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1945년 8월15일 조선이 해방되자 2백만에 달했던 재일 조선인들은 딜레마에 부딪혔습니다. 조선인인데 조선어를 말하지 못하거나 읽고 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재일1세들은 조선어를 말할 수 있었지만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율이 높았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2세들은 조선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이해할만한 일입니다. 조선 본토에서도 일제는 1938년의 제3차 교육령을 통해 각급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을 금지시켰습니다. 1942년에는 조선어를 연구하고 가르쳤다는 이유로 체포된 조선인들을 반국가사범으로 처벌했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의 상황은 본토 조선인들보다 더욱 열악했습니다. 집에서는 재일1세 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기초 조선어를 이해하거나 말할 수 있었겠지만,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은 모두 일본어를 사용해야했으니까요.
그러다 해방이 되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서도 조선말을 못하니 조선인 구실을 하기 힘들고, 학교든 직장이든 다닐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모두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급히 만들어진 것이 국어강습소였습니다. 이때의 ‘국어’는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였습니다.
국어강습소라는 이름의 조선어 교육기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7년 여름 경성이었습니다. 한글학의 선구자 주시경(周時經, 1876-1914))선생은 경성 상동교회 안에 부설된 야학 상동청년학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계국어강습소>를 개설, 1914년까지 매년 여름방학 때 경성과 지방에서 조선어 강습을 개최했습니다. 이 강습소에서는 주시경 선생이 직접 작성한 교재로 조선어의 원리와 문법을 가르쳤습니다.
주시경 선생은 1908년 하계국어강습소를 졸업한 제자들과 함께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했고, 1909년 11월에는 그 부설기구로 국어강습소를 설치, 국어연구와 교수를 계속했습니다. 이 국어강습소의 교수 과목은 ① 음학(音學) ② 자분학(字分學) ③ 격분학(格分學) ④ 도해학(圖解學) ⑤ 변체학(變體學) ⑥ 실용연습(實用演習) 등으로 전문적인 강의였습니다.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점이후 조선어를 ‘국어’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자, 강습소의 명칭을 <조선어강습소>로 바꾸었지만, 아예 순 한글로 <한글배곧(=한글을 배우는 곳)>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1911년 <조선어강습소>는 <조선어강습원>으로 발전되어 초등과, 중등과, 고등과, 연구과를 두었고, 상당히 밀도 있는 국어학교로 발전시켜 이를 효율적으로 보급하고 연구했습니다.
주시경 선생이 1914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신 뒤에는 조선어강습원 출신의 제자 이규영, 권덕규, 김두봉 등이 강사로 나서 수업을 이어나갔지만, 1917년 초등과 1회, 중등과 6회, 고등과 5회의 졸업생을 배출한 후 1917년에 중단되었습니다.
1907년부터 1917년까지 주시경 선생의 주도로 계속된 하계국어강습소, 국어강습소, 조선어강습원을 수료한 강습생은 5백50여명에 달했고, 후일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했던 최현배(崔鉉培)·신명균(申明均)·김두봉(金枓奉)·권덕규(權悳奎)·정열모(鄭烈模)·이규영(李奎榮)·장지영(張志暎)·정국채(鄭國采)·김원우(金元祐)·안동수(安東洙) 등도 바로 이 국어강습소 출신입니다.
특히 해방 이후 남북한의 초기 언어정책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최현배와 김두봉은 모두 주시경 선생의 제자이자 조선어강습소의 동기동창이었습니다. 오늘날 남북한에서 사용되는 한글이 일부 어휘를 제외하고는 문법적으로 거의 동일한 원칙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즉, 남북한이 모두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문법적 형태를 살린 표기 등을 국어사용의 원칙으로 갖게 된 것은 주시경 선생이 국어강습소를 통해 일관되게 교육해 오신 덕분입니다.
해방 이후 재일조선인들이 조선어를 배우는 곳을 마련하고 이를 <국어강습소>라고 불렀던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하던 주시경 선생의 제자나 후학이 주도하여 그 이름을 이어받았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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