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시 소곡 <법열(法悅호에츠, 1916, 도쿄)>은 이시이 바쿠가 창작한 최초의 작품이자, 일본 신무용의 첫 작품으로 꼽힌다. <법열>의 초연은 1916년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국극장에서 열렸던 <신극장> 제1회 발표회였다.
<신극장>은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오사나이 카오루(小山内薫, 1881-1928)가 창단한 극단으로, 연극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을 함께 상연했던 종합예술극단이었다. 연극은 오사나이 카오루가 주도했던 반면, 음악은 야마다 코사쿠(山田耕莋, 1886-1965), 무용은 이시이 바쿠(石井漠, 1886-1962)가 주도했다.
그런데 이 최초의 <신극장> 발표회에서 상연된 이시이 바쿠의 무용작품은 모두 야마다 코사쿠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된 것이었다. 특히 <법열>이 그랬다. 이 작품이 <신극장> 제1회 발표회에서 발표되었을 때의 첫 제목은 <일기의 한쪽(日記の一頁)>이었다. 이 제목은 당시 야마다 코사쿠가 글이 아니라 작곡으로 일기를 써나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하루의 일기로 쓴 곡을 바탕으로 이시이 바쿠가 안무를 한 곳이 바로 <일기의 한쪽>이었고, 후일 이 작품의 제목이 <법열>로 개칭되었던 것이다.
이시이 바쿠의 초기작품은 야마다 코사쿠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1886년 도쿄에서 태어난 야마다 코사쿠는 1908년 도쿄 음악학교(현 도쿄 예술대학) 성악과를 졸업했고, 재벌 미츠비시(三菱)의 총수 이와사키 코야타(岩崎小弥太)의 원조를 받아 1910년부터 1913년까지 베를린 왕립 아카데미 고등음악원(현·베를린 예술 대학 음악학부)에 유학, 막스 부르크에게서 작곡을 배웠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좋아해 그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하기도 했다.
한편 야마다 코사쿠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1914년 일본으로 돌아올 때에 러시아를 경유하면서 접하게 된 스르리아빈의 음악을 접하고 자신의 음악에 스크리아빈의 양식을 다수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14년 1월 일본으로 돌아온 야마다 코사쿠는 이와사키 코야타의 재정지원으로 조직된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맡았다. 그러나 야마다 코사쿠의 불륜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와사키 코야타는 지원을 끊었고, 이후 야마다 코사쿠는 1918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창작에 집중했다.
야마다 코사쿠가 음악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15년경부터 야마다 코사쿠는 <쁘띠 포엠>, 즉 <단시곡(短詩曲)>라는 제목과 날짜를 붙인 피아노 소품곡들을 작곡했는데, 이를 발표할 때에는 <일기의 한쪽>이라고 불렀다. 후일 이 단시곡들이 출판되었을 때에는 「스크랴빈풍의 작풍에서 배우고, 사적인 표제를 가지는 소품」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1916년 야마다 코사쿠가 작곡한 피아노 작품에 이시이 바쿠가 안무한 <일기의 한쪽>이라는 무용작품이 <신극장> 제1회 발표회에서 발표되었는데, <이시이바쿠 팜플렛 제1집>에는 이 작품을 “우리가 만든 최초의 무용시”라고 서술했고, “대정4년경(=1915년) 야마다 코사쿠씨가 지휘한 음악에 맞추어 제국극장에서 상연했던 작품 중의 하나”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서술에서 “우리”가 만든 최초의 무용시라고 한 것은 이 작품 창작에 야마다 코사쿠와 이시이 바쿠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안무 과정에서도 음악과 춤동작을 서로 맞추기 위해 두 사람이 긴밀하게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발표시기를 1915년(=다이쇼4년)이라고 한 것은 1916년의 잘못이다. <일본양무사연표>에 따르면 <신극장>의 제1회 발표회가 제국극장에서 열렸던 것은 1916년 6월2일부터 4일까지 3일간이었기 때문이다.
미도리카와 준(綠川潤)의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생애(2006)>에 따르면 <법열>은 “한 청년이 미혹의 세계로부터 근심을 버리고 평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는 작곡자 야마다 코사쿠와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특히 이시이 바쿠는 가난과 예술적 난관에서 생기는 미혹에서 벗어나 근심 없는 평화를 얻고 싶어 했는데, 그가 자신의 이름을 타다즈미(忠純)에서 바쿠(漠)으로 바꾼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앞날이 망막(茫漠)하다고 해서 그중 막(漠)자를 선택해 그의 예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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