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가 요코하마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1938년 1월11일이었다. 미주 첫 공연인 샌프란시스코 커랜 극장 공연은 1월22일로 잡혀 있었다.
따라서 예정대로라면 최승희는 1월11일과 22일 사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금강산보>를 상영해야 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본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대금강산보>의 해외상영을 위해 최승희는 필름 한 벌을 따로 제작했고, 그 상영권을 전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대금강산보>를 상영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주 순회공연 흥행사가 이를 대행해 주는 것이었다. LA의 미주동포신문 <신한일보> 1938년 2월3일의 기사에 따르면 최승희는 컬럼비아 컨설팅사와 흥행계약을 맺었고, 최승희의 대행사는 퍼킨스였다.
그러나 최승희의 샌프란시스코 도착 후 <대금강산보>의 상영에 대한 보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컬럼비아나 퍼킨스가 영화의 미주 상영을 위한 업무를 대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혹은 샌프란시스코의 일본 영사관이나 재미 일본인 혹은 한국인 단체들이 영화 상영에 관한 업무를 대신해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본영사관의 최승희 관련보고서 문건에는 <대금강산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고, 재미 일본인 신문이나 조선 교포 신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최승희 본인이나 매니저 역할의 안막이 이 일을 직접 처리해야 했을 텐데, 영어에 능통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언어장벽은 별도로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다. 도쿄를 출발하기 전의 일주일, 혹은 태평양을 건너는 2주일 동안 미국 영화 배급사와 원격으로 계약을 맺고, 상영관을 확보하고, 미디어에 영화 광고를 집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대금강산보>를 상영하려면 국제무역 절차와 서류작업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도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1938년경 미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검열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정부 검열과 영화업계의 자체검열이었다.
미국 영화의 정부 검열의 시작은 1897년에 시작되었다. 그해 메인 주가 도박성 권투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자 수개 주가 메인주의 선례를 따랐다. 1907년 시카고는 경찰청장에게 영화 검열권을 주었고, 이후 1백개 이상의 미국 도시가 시카고의 선례를 따랐다.
1915년 미연방 대법원은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므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헌법 제1수정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함으로써 정부의 영화검열을 뒷받침했다. 영화의 정부 검열은 1981년에야 미국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한편 영화업계는 자체검열도 도입했다. 1920년대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들과 영화인들 사이에 만연한 비윤리적인 행위 때문에 영화계 전반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영화계는 대중의 비난을 피하고 정부의 검열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자체 검열 제도를 도입했다.
1927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해 1934년에 확정된 <헤이스 코드>라는 자체검열 조항에는 ‘신성모독’과 ‘나체,’ ‘국가, 인종, 신념 등에 대한 고의적 공격’ 등의 <절대 금지 장면> 11개와, ‘국기’와 ‘국제관계’, ‘사형집행’이나 ‘범죄자에 대한 동정’ 등 <주의할 장면> 25종이 명시되었다.
미국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사, 외국 영화에 대해서는 배급사들이 자체검열을 실시했고, 1934년 7월 이후에는 모든 영화가 이 검열을 통과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극장 상영이 가능했다.
<대금강산보>가 미국의 정부검열이나 영화사 자체검열에 저촉될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그 두 검열 절차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최승희는 시사회 일주일 후에 요코하마를 출발했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에도 공연까지 열흘밖에 시간이 없었다. 영화상영을 위한 서류작업은 물론 검열 절차를 통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절차상의 문제 때문에라도 최승희와 안막은 <대금강산보>의 미국 상영,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와 LA 상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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