力期待しており<神戸学生青年センター>のようなしっかりした市民団体<青丘文庫>のような学術団体けも必要です(えば展示会神戸中央図書館かれる可能性もありますがそのためには青丘文庫神戸学生青年センター協力絶対的必要です)

 

写真展可能性のために全宰云先生自身必要予算推算展示する写真たちのポートフォリオも作成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この資料って訪問期間中にいろんな活動家たちにうことになりますが神戸大阪宝塚あるいは3すべてで巡回写真展くことができるのか調べてみます

 

 

このように今回訪問団家族風物<ドンドン>公演交流会らず今後重要行事準備したり渉外しなければならない重要宿題いています各担当者がこの宿題をうまくできるように日本活動家々にもあらかじめらせてくださって必要出会いがなされるように斡旋してくださればありがたいです(jc, 20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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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단의 주요 행사는 (1) 키리하타의 추도비와 타마세의 참배묘 방문과 타마세 주민과 만푸쿠지 스님들과 만남, (2) 이타미 바비큐 교류회, 그리고 (3) 니시노미야의 공민관 공연입니다만, 그밖에도 틈틈이 해야 할 중요한 숙제가 세 가지나 더 있습니다.

 

 

첫째는, 내년 320일 오사카에서 개최될 <도모다치 페스타>에 즈음하여 <무용신>의 제3차 일본 방문단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지를 조사하는 일입니다. 제가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구실 선생께서 <코끼리회>의 지원을, 카노 겐지(加納健次) 선생께서 <도모다치 페스타> 참여를 요청해 오셨습니다.

 

구실 선생의 요청은 이번 니시노미야 방문단으로 성취되었고, 이제 카노 겐지 선생의 말씀대로 내년 3월에 방문단을 구성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카노 선생님을 만나서 <도모다치 페스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무용신>이 협력할 수 있는 행사인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파악하겠습니다. 물론 <팀아이>의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다.

 

 

둘째는, <25회 강릉인권영화제>에 초청할 영화의 섭외입니다. <무용신>은 작년(2023)부터 <강릉인권영화제>를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수도권이 아니면 생존하기 힘든 지방의 영화제를 후원함으로써 수년 내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무용신><강릉인권영화제>를 후원하게 된 것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정세화 선생께서 다큐멘터리 <타마세 마을의 1백년 전설>을 출품하셨기 때문에 <팀아이><무용신>, 그리고 <강릉인권영화제>의 인연은 더욱 끈끈해 지고 있습니다.

 

 

강릉인권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이신 강승호 선생께서 이번 방문단에 참여하신 것도, 재일동포나 일본인 활동가들이 제작하신 인권관련 영화를 찾아보고, <강릉인권영화제>에 초청할 수 있는지 섭외하시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셋째는, 전재운 선생의 사진전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입니다. 전재운 선생은 오랫동안 우리학교 사진을 찍어 오신 작가입니다만, 무용신 캠페인과 방문단 때마다 적극 참여하여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관련 사진도 많이 찍으셨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원래 <무용신>의 주요 목표활동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추도비에 관련된 전재운 선생의 좋은 사진이 이미 많지만, 앞으로 1-2회 다카라즈카를 더 방문해 추가 촬영을 하시면, 서로 다른 계절과 여러 관련자들을 포함하는 사진들이 많아져서, 전시회를 열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회를 진행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과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황광석 선생의 지적대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추도비와 관련된 강릉, 고성, 통영의 활동가들과 지자체의 지원도 필요하고, 또 이 세 곳에서 순회공연을 먼저 단행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 전시회에서도 재일동포와 일본인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팀아이>의 협력도 기대하고 있고, <고베학생청년센터>와 같은 탄탄한 시민단체와 <청구문고>와 같은 학술단체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전시회가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청구문고><고베학생청년센터>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진전의 가능성을 위해, 전재운 선생 자신도 필요한 예산을 추산하고, 전시할 사진들의 포트폴리오도 작성하고 계십니다. 이 자료를 가지고 방문기간 중에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게 될 텐데, 고베나 오사카나 다카라즈카에서, 혹은 세 곳 모두에서 순회 사진전을 열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이번 방문단은 가족풍물 <동동>의 공연과 교류회 못지않게 향후의 중요한 행사들을 준비하거나 섭외해야 하는 중요한 숙제도 안고 있습니다. 각 담당자가 이 숙제들을 잘 할 수 있도록 일본의 활동가 분들에게도 미리 널리 알려 주시고, 필요한 만남이 이뤄지도록 주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c, 20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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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公民館公演交流会<舞踊靴>訪問団挨拶順番けられたときました訪問準備団一人として今回がご挨拶げたいといます挨拶草稿下記りです

 

 

こんにちは<舞踊靴>趙正熙です

<舞踊靴>20203<チームアイ>最初舞踊靴キャンペーンを開始しました今回8回目舞踊靴キャンペーンで<コッキリの><ララン舞踊教室>うために西宮ることができたことをしくいます

 

<チームアイ>学生青年たちが公平びの機会公正就職機会つよう支援する宝塚市民団体です近藤富男先生初代会長近藤卓海先生会長職めながらこの目的達成するために活発活動されているといております

 

<チームアイ>協力しながら<舞踊靴>もこの5年間在日コリアンの学生たちと青年たちの芸術活動支援してきました今回西宮訪問のために韓国では168個人会員18後援団体1ウォン以上後援金このの後援のおかげで<ララン>舞踊靴<コッキリの>風物衣装をプレゼントすることができこの<ドンドン>公演くことができました

 

<舞踊靴>日本活動じて<チームアイ>だけでなく兵庫大阪くの市民団体交流して協力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とてもありがたくいます<チームアイ>鄭世和先生真銅敏之先生大黑澄枝先生梁和進先生黄貞恵先生にたくさんけていただきました

 

そのにも<神戸学生青年センター>飛田雄一先生堀内稔先生<青丘文庫>徐根植水野直樹山根俊郞先生などくのお手伝いをいただき今回<コッキリ>具実先生金園恵先生<トモダチフェスタ>加納健次先生とも協力しながら一緒仕事ができたことをしくいます

 

<西宮在日外国人児童生徒保護者会>今回<ドンドン>公演交流会共催してくださったことと<西宮在日外国人教育研究協議会>がこれに協力してくださったことにも感謝いたしますそして西宮市西宮市教育委員会交流会<ドンドン>公演公式後援してくださったことに感謝しています今後もこのような友好的交流協力く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今日公演してくださる家族風物牌<ドンドン>韓国のトップクラスの演奏団体です林寅出(イム·インチュル)先生夫人趙元子(チョ·ウォンジャ)先生風物唱演奏者としてられている二人息子さんである林東明(イム·ドンミョン)林東權(イム·ドングォン)国立国楽中学校高校在学中韓国風物界世代材木です一緒演奏する楊享鎭(ヤン·ヒャンジン)先生バックノリで定評のあるです

 

このように立派演奏団西宮さんに紹介することができてとてもしいですぜひこのたちの演奏びをしんでいただきこれからも音楽じた韓国日本交流協力いてま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最後今日のこの公演交流会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実務的苦労してくださったくの々に感謝いたします韓国では姜承昊(カン·スンホ)全宰云(チョン·ジェウン)李高恩(·ゴウン)先生準備してくださり日本でも鄭世和金園恵具実黄貞恵先生がとても苦労してくださいました感謝いたします

どうも。」

 

 

公演先立交流会ではこんな挨拶げたいといますもし事実関係ったりけている名前がないか調べてみてください内容表現修正されるべきことがあればえてください(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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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의 공민관 공연과 교류회에서 <무용신> 방문단의 인사말 순서가 마련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방문 준비단의 한사람으로서 이번에는 제가 인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인사말씀의 초고는 아래와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무용신>의 조정희입니다.

<무용신>20203월에 <팀아이>와 함께 첫 번째 무용신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8번째 무용신 캠페인으로 <코끼리회><라랑무용교실>을 만나기 위해 니시노미야에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팀아이>는 학생과 청년들이 공평한 배움의 기회와 공정한 취업의 기회를 가지도록 지원하는 다카라즈카의 시민 단체입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께서 초대회장이셨고, 지금은 콘도 다쿠미 선생이 회장직을 수행하시면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팀아이>와 협력하면서 <무용신>도 지난 5년간 재일코리안 학생들과 청년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이번 니시노미야 방문을 위해서 한국에서는 168명의 개인회원과 18개의 후원단체가 1만원이상의 후원금을 내 주셨고, 이분들의 후원 덕분에 <라랑무용교실>에 무용신, <코끼리회>에 풍물의상을 선물할 수 있었고, 여기서 <동동> 공연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용신>은 일본 활동을 통해 <팀아이>뿐 아니라 효고와 오사카의 많은 시민단체들과 교류하고 협력하게 된 것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팀아이>의 정세화 선생님, 신도 도시유키 선생님,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님, 량화진 선생님과 황정혜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밖에도 <고베학생청년센터>의 히다 유이치 선생님과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님, <청구문고>의 서근식, 미즈노 나오키, 야마네 토시로 선생님 등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고, 이번에 <코끼리회>의 구실 선생님과 김원혜 선생님, <도모다치 페스타>의 카노 겐지 선생님과도 협력하면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니시노미야 재일외국인 아동생도 보호자회>가 이번 <동동>공연과 교류회를 공동 주최해 주신 것과, <니시노미야 재일외국인 교육연구협의회>가 여기에 협력해 주신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니시노미야시와 니시노미야시 교육위원회가 교류회와 <동동> 공연을 공식 후원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같은 우호적인 교류와 협력이 계속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연해 주실 가족풍물패 <동동>은 한국의 정상급 연주단체입니다. 임인출 선생님과 그의 부인 조원자 선생님은 풍물과 창 연주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고, 두 아드님인 임동명군과 임동권군은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 풍물계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재목입니다. 함께 연주하실 양향진 선생도 버꾸놀이로 정평이 나신 분입니다.

 

이같이 훌륭한 연주단을 니시노미야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릴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부디 이분들의 연주와 놀이를 잘 즐겨주시고, 앞으로도 음악을 통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이어지고 깊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의 이 공연과 교류회를 열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수고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는 강승호, 전재운, 이고은 선생님이 준비해 주셨고, 일본에서도 정세화, 김원혜, 구실, 황정혜 선생님께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공연에 앞선 교류회에서는 이런 인사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누락된 이름이 없는지 살펴보아 주시고, 내용이나 표현이나 수정되어야 할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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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旅行者にとって両替必須でしたキャッシュレス決済れている韓国人にはこの強調されます現金のためにひどいうことがいのも事実です

 

 

日本産業省調査したところによりますと韓国のキャッシュレス決済割合はほぼ90%ですが日本20%たないんです日本2015まで80%以上現金決済でした。 「両替必須という言葉理由です

 

 

れる部分交通費ですめて日本調査めた2018まではJRパスでなければ電車現金切符わなければならずバスも小銭料金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食堂やコンビニでも現金決済優先でした

 

しかしこうした傾向わりつつありますコロナ以降日本でもクレジットカードと簡単決済しくえましたホテルやレストランマートやコンビニでほとんどクレジットカードをります電車やバス電車などにも交通カードが一般的になりました

 

 

日本政府2025大阪-関西万博開催までキャッシュレス決済率40%げる方針ですところがこのように努力する目標40%ですすでに90%している韓国べると半分にもばないんです

 

いなことにたちがれる大阪神戸大都市西宮宝塚尼崎伊丹などの阪神間地域もメトロポリタンにまれるので平均的日本地域べてクレジットカードと簡単決済がかなりんでいます

 

 

したがって両替必要性大幅りましたコロナ日本旅行経費のほとんどを両替して現金所持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がはホテルや食堂スーパーやコンビニは現金がほとんど必要ありません手数料問題はありますがクレジットカードでコンビニから現金すこともできます

 

 

ですがまだまだ日本旅行では現金使用習慣しは回帰する準備をしたほうがいいですたとえば公共交通機関交通カードを使用しますが交通カードは現金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もちろん韓国Apple Payをご利用場合これを日本交通カードとして使うことができます)

 

 

一部のグルメ老舗依然としてただ現金固執します(もちろんそこにはかなければいいんですがまた美味しいだから······^^えば訪問団12夕食をとる住所ねぎやき山本クレジットカードをるかどうかはまだ確認されていません現金支払必要がある可能性がありますしかし14夕食予約されている鳥焼つくねやはクレジットカードをっています

 

 

このように食堂もクレジットカードや簡単決済っているのかあらかじめ調べておく必要がありますそれで日本でクレジットカードと簡単決済使そしてそれぞれの長所短所えてくれるユーチューブがたくさんありますえばこんなところです

https://www.youtube.com/watch?v=n8HFZYIdJUM (日本でクレジットカードを使用)

https://www.youtube.com/watch?v=dQFnqVGuT1Q (アップルネイバーカカオペイ)

 

要約するとビザとマスターとJCBという日本のカードを使えば不便がなく韓国人使うアップルネイバーカカオペイも使えます

 

 

はビザカードとカカオペイで日本調査めてきましたがビザよりはマスターカードカカオよりはネイバーカードの便利節約になるというをよくきました手数料はありますが旅行経費があまりないのできなはなかったといますしかも早朝出発するので両替するのをれてしまいましたが調査中支障がなかったこともありました

 

 

さんも各自計画ってしずつもっと調べて各自両替する現金きさをあらかじめ見積もっておいたいといますApple Pay利用者でない場合交通カード(ICOCA)費用5千円両替めてください(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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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는 여행객들에게 환전은 필수였습니다. 비현금 결제에 익숙한 한국인 여행객들에게는 이 점이 무척 강조됩니다. 현금 때문에 낭패를 겪는 일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일본 산업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비현금 결제 비율은 거의 90%이지만 일본은 20%가 안 됩니다. 그만큼 한국은 2천년대 초반부터 신용카드와 간편결제가 보편화되었지만, 일본은 2015년까지도 80% 이상이 현금 결제였습니다. “환전은 필수라는 말이 나온 까닭입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 교통비입니다. 제가 처음 일본 조사를 다니기 시작했던 2018년만 해도 JR패스가 아니라면, 전철은 현금으로 표를 사야했고, 버스도 동전으로 요금을 내야했습니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도 현금 결제가 우선이었고요.

 

그러나 이런 경향은 바뀌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일본에서도 신용카드와 간편 결제가 현저하게 늘었습니다. 여행 중에 반드시 이용하는 호텔과 식당,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서 모두 신용 카드를 받습니다. 전철과 버스, 기차 등의 교통수단에도 교통카드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25년의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최까지 비현금 결제율을 40%로 끌어올린다는 방침 아래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환경을 조성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는 목표가 40%입니다. 이미 90%에 이른 한국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죠.

 

다행인 것은, 우리가 방문하는 오사카와 고베는 대도시이고, 니시노미야와 다카라즈카, 아마가사키와 이타미 등의 한신칸 지역도 메갈로폴리스에 포함되므로, 평균적인 일본 지역에 비해 신용카드와 간편 결제가 꽤 진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환전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일본 여행 경비 대부분을 환전해서 현금을 소지해야 했지만, 지금은 호텔과 식당, 마트와 편의점은 현금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수수료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신용카드로 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일본 여행에서는 현금 사용의 옛날 습관으로 조금은 회귀할 준비를 하는 게 좋습니다. 예컨대 대중교통에 교통카드를 사용하지만, 교통카드는 현금으로 사야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하신다면, 이를 일본 교통카드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부 맛집 노포들은 여전히 오직 현금을 고집합니다. (물론 그런데는 안가면 됩니다만 또 맛집이라니까...^^) 예컨대, 우리 방문단이 12일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 주소의 <네기야키 야마모토>는 신용카드를 받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금으로 지불해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14일 저녁식사가 예약된 <도리야키 츠쿠네야>는 신용카드를 취급합니다.

 

 

이처럼 식당에 갈 때도 신용카드나 간편결제를 취급하는지 미리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신용카드와 간편결제 사용법,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을 알려주는 유튜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곳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8HFZYIdJUM (일본에서 신용카드 사용)

https://www.youtube.com/watch?v=dQFnqVGuT1Q (애플, 네이버, 카카오페이)

 

요약하면, 비자와 매스터와 JCB라는 일본카드를 사용하면 불편이 없고, 한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애플, 네이버, 카카오페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자카드와 카카오페이로 일본 조사를 진행해 왔지만, 비자보다는 매스터카드, 카카오보다는 네이버카드가 더 편리하고 절약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수수료 차이가 있지만, 저는 워낙 여행경비가 얼마되지 않으니까 큰 차이는 없었다고 봅니다. 심지어 새벽에 출발하느라 환전하는 것을 잊어버렸지만, 조사하는 동안 지장이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계획에 따라 조금씩 더 알아보시고, 각자 환전할 현금의 크기를 미리 요량 잡으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플페이 이용자가 아니시라면 교통카드(ICOCA) 비용 5천엔은 꼭 환전에 포함시켜 주세요. (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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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5年間活動してきた<舞踊靴>特徴があるとすれば活動行事公的後援けるように努力するということです

 

 

たちの活動在外同胞民族教育後援することで, 日本とロシアの同胞たちだけでなく日本人とロシア人活動家たちとの交流協力拡大してきましたこれにえてたちの訪問後援事業地元地方政府認定後援けられるように努力してきました

 

 

今回西宮訪問団活動714公民館公演西宮市西宮市教育委員会公式後援事業指定されたというニュースです鄭世和先生らせてきたところによれば西宮市市教育委員会<舞踊靴>訪日して進行する<ドンドン>公民館風物公演公式後援してほしいという申込書提出されましたが75ついに承認されたという連絡けたそうです

 

 

教育委員会公式後援行事になればどんな恩恵うのかはよくかりません後援金をはじめとするそののイベント支援提供されるかもりませんしかしそのような具体的後援よりもきな意味がありますたちの仕事私的であったり個人的活動ではなく自治体める公式行事になったということが重要だといます

 

 

このようなことは2年前韓国でもわれました当時日本チームアイ韓国舞踊靴宝塚朝鮮人追悼碑建立指導者8江陵市庁感謝牌してほしいと請願しました1914神戸水道工事中事故犠牲になった朝鮮人労働者金炳順(キム·ビョンスン)江陵出身だという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たためです

 

 

江陵市議会提出した請願書江陵市政府され検討され請願実査江陵市長(当時市長金漢根)名義感謝牌6日本人活動家2在日同胞すことがまりました

 

 

当時はコロナ猛威るっていた時期だったため江陵市担当公務員直接宝塚れることはできず請願実態調査感謝牌贈呈東京所在江原道本部当時本部長姜秉直担当局長文美炫依頼しましたがこれがむしろ反応ましたこのことが江陵市らず東京神戸韓国公館にもられ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す

 

 

実際江陵市公務員たちと江原道本部姜秉直本部長はこの仕事自分仕事のように熱心推進してさりついに20204宝塚感謝牌贈呈式かれました

 

感謝牌全部8贈呈されましたがこのたちは日帝強占初期日本労働移民られて苦労事故死にあった朝鮮人労働者たちを発掘記録慰霊祭げてられた々と宝塚兵庫県大阪府でキャンペーンをった2020326追悼碑建立するのに先頭った々です

 

 

この贈呈式では在日韓国人郷土史学者鄭鴻永 チョン·ホンヨン先生元日本公立学校教師近藤富男 先生在日朝鮮人事業家金礼坤キム·レゴン先生<神戸学生青年センター>研究者飛田雄一堀内稔先生玉瀬滿福寺足立泰教足立智敎先生彫刻家玉野勢三先生られました

 

 

このことは韓国でも前例のないことでしたが日本ではさらにきな反響びましたくの在日朝鮮人日本人活動家韓国在日朝鮮人権益のためにいていましたが韓国地方政府から公式的感謝挨拶けたのはめてだったからです

 

 

当時宝塚市はこの感謝牌贈呈式公式にはめなかったので残念でしたが今回西宮市教育委員会ドンドン風物公演公認後援することをめたのは大変なことでありがたいことです

 

 

<舞踊靴>今後市民交流協力拡大しながらもこのような努力公的められるようにすることにも一層力れていきます(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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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활동해 온 <무용신>의 특징이 있다면, 우리의 활동과 행사가 공적인 인정과 후원을 받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활동은 재외동포의 민족교육과 민족예술을 후원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 일본과 러시아의 동포들뿐 아니라 일본인과 러시아인 활동가들과의 교류와 협력도 확대해 왔습니다.

 

 

이에 더해 우리의 방문이나 후원사업이 현지 지방정부의 인정이나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는데, 이번 니시노미야 방문단의 활동, 특히 714일의 공민관 풍물 공연이 니시노미야시와 니시노미야시 교육위원회의 공식 후원 사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본 <팀아이>의 사무국장 정세화 선생께서 알려 오신 바에 따르면, 일찍부터 니시노미야시와 교육위원회에, <무용신>이 방일해 진행하는 <동동> 공민관 풍물공연을 공식 후원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하셨는데, 75일 마침내 승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시와 교육위원회의 공식 후원행사가 되면 어떤 혜택이 따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원금을 비롯한 기타 행사 지원이 제공되는 지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후원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적이거나 개인적인 활동이 아니라, 지자체가 인정하는 공식 행사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일은 2년 전 한국에서도 이뤄졌습니다. 당시 일본의 <팀아이>와 한국의 <무용신><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을 추진하신 지도자 8분에게 강릉시청이 감사패를 전달해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1914년에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고사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김병순씨가 강릉 출신이라는 점을 밝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릉 시의회에 제출된 청원서는 강릉 시정부에 전달되어 검토되었고, 청원내용의 실사를 거쳐서 강릉시장(당시 시장 김한근) 명의의 감사패를 6분의 일본인 활동가와 2분의 재일동포에게 전달하기로 결정됐습니다.

 

 

당시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강릉시의 담당공무원이 직접 다카라즈카를 방문하지 못했고, 청원의 실사와 감사패 증정을 도쿄 소재 강원도본부(당시 본부장 강병직, 담당국장 문미혜)에 의뢰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일이 강릉시에 국한되지 않고, 도쿄와 고베의 한국공관에도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릉시의 공무원들과 강원도 본부의 강병직 본부장은 이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추진해 주셨고, 마침내 20204, 다카라즈카에서 감사패 증정식이 열렸습니다.

 

감사패는 모두 8분에게 증정되었는데, 이 분들은 일제강점 초기에 일본으로 노동이민을 오셔서 고생 끝에 사고사를 당하신 조선인 노동자들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위령제사를 드려 오신 분들과 다카라즈카와 효고현, 오사카부에서 캠페인을 벌인 끝에 2020326일 추도비를 건립하는 데에 앞장서신 분들입니다.

 

 

이 증정식에서는 재일동포 향토사학자 정홍영(鄭鴻永) 선생, 일본공립학교 교사 출신의 활동가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선생, 재일동포 사업가 김례곤(金禮坤) 선생, <고베학생청년센터>의 연구자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호리우치 미노루(堀内稔) 선생, 타마세 만푸쿠지의 아다치 타이쿄(足立泰敎)와 아다치 치쿄(足立智敎) 스님, 조각가 타마노 세이조(玉野勢三) 선생이 감사패를 받으셨습니다.

 

 

이 일은 한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많은 재일동포와 일본인 활동가들이 한국과 재일조선인의 권익을 위해 일했지만, 한국 지방정부로부터 공식적인 감사의 인사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카라즈카시는 이 감사패 증정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좀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니시노미야시와 교육위원회가 <동동> 풍물공연을 공인하고 후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큰일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무용신은 앞으로도 시민들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면서도, 이러한 노력이 공적으로 인정되도록 하는 데에도 더욱 힘쓰겠습니다. (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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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今回<舞踊靴>訪問団主行事である家族風物牌<ドンドン>公演があるですこの風物公演去年から構想されていたものなんですが紆余曲折今年実現しました

 

 

ドンドン公演西宮市立若竹公民館12から1時間行われます演目(1)ビナリと(2)家族サムルノリ(3)家族サンモパングッそして(4)チェサン·ンソゴとチェサンソ·ソルチャングブポノリルムとバックノリなどの個人遊びにつながります

 

 

<ドンドン>林寅出(イム·インチュル)先生趙元子(チョ·ウォンジャ)先生夫婦林東明(イム·ドンミョン)林東權(イム·ドングォン)4家族構成されていますがバックノリの専門家楊享鎭(·ヒャンジン)先生わりより充実した公演になるものと期待されますしかし公民館公演には<ドンドン>だけが出演するのではなくより多様順序まれます

 

 

行事10まるので訪問団9公民館到着もかけて民画展示手伝ってく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訪問団観客だけでなく助力者になってくださ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10時半開会されたらコッキリの具実会長舞踊靴挨拶言葉小西和治先生李鐘順先生西宮コッキリのについて紹介してくださるでしょう

 

 

11には日本人学生空手演舞いて地下号する映像上映されポン史郞先生真銅敏之先生経験談紹介されますポンシロ先生<アリランのえて>という作曲者真銅先生鄭鴻永先生一緒地下壕朝鮮国独立という壁書発見したです

 

 

11時半には<コッキリの>演奏がありますがこの時学生たちは韓國同胞<舞踊靴>がプレゼントした衣装舞台がるそうです舞踊靴伝達順序では<チームアイ>梁和進先生<ララン舞踊教室>生徒たちに舞踊靴伝達することになります

 

 

このような手順われば12<ドンドン>のビナリと家族サムルノリが演奏され<ララン舞踊教室>生徒たちの舞踊公演があった<ドンドン>演奏きます<ドンドン>演奏われば公演団林寅出先生<コッtキリ>生徒たちに演奏助言をしてさりしばらく協演時間ちます

 

 

公演がすべてわったら公民館講堂でお弁当昼食をとり後片付けをした公民館出発して西宮地下号れることになります地下壕所在地高級住宅街わったので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くにてられた記念碑ねることになりますこの<コッキリの>具実会長同行案内説明担当してくださることになります

 

 

地下壕訪問えて一行西宮北口駅移動します午後5からそこでかれる夕食会があります公演団とイム·ウナさん李高恩先生などはこの日帰国されるのでこの夕食会には参加できませんが訪問団8<チームアイ><コッキリの><ララン舞踊教室>先生たちがこの会食参加することになります

 

 

前日(13)日程これまで<舞踊靴>がよくった見慣れた場所です昨年1次訪問団切畑追悼碑玉瀬参拝墓滿福寺れましたしかしこの(14)日程<舞踊靴>にとってしいです風物公演めてですし西宮のいろんな行事めてです

 

 

いわば13<舞踊靴>行事復習なら14日程はこれから仕事予習といえます<舞踊靴>音楽舞踊写真などの芸術形式媒介韓国同胞在日同胞韓国人日本人交流協力拡大しようと努力してきました

 

 

西宮公民館公演じて韓国<ドンドン>西宮<コッキリ>京都<ララン舞踊教室>協演日本人学生たちが<空手演舞>試演されることも意味あることです

 

 

来年はこのような原則経験によって形式内容がよりかな訪問団構成され韓日間そして韓国-在日同胞間文化交流われ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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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일은 이번 <무용신> 방문단의 주행사인 가족풍물패 <동동>의 공연이 있는 날입니다. 원래 이 풍물공연은 작년부터 구상되었던 것인데, 우여곡절 끝에 올해 성사되었습니다.

 

 

<동동> 공연은 니시노미야시립 와카다케공민관(西宮市立若竹公民館)에서 12시부터 약 1시간동안 진행됩니다. 공연 내용은 (1) 비나리와 (2) 가족사물놀이, (3) 가족 상모판굿, 그리고 (4) 채상소고와 채상설장구, 부포놀음과 버꾸놀이 등의 개인놀이로 이어집니다.

 

 

<동동>은 임인출 선생과 조원자 사모, 임동명군과 임동권군의 4인의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버꾸놀이 전문가 양향진 선생이 합세해 더욱 알찬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공민관 공연에는 <동동>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많은 순서들이 포함됩니다.

 

 

행사는 10시부터 시작되므로 방문단은 9시까지는 공민관에 도착, 현수막도 걸고 민화도 전시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방문단은 관객이 아니라 조력자이자 참여자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10시반에 개회가 되면 <코끼리회>의 구실 회장님과 제가 인사말씀, 코니시 카즈하루(小西和治) 선생과 이종순(李鐘順) 선생께서 니시노미야와 코끼리회에 대해 소개하실 것입니다.

 

 

11시에는 일본인 학생들의 공수연무가 시연되고, 이어서 니시노미야 지하호에 대한 영상이 상영되면서, 폰시로(ポン史郞) 선생과 신도 도시유키(真銅敏之) 선생의 경험담이 소개됩니다.

 

폰시로 선생은 <아리랑의 고개를 넘어서>라는 노래로 작곡하신 분이고, 신도 도시유키 선생은 정홍영 선생과 함께 지하호에서 조선국 독립이라는 벽서를 발견하신 분입니다.

 

 

11시반에는 <코끼리회>의 연주가 있는데, 이때 학생들은 <무용신> 선물한 의상을 입고서 무대에 오른다고 합니다. 이어서 무용신 선물을 전하는 순서인데, <팀아이>의 량화진(梁和進) 선생께서 <라랑무용교실> 학생들에게 무용신을 전달하시게 됩니다.

 

 

이같은 순서가 끝나면, 12시에 <동동>의 비나리와 가족사물놀이가 연주되고, <라랑무용교실> 학생들의 짧은 무용공연이 있은 다음, <동동>의 연주가 이어집니다. <동동>의 연주가 모두 끝나면, 공연단의 임인출 선생이 <코끼리회>의 학생들에게 연주 조언을 해 주시면서 잠시 협연의 시간을 갖습니다.

 

 

공연이 모두 끝나면 공민관 강당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뒷정리를 한 후, 공민관을 출발해 니시노미야 지하호를 방문하게 됩니다. 지하호가 있는 지역은 고급 주택가로 변했기 때문에 지금은 들어가 볼 수는 없고, 인근에 세워진 기념비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코끼리회>의 구실 회장님이 동행하시면서 안내와 설명을 담당해 주시게 됩니다.

 

 

지하호 방문을 마치고, 일행은 니시노미야키다쿠치(西宮北口)역으로 이동합니다. 오후5시부터 그곳에서 열리는 저녁식사 모임이 있습니다. 공연단과 임은하씨, 이고은 선생 등은 이날 귀국하시기 때문에 이 저녁식사 모임에는 참여하시지 못하시지만, 방문단 8명과 <팀아이>, <코끼리회>, <라랑무용교실>의 선생님들께서 이 회식에 동참하시게 됩니다.

 

 

전날(13) 일정은 그동안 <무용신>이 자주 가본 익숙한 곳입니다. 작년의 1차 방문단도 키리하타 추도비와 타마세의 참배묘와 만푸쿠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이날(14) 일정은 <무용신>에게 새로운 장입니다. 풍물 공연도 처음이고, 니시노미야의 여러 행사도 처음입니다.

 

 

말하자면 13일은 <무용신> 행사의 복습이라면, 14일의 일정은 앞으로 이어갈 일의 예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용신>은 그동안 음악과 무용, 그림과 사진 등의 예술 형식을 매개로, 한국동포와 재일동포, 한국인과 일본인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니시노미야 공민관 공연을 통해 한국의 <동동>, 니시노미야의 <코끼리회>, 교토의 <라랑무용교실>이 협연하고, 일본인 학생들이 <공수연무>가 함께 시연되는 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내년에는 이 같은 원칙과 경험에 따라, 형식과 내용이 더 풍부한 방문단이 구성되어서, 한일간, 그리고 한국-재일동포간의 문화교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jc, 20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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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舞踊靴>訪問団本格的日程まりますこの桐畑宝塚朝鮮人追悼碑玉瀬仏教寺院万福寺足立泰敎足立有里僧侶表敬訪問玉瀬婦女会をはじめとする地元々にもおげます

 

 

宝塚朝鮮人追悼碑1914から1929までこの地域土木工事事故死亡した5朝鮮人労働者追悼するです神戸水道工事中死亡した3金炳順南益三張長守遺体玉瀬共同墓地埋葬され玉瀬住民滿福寺僧侶たちによって110年間慰霊祭われています

 

 

福知山線鉄道公社くなった二人尹吉文吳伊根火葬され痕跡す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が1986在日朝鮮人郷土史学者鄭鴻永先生教師出身日本人活動家近藤富雄先生らの犠牲発掘<歌劇のもうつの歴史:宝塚朝鮮人歌劇のもうひとつの歴朝鮮人1997)>という著書記録しました

 

 

20203日本人在日韓国人活動家たちがらの犠牲えるために切畑追悼碑建立その後毎年326追悼会いています玉瀨でも毎年826犠牲になった朝鮮人労働者のための慰霊祭きます

 

 

<舞踊靴><チームアイ>2022追悼碑ることになりその後毎年玉瀬切畑訪問して参拝今年例外ではないので訪問団追悼碑参拝墓訪問します

 

 

昨年はバスをって移動しましたが今年公共交通移動します8十三駅から電車って武田尾移動乗用車分乗して切畑玉瀬順番れます訪問えたまた武田尾駅電車って宝塚移動そこで昼食をとり4時間ほど自由時間ごした電車伊丹移動します

 

 

伊丹では午後5から7まで兵庫県社会団体のメンバーとバーベキュー交流会いた夕方伊丹自由時間ごすかホテルにってリラックスしていただくことになります伊丹十三のカフェや居酒屋あるいはその時間れることのできる観光地については鄭世和全宰云姜承昊先生などからアドバイスをいただけるといます

 

 

訪問2日目日程がぎっしりまっています十三出発して切畑玉瀬宝塚伊丹などのいろいろな場所れてから宿所るからですいなことにこれらすべての地域兵庫県東部密集しているくです頻繁移動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交通ですしかもこの地域在日朝鮮人歴史んだところなので意味深訪問になるでしょう

 

 

この昼休前後4時間ほど宝塚自由観光することができますが宝塚少女歌劇団1914創設されたところで日本漫画故郷のようなところです宝塚大劇場1930年代朝鮮舞踊家崔承喜先生がよく公演した場所でもありますこの大劇場手塚治虫漫画博物館れる価値があるといます

 

 

また伊丹バーベキューがわったらまた自由時間なので伊丹りながら同胞経営している食堂居酒屋ビールを一杯飲むのもいいことだといますあるいはすぐに十三ってくで時間ごすのもいいですよ

 

 

宝塚朝鮮人追悼碑参拝墓については昨年この地域への訪問準備しながらいておいた記録があります以下のリンクをクリックするとみになれます参考になればいです

 

https://teameye.tistory.com/349 (歌劇都市のもうつの歴史)

https://teameye.tistory.com/350 (宝塚朝鮮人追悼碑建立)

https://teameye.tistory.com/424 (万福寺参拝墓)

https://teameye.tistory.com/426 (参拝猫劇的再発見) (jc, 20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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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무용신> 방문단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됩니다. 이날은 키리하타(切畑)<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방문해 참배하고, 타마세(玉瀨)의 불교사찰 만푸쿠지(滿福寺)를 방문, 아다치 타이쿄(足立泰敎)와 치쿄(足立有里) 스님을 예방하고 타마세 부녀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914년부터 1929년까지 이 지역 토목공사에서 사고로 사망한 5명의 조선인노동자를 추도하는 비석입니다. 고베수도 개수공사 중에 사망한 3(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의 시신은 타마세의 공동묘지에 매장되었고, 타마세 주민과 만푸쿠지의 스님들에 의해 110년째 위령제사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2(윤길문, 오이근)은 화장되어 흔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1986년 재일조선인 향토사학자 정홍영 선생님과 교사출신의 일본인 활동가 콘도 도미오 선생님이 이들의 희생을 발굴해 <가극의 거리의 또 하나의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歌劇のもうひとつの歴史:宝塚朝鮮人, 1997)>이라는 저서에 기록했습니다.

 

 

20203월 일본인과 재일동포 활동가들이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키리하타에 추도비를 건립했고, 이후 매년 326일 추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타마세에서도 매년 826일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한 위령제사가 계속됩니다.

 

 

<무용신><팀아이>2022년 추도비를 알게 됐고, 이후 매년 타마세와 키리하타를 방문해 참배를 계속했고, 올해의 예외가 아니어서 방문단이 추도비와 참배묘를 방문합니다.

 

 

작년에는 버스를 대절해 이동했지만, 올해는 대중교통을 이동합니다. 아침8시 주소(十三)역에서 전철을 타고 타케다오(武田尾)로 이동, 승용차에 나눠 타고 키리하타와 타마세를 차례로 방문합니다. 방문을 마친 후 다시 타케타오역에서 전차를 타고 다카라즈카(宝塚)로 이동,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4시간가량 자유시간을 가진 후 전철로 이타미(伊丹)로 이동합니다.

 

 

이타미에서는 오후5시부터 7시까지 일본 <팀아이> 등의 효고현 사회단체 회원들과 함께 바비큐 교류회를 가진 후, 저녁 시간에 이타미에서 자유시간을 가지거나,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시게 됩니다. 이타미와 주소의 카페나 이자카야, 혹은 그 시간에 방문할 수 있는 다른 관광지에 대해서는 정세화, 전재운, 강승호 선생님 등에게서 조언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방문 2일째의 일정이 촘촘합니다. 주소를 출발해 키리하타, 타마세, 다카라즈카, 이타미 등의 여러 곳을 방문한 뒤에 숙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이 모든 지역이 효고현의 동부에 밀집된 가까운 곳입니다. 자주 이동하게 되지만, 교통편이 불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재일조선인의 역사가 배인 곳들이어서 뜻 깊은 방문이 될 것입니다.

 

 

이날 점심시간 전후의 4시간가량 다카라즈카에서 자유롭게 관광하실 수 있는데, 다카라즈카는 소녀가극단(1914)이 창설된 곳이고, 일본 만화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특히 다카라즈카 대극장은 1930년대에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이 자주 공연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대극장과 데즈카 오사무 만화박물관은 방문해 보실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타미 바비큐가 끝나면 다시 자유 시간이므로, 이타미를 돌아보시면서 동포가 경영하시는 식당이나 이자카야에서 나마비루를 한잔 하시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바로 주소로 돌아와서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와 참배묘에 대해서는 작년 이 지역 방문을 준비하면서 써놓은 기록이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https://teameye.tistory.com/349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https://teameye.tistory.com/350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

https://teameye.tistory.com/424 (만푸쿠지의 참배묘)

https://teameye.tistory.com/426 (참배묘의 극적 재발견) (jc, 20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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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滞在34訪問団8食事をします準備団全宰云李高恩趙正熙はこれまで7食事をあらかじめ準備しており13昼食場所最後渉外中です

 

 

まず12夕食公演団到着していない状況ですが10名様でホテルくのお食堂ねぎやまもと5から食事をしていただきますメインメニューのおきとねぎきについては以下2 つのインターネット ポスティングを参照してください

 

 

https://namu.wiki/w/%EC%98%A4%EC%BD%94%EB%85%B8%EB%AF%B8%EC%95%BC%ED%82%A4 (ナムウィキ項目)>

https://www.negiyaki-yamamoto.com/tenpo/ (本店ウェブサイトメニューと価格収録)

https://shpark610.tistory.com/340 (ある旅行客のレビュー)

 

 

朝食宿所のプラザ大阪ホテルですることになります周辺地域朝早くオープンする食堂があるのかからないしまた移動動線単純だという考慮しました

 

 

メニューはビュッフェなのですがアメリカンコンチネンタル和風がそろっているようですメニューが豊富だからたちとしてはいいことですレストランはホテル1<クリスタル(Crystal)>です

https://plazaosaka.com/kr/restaurant.html (ホテルレストランウェブサイト)

https://www.tripadvisor.com/Restaurant_Review-g298566-d7439305-Reviews-Buffet_Dining_Crystal-Osaka_Osaka_Prefecture_Kinki.html ( メニューサンプル収録 )

 

 

クリスタル645にオープンします13には8十三駅電車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べての準備えて朝食べた7時半にはホテルを出発することをおめします7には食堂出席チェックをげます^^

 

 

1415朝食<クリスタル>朝食ビュッフェです149までに西宮市立若竹公民館到着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十三駅から西宮北口駅までは30距離ですので8にホテルを出発していただいて結構です(西宮北口駅西宮駅です)

 

 

訪問えて帰国する15にも朝食<クリスタル>ですホテルの朝食6:45-10:00なのでこの各自日程わせてゆっくり朝食をとってもいいですよ^^

 

 

13のランチはまだめていませんが宝塚駅近くの日本式ラーメンやそばをしています13夕食伊丹移動して運動場でバーベキューにしますバーベキューの準備日本<チームアイ>先生にしていただくことになりました

 

 

14昼食西宮公民館でお弁当としておがりいただきます公演終了後すぐに西宮地下壕記念碑れる予定なので食事時間りないからですこのお弁当日本チームアイ先生方があらかじめ用意配布してくださることになります

 

 

14夕食西宮北口駅近くの炭火焼通つくね屋本舗われます<チームアイ><コッキリ><ララン>先生たちを15参加する予定です

 

 

この食事現地協力感謝する意味訪問団提供することになります食堂予約されていて一人様4,500のメニューと一緒ドリンク/ビール/焼酎放題だそうです

https://tsukuneya.gorp.jp/ つくねや本店ウェブサイトメニューと価格収録

 

 

以上のように訪問期間中8食事7はすでに決定または予約されており112日宝塚ランチのみ決定しています

 

 

もしそのメニューについてベジタリアンやアレルギーなどのおりの事前におらせください個人必要わせて調整できます(jc, 20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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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체류 34일 동안 방문단은 모두 8번의 식사를 하시게 됩니다. 준비단(전재운, 이고은, 조정희)은 지금까지 7번의 식사를 미리 준비해 두었고, 13일 점심 식사할 장소를 마지막으로 섭외 중입니다.

 

 

우선 12일의 저녁식사는 공연단이 도착하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10분이서 호텔 인근의 오코노미야키 식당 <네기야키 야마모토(ねぎやまもと)>에서 5시부터 식사를 하시게 됩니다. 주요 메뉴인 오코노미야키와 네기야키에 대해서는 아래의 세  인터넷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https://namu.wiki/w/%EC%98%A4%EC%BD%94%EB%85%B8%EB%AF%B8%EC%95%BC%ED%82%A4 (나무위키, <오코노미야키 항목)>

https://www.negiyaki-yamamoto.com/tenpo/ (본점 웹사이트, 메뉴와 가격 수록)

https://shpark610.tistory.com/340 (한 여행객의 후기)

 

 

아침식사는 숙소인 플라자 오사카 호텔에서 하시게 됩니다. 주변 지역에 아침 일찍 문 여는 식당이 있는지 모르기도 하고, 또 이동 동선이 단순하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메뉴는 뷔페식인데, 아메리칸, 컨티넨탈, 일본식이 모두 구비된 것 같습니다. 메뉴가 다양하니까, 우리로서는 좋은 일입니다. 식당은 호텔 1층의 <크리스탈(Crystal)>입니다.

https://plazaosaka.com/kr/restaurant.html (호텔 식당 웹사이트)

https://www.tripadvisor.com/Restaurant_Review-g298566-d7439305-Reviews-Buffet_Dining_Crystal-Osaka_Osaka_Prefecture_Kinki.html (메뉴 샘플 수록)

 

 

<크리스탈>은 아침 645분에 문을 엽니다. 13일 아침에는 8시에 주소역(十三驛)에서 전철을 타야하므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신 후, 7시 반에는 호텔을 출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7시에는 식당에서 출석체크를 드리겠습니다.^^

 

 

14일과 15일 아침식사도 <크리스탈> 조식부페입니다. 14일 아침에는 9시까지 니시노미야 시립 와타다케 공민관(西宮市立若竹公民館)까지 이동하게 됩니다만, 주소역에서 니시노미야키타구치역까지 약 30분 거리이므로 8시에 호텔을 출발하셔도 충분합니다.

 

 

반면 방문 마치고 귀국하는 15일에도 아침식사는 <크리스탈>입니다. 호텔 조식은 6:45-10:00이므로 이날은 각자의 일정에 따라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하셔도 되겠습니다.^^

 

 

13일 점심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다카라즈카(宝塚)역 근처의 일본식 <라멘>이나 <소바> 식당을 찾고 있습니다. 13일 저녁은 이타미(伊丹)로 이동해서 운동장에서 바비큐로 하게 됩니다. 바비큐 준비는 일본 <팀아이> 선생님들께서 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4일 점심은 니시노미야 공민관에서 공연을 마친 후 도시락으로 점심을 드시게 됩니다. 이어서 니시노미야 지하호 기념비를 방문할 예정이므로, 식사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 도시락도 일본 <팀아이> 선생님들께서 미리 마련, 배포해 주시게 됩니다.

 

 

14일 저녁식사는 니시노미야기타구치역(西宮北口驛) 인근의 <숯불 야키도리 츠쿠네야 본점(炭火焼鳥つくねや 本店)>에서 하게 됩니다. 이 식사에는 방문단 8분과 <팀아이>, <코끼리>, <라랑>의 선생님들께서 참석하셔서 총원 15명쯤 될 것 같습니다.

 

 

이 식사는 현지 협조에 감사의 뜻으로 방문단이 제공하게 됩니다. 이 식당은 예약이 되어 있고 1인당 4,500엔의 메뉴와 함께 음료/맥주/일본식 소주는 무제한 드실 수 있다고 합니다.^^

https://tsukuneya.gorp.jp/ (츠쿠네야 본점 웹사이트, 메뉴와 가격 수록)

 

 

이상과 같이, 방문 기간 동안 8번의 식사 중에서 7번은 이미 결정되거나 예약되어 있고, 1(12일 다카라즈카 점심)만 결정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혹시, 해당 메뉴에 대해 채식주의나 알레르기 등의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미리 알려주세요. 개인의 필요에 맞춰서 조정드릴 수 있습니다. (jc, 202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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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西空港入国審査税関報告えてられたら関西空港駅十三(Juso)のホテルプラザ大阪移動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もちろん案内者がいます

 

 

訪問団15飛行日程ると3チームにかれて関西到着しますね1(3)102(7)2そして公演団(5)9空港到着します

 

 

1案内2全宰云先生そして公演団はまた空港からホテルまで案内します心配はありませんのでご安心ください下記空港-ホテルの情報のためまとめておきますので必要場合参考にしてください

 

(1) 関西空港から十三駅まで:

関西空港交通(ICOCA)カードをっておいたがいいとおえしました大阪では電車路線複雑頻繁え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がそのたびに切符うのが時間がかかって複雑になることがあるからです

 

 

全宰云先生提案によると関西空港駅南海空港線40970-天下茶屋駅堺筋線6460-淡路駅阪急京都線4200-十三駅方法がベストです回数3ですが各乗えが簡単区間いです

 

 

公演団楽器めた荷物いといますのでこの路線をおめします電車搭乗時間1時間くらいですがえと時間わせると1時間半くらいになるといます

 

 

一方関西空港からJR電車におりいただく方法もございます関西空港駅関西空港線1時間101,210-大阪駅-徒歩移動-梅田駅阪急線4170-十三駅経路ですこのルートも時間費用きくわりませんがえが1だけで便利です

 

 

ただ大阪駅から梅田駅徒歩移動する距離くて複雑ですそれでもこの地域大阪一番にぎやかなところなので夕方ならわざわざってみる価値がありますしかし深夜にたくさんの荷物って移動される公演団にはおめしません

 

 

(2) 十三(Juso)から宿所まで

十三駅からホテルプラザ大阪までは350メートルといですりたら西口地図案内するりに5だけいてくればいいです

 

 

ホテルのチェックインは午後2からですのチームはすぐにチェックインできますがのチームは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いなことにホテルが到着した宿泊客荷物をチェックインするまでかってくれますそのためのチームもホテルにカバンをけた昼食観光をされるのがだといます昼食住所駅くでしたほうがいいですね

 

 

宿題があるので中之島大阪図書館にちょっと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が同行していただいても後悔しないといますここには史跡博物館淀川沿いの公園しいからですコーヒーのがよく写真もよくれる^^カフェがいです

 

 

(3) 12夕食

1(チーム)2(チーム)くとも4まではホテルに皆集まることができるといます客室チェックインの夕食5<山本ねぎ>でおいします

 

 

大阪式のおきとこのならではのネギをたくさんれたおきがカウンターにって手前調理していただくおきがわえますビールをえるととてもいです^^

 

 

(4) 夕食後

到着してみればおかりだといますが十三駅くは一種遊興街とグルメりです夕食後適当居酒屋一杯することができます夕食参加費から支払われますが二次会です^^ (jc, 2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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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공항에서 입국심사와 세관보고를 끝내고 나오시면 간사이공항역에서 주소(十三)의 호텔 플라자 오사카(Hotel Plaza Osaka)로 이동해야 합니다. 물론 안내자가 있습니다.

 

 

방문단 열다섯 분의 비행 일정을 보니까, 3팀으로 나뉘어 간사이에 도착하시네요. 1(3)은 아침10, 2(7)은 낮2, 그리고 공연단(5)은 저녁9시에 공항에 도착하시게 됩니다.

 

 

1진은 제가 안내하고, 2진은 전재운 선생, 그리고 공연단은 다시 제가 공항부터 호텔까지 안내드릴 것입니다. 길을 잃고 헤맬 염려는 없으므로 안심해 주세요. 아래 공항-호텔 정보는 만약을 위해 정리해 두는 것이니, 필요한 경우에 참고해 주시기 바래요.

 

(1) 간사이공항에서 주소역까지:

간사이 공항에서 교통카드를 구매해 두시는 게 좋다는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오사카에서는 전철 노선이 복잡하고, 자주 환승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표를 구입하는 것이 시간이 걸리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재운 선생의 제안에 따르면 간사이공항역(난카이공항선, 40, 970)-텐가차야역(사카이스지선, 6, 460)-아와지역(한큐교토선, 4, 200)-주소역의 방법이 최선입니다. 환승 횟수가 2번이지만, 각 환승이 쉽고, 환승간 걸어야 하는 구간이 짧습니다.

 

 

특히 공연단은 악기를 포함한 짐이 많으실테니까 이 노선을 강추드립니다. 전철 탑승 시간은 1시간가량이지만, 환승과 대기 시간을 합치면 1시간 반쯤 될 겁니다.

 

 

한편, 간사이공항에서 JR전철을 타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간사이공항(간사이공항선, 1시간10, 1,210)-오사카역-도보 이동-우메다역(한큐선, 4,170)-주소역의 경로입니다. 이 경로도 시간과 비용이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환승이 1회뿐으로 편리합니다.

 

 

다만 오사카역에서 우메다역으로 도보 이동하는 거리가 좀 멀고 길이 복잡합니다. 그래도 이 지역은 오사카의 가장 번화한 곳이므로 낮이나 이른 저녁이라면 일부러라도 가볼 만한 곳입니다. 그러나 늦은 밤에 많은 짐을 가지고 이동하시는 공연단에는 권하지 않습니다.

 

 

(2) 주소(十三, Juso)역에서 숙소까지

주소역에서 <호텔 플라자 오사카>까지는 약 350미터로 가까운 편입니다. 역에서 내리시면 서쪽 출구(西口)로 나오셔서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약 5분만 걸어오시면 됩니다.

 

 

호텔 체크인은 오후2시부터입니다. 낮팀은 바로 체크인하실 수 있겠지만, 아침팀은 기다려야할 것입니다. 일본의 대부분의 호텔들이, 일찍 도착한 투숙객의 짐을 체크인할 때까지 맡아줍니다. 따라서 아침팀도 일단 호텔로 가서 짐을 맡긴 후에 점심식사와 약간의 관광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점심식사는 호텔에 짐을 맡긴 후에 주소역 근처에서 하는 것이 좋겠네요.

 

 

저는 숙제가 있어서 나카노지마의 오사카도서관에 잠시 들러야 합니다만, 시간이 되시면 동행하셔도 후회 않으실 겁니다. 이곳에 사적지와 박물관이 많고, 요도가와 강변의 공원길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너무 덥거나 비가 오면, 커피 맛이 좋고 사진 잘 받는^^ 카페가 많습니다.

 

 

(3) 12일 저녁식사

1(아침팀)2(낮팀)은 적어도 4시까지는 호텔에 모두 모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객실 체크인을 하신 다음 저녁 식사는 5시에 <야마모토 네기야키>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와 이집 특유의 네기야키(파를 많이 넣은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할 수 있고, 카운터에 앉아서 바로 앞에서 조리해주시는 오코노미야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음료나 나마비루(생맥주)를 곁들이면 아주 좋습니다.^^

 

 

(4) 저녁식사 이후

도착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소역 인근은 일종의 유흥가와 맛집 거리입니다. 저녁식사 후에 적당한 이자카야에서 한잔하실 수 있습니다. 저녁식사는 참가비에서 지불되지만, 2차는 각자 지불입니다.^^ (jc, 2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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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宮訪問出発まであと一週間ほどです海外かけに必要基本的なもの旅券-満了期間確認航空券購入ホテルの予約はもう準備ができているといます

 

 

ここでは迅速かつ便利出入国及日本内移動のためにあらかじめ準備する5つを提案しようといます

 

 

(1) Visit Japan Web:

関西国際空港じて日本入国する入国申告税関申告をしますさてこの2つの申告をオンラインで事前うことができますVist Japan Webという手続きがそれです

 

https://services.digital.go.jp/ko/visit-japan-web/

 

Visit Japan Web | Digital Agency Services

입국 절차(입국 심사, 세관 신고)및 면세 구입에 필요한 정보를 등록할 수 있는 웹 서비스입니다.

services.digital.go.jp

 

このリンクをクリックするとそのサイトが表示されますサイトで利用開始をクリックすると事前登録開始することができます登録情報にはパスポート航空券そしてホテルの情報必要です

 

この情報をあらかじめ入力してQRコードを生成させておけば入国審査非常迅速通過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かに最近もがこのサービスを使っているのでこちらの並大抵長いのは事実ですがそれでも審査にかかる時間非常短縮されます^^)

 

 

(2) 携帯電話ローミング:

空港たら電話ローミングを用意するのが普通なのですがはただ通信会社提供するサービスを自動的使ったりしていたのでこれについてはっていることがあまりありません電話ローミングについてはチョン·ジェウン先生えていただきたいです^^

 

 

(3) 交通カード(ICOCAカード):

関西空港から大阪駅までのはいろいろありますリムジンバス1時間302000もあればはるか503000という高速列車もあります

 

たいていは電車1時間30ほど1200ります大阪には電車路線がとてもいのですがそのすべての電車るときに使えるイコカ(ICOCA)という交通カードがあります関西空港駅購入できますがクレジットカードではえず現金でしかえません

 

 

日本入国から出国までだいたい5千円移動十分だと予想されるので空港駅自動販売機でイコカカードを購入されることをおめしますこのコカカードはコンビニでも現金わりに使えますのでめにチャージしていただいても結構です

 

 

(4) 携帯電話充電アダプタ豚鼻:

日本電気アウトレットが韓国いますですから通称"豚鼻"ばれる変換器用意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最初出国前ダイソーうことができましたがすべてのダイソーで豚鼻販売しているようにはえませんでした時間があればGマーケットのようなところでっておくといいです

 

 

ホテルのロビーで豚鼻無料してくれるところもありますあるいは日本到着して"ビックカメラ"とか"ドンキホーテ"というおでも購入できるといていますしかしあらかじめ準備しておくと電話のバッテリーがれるという困惑した状況直面しないことがあります

 

 

(5) グーグルマップGoogle Map:

韓国るとネイバーマップやカカオマップは使用できません日本ではヤフー マップとグーグル マップを使用していますはグーグルマップを使ってきましたがヤフーマップとべてはいませんが困難不便はありません

 

目的地英米式アルファベットで検索できるので日本語のカタカナやヒラカナを使わなくてもいいです電車ったり場所したりするのに便利なので出発前にグーグルマップを使練習事前にしておくといいといます

 

 

まずこの5つをおすすめしますもっとしい説明必要でしたら質問してください(jc, 2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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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노미야 방문 출발이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해외 나들이에는 대개 익숙하실 것이고, 기본적인 것(여권-만료기간 확인, 항공권 구매, 호텔 예약)은 준비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신속하고 편리하게 출입국 및 일본 내 이동을 위해서 미리 준비할 5가지를 제안드리려고 합니다.

(1) Visit Japan Web:

간사이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입국할 때도 입국신고와 세관신고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신고를 온라인으로 미리 할 수 있습니다. Vist Japan Web Service라는 절차가 그것입니다.

https://services.digital.go.jp/ko/visit-japan-web/

 

Visit Japan Web | Digital Agency Services

입국 절차(입국 심사, 세관 신고)및 면세 구입에 필요한 정보를 등록할 수 있는 웹 서비스입니다.

services.digital.go.jp

 

 

이 링크를 누르시면 해당 사이트가 나옵니다. 사이트에서 이용 시작하기를 누르시면 사전 등록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등록 정보에는 여권, 항공권, 그리고 호텔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 정보를 미리 입력해서 큐알 코드를 생성시켜 놓으면, 입국심사를 매우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긴, 요즘은 누구나 이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쪽 줄도 만만치 않게 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매우 단축됩니다.^^)

 

Visit Japan Web에 등록하실때, 호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우편번호] 5320025;

[도도부현] OSAKA FU

[시구정촌명] OSAKA SHI YODOGAWA KU

[이후의 주소] SHINKITANO 1 CHOME-9-15

[체류지-호텔명] HOTEL PLAZA OSAKA

[전화번호] 81663031000 

 

 

(2) 휴대폰 로밍:

공항을 나서면 전화 로밍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저는 그냥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자동으로 사용하곤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전화 로밍에 대해서는 전재운 선생께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3) 교통카드(ICOCA 카드):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역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리무진 버스(1시간30, 2000)도 있고, 하루카(50, 3000)라는 고속열차도 있습니다.

 

대개는 전철(1시간30분정도, 1200)을 탑니다. 오사카에는 전철 노선이 대단히 많습니다만, 그 모든 전철을 탈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이코카(ICOCA)라는 교통카드가 있습니다. 간사이공항역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신용카드로는 살 수 없고, 현금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일본 입국에서 출국까지 대략 5천엔이면 이동에 충분할 것이라고 예상되므로, 공항역의 자동판매기에서 이코카 카드를 구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코카 카드는 편의점에서도 현금대신 사용할 수 있으므로, 조금 넉넉하게 충전을 하셔도 됩니다.

 

 

(4) 휴대폰 충전 어댑터 (돼지코):

일본의 전기 아울렛이 한국과 다릅니다. 그래서 통칭 돼지코라고 부르는 변환기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저는 첫 출국 전에 다이소에서 살 수 있었는데, 모든 다이소에서 돼지코를 판매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시간이 되면 G마켓 같은 데서 사두시면 좋습니다. 또 휴대전화를 위한 보조 배터리를 준비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호텔 로비에서 돼지코를 무료로 빌려주는 곳도 있습니다. 혹은 일본에 도착해서 빅카메라라든가 동키호테라는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 두시면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는 당황스런 상황에 봉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5) 구글맵(Google Map):

한국 밖으로 나가면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야후맵과 구글맵을 주로 사용합니다. 저는 구글맵을 사용해 왔는데, 야후맵과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려움이나 불편이 없습니다.

 

목적지를 영미식 알파벳은 물론 한글로 검색할 수 있어서 일본어 카타카나나 히라카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철을 타거나 장소를 찾아가는 데에 편리하므로, 구글맵을 사용하는 연습을 미리 해 두시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 5가지를 추천드립니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시면 질문해 주세요. (jc, 20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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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15<舞踊靴>れる兵庫県西宮について予習中ですが、「阪神間モダニズム尼崎のダンスホールていたら脇道けました1920年代朝鮮沿海州日本複雑状況どのようにして新舞踊社交ダンスが登場したのか追跡それを背景崔承喜先生朝鮮舞踊誕生した過程簡単ていきました

 

 

本論西宮がどんな場所いつから朝鮮人移住したのかてみようといます現在日本には44万人在日韓国人んでいますこのうち26千人朝鮮韓国国籍拒否する朝鮮籍です

 

2000年代半ばまでは在日同胞はおよそ60万人でしたが2010年代には50万人40万人代っています1995から2021にかけて20万人在日同胞帰化したからです

 

 

兵庫県には201961日現在4万人韓国人/朝鮮人居住していますそのうちのほとんどは神戸16千人んでいますが尼崎65百人姫路43百人西宮31百人にも3千人以上朝鮮人/韓国人居住伊丹17百人宝塚16百人明石111にも1,000名以上んでいます

 

20236月現在西宮人口48万人ですがそのうち外国人人口8千人1.6%ですそのうち韓国人/朝鮮人(314440%)中国人(17%)ベトナム(12%)きます23外国人わせたものより1朝鮮人/韓国人いです

 

 

日本統計韓国人/朝鮮人という範疇使われるのには事情があります在日同胞総連系民団系そして韓国系新世代同胞かれますが総連系同胞自分のことを在日朝鮮人一方民団系新世代同胞在日韓国人自任しますしたがってこれらを一度通称する韓国人/朝鮮人」、または朝鮮人/韓国人という名前使うのです

 

 

3つのグループの通称ジャニチ(在日)という言葉もありますが正確言葉ではありません日本中国人やベトナム在日だからです韓国ではこの3つのグループをすべて在日同胞いますが韓国以外ではその用語していません日本学者たちは在日コリアンという言葉使いますが3つのグループ英語訳コリアンKorean)」共通しているからです

 

はこの3つのグループをあえてつにまとめて通称すべきかどうか疑問っています名前める当事者意思慣行重要考慮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原則がありますそれによるとただ在日朝鮮人在日韓国人という言葉々に使えばいいのです

 

 

沿海州在露同胞自分たちを高麗人びます沿海州から中央アジアに強制移住させられた高麗人とその子孫じですしたがってらは高麗人です中国朝鮮人朝鮮族んでいますのでその尊重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2024朝鮮首班韓国敵対国だと宣言したので在日朝鮮人がこの宣言れれば今後韓国人在日韓国人交流することはないでしょうねそのような行為反逆罪やスパイになる可能性があるからですそのため在日韓国人/朝鮮人という範疇名前もその用例がますますしくなるでしょう

 

 

しかし韓半島朝鮮韓国分断される以前時期移住民すときは在日朝鮮人という言葉使うのがしいといますそのはイデオロギーの対立じるよりも当事者らを朝鮮人んだからですということで韓半島分断以前朝鮮人分断とともに在日朝鮮人在日韓国人かれたわけなんですね

 

 

このような用語整理ったものなので絶対的ではありませんではこの原則適用しますが研究者やジャーナリストがすでに使用している用語もあるので各用語意味用法細心注意うことがいといます(jc, 202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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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15<무용신>이 방문할 효고(兵庫)현의 니시노미야(西宮)에 대해 예습중입니다만, ‘한신칸 모더니즘아마가사키의 댄스홀을 살피다가 옆길로 샜습니다. 1920년대 조선과 연해주와 일본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무용과 사교댄스가 등장했는지 추적했고, 그것을 배경으로 최승희 선생의 조선무용이 탄생한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니시노미야가 어떤 곳이고, 언제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일본에는 약 44만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이중 약 26천명이 조선과 한국 국적을 거부하는 조선적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재일동포의 수는 약 60만명이었지만, 2010년대에는 50만명, 지금은 40만명대로 줄었습니다.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약 20만명의 재일동포가 귀화했기 때문입니다.

 

 

효고현에는 201961일 현재 약 4만명의 한국인/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고베(神戶, 16천명)에 살지만, 아마가사키(尼崎, 65백명)와 히메지(姫路, 43백명)와 니시노미야(31백명)에도 3천명 이상의 조선인/한국인이 거주하고, 이타미(伊丹, 17백명)와 다카라즈카(宝塚, 16백명)와 아카시(明石, 11백명)에도 1천명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20236월 현재 니시노미야의 인구가 약 48만명인데, 그중 외국인 인구가 약 8천명(1.6%)입니다. 그중 한국인/조선인(3144, 40%)이 가장 많고, 중국인(17%), 베트남인(12%)이 뒤따릅니다. 2,3위의 외국인 인구를 합친 것보다 1위의 조선인/한국인이 더 많습니다.

 

 

일본 통계에 한국인/조선인이라는 범주가 사용되는 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재일동포는 총련계와 민단계, 그리고 한국계 신세대 동포로 나뉘는데, 총련계 동포들은 자신을 재일조선인이라고 부르는 반면, 민단계나 신세대 동포들은 재일한국인을 자처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한꺼번에 통칭할 때는 한국인/조선인’, 또는 조선인/한국인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지요.

 

 

세 그룹의 통칭으로 자이니치(在日)’라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일본에 사는 중국인이나 베트남인도 자이니치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이 세 그룹을 모두 재일동포라고 말하지만, 한국 밖에서는 그 용어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학자들은 재일코리안이라는 말도 쓰는데, 세 그룹 이름의 영어 번역에 코리안(Korean)’이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 그룹을 굳이 한데 묶어서 통칭해야 하는 지에 의문을 가집니다. 이름을 정할 때는 당사자의 의사와 관행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자면 그냥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이라는 말을 따로 사용하면 됩니다.

 

 

연해주의 재러동포는 자신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릅니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과 그 후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고려인입니다. 중국의 조선인들은 스스로 조선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 이름도 존중해야 합니다.

 

2024년 벽두 조선의 국가수반이 한국을 적대국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이 이 선언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재일조선인과 재일한국인이 교류할 일은 없겠지요. 그런 행위는 반역죄나 간첩죄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일한국인/조선인이라는 범주와 이름도 그 용례가 점점 드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반도가 조선과 한국으로 분단되기 이전 시기의 일본 이주민을 가리킬 때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생기기 전이었고,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모두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 분단 이전의 조선인이 분단과 함께 재일조선인과 재일한국인으로 나뉜 것이지요.

 

 

그러나 이같은 용어 정리는 제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겠지만, 다른 연구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도 있기 때문에, 각 용어의 의미와 용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c, 202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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